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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타킹과 <세이토> 그리고 나혜석과 같은 공주들

공주, ‘공’ 부하는 ‘주’ 부에 관한 단상


아이가 태어나고 삼칠일이 지나자마자 대학원을 갔다. 서른이 넘어서, 육아를 하면서 하는 공부는 만만 치 않았다. 강의 준비를 하고 대학생을 가르치고, 또 연구논문을 쓰는 교학상장의 길은 고됐다. 아이가 커가도 엄마의 손길은 늘 필요했고, 삼시세끼 노동 역시 줄어들지 않았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가슴에 탁 와 닿은 것은 다름 아닌 여주인공의 아대(손목 보호대)였다. 보는 순간부터 흐르던 눈물은 영화 끝까지 멈추지를 않았다. 아대가 뭐라고... 어떤 말도 필요 없이 타자의 고통을 공감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뭔가 좋은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즈음, 동네에서 꽤 오래된 스터디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이 읽으면 좋을 책을 나누어 발제도 하고, 원서를 돌아가며 해석해가며 읽었다. 구성원은 원래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녀 같은 사람,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의 이유로 경력단절이 되어 뭔가 새로운 준비가 필요한 사람, 아이가 어려서 멀리 나갈 수 없어 집에서 육아와 과외를 하는 사람, 직업이 학원 선생님이어서 오전에 공부할 시간이 되는 사람, 나처럼 아이를 키우며 대학원에서 공부를 이어나가는 사람들... 이 모였다.

방법은 대학원 스터디와는 비슷했다. 다른 점은 아이를 데리고 가기도 하고, 서로 필요한 용품을 나누거나 돌려가며 사용하고, 음식을 하나씩 싸 가지고 와서 스터디가 끝나면 작은 파티가 열린다. 이렇게 함께하는 공부가 벌써 10년이 넘어갔다. 그 사이에 아이들도 자랐고, 공부도, 우정도 깊어졌다. 나는 이들을 ‘공주’라고 불렀다. ‘공부하는 주부들’라고.


과거, 우리 사회에서 주부의 성공은 남편이나 아이들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직장을 그 만두고 전업 주부가 되는 순간,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엄마나 아내의 이름으로 가려지고 그녀들의 꿈과 소망은 묻혀버렸다. 워킹맘의 경우에도 별반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주부의 노동은 사라지기는커녕 살림과 육아의 이중고에 심지어 다시 전업 주부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학원가에는 아이의 성공적 입시를 위해 설명회며 상담이며 열심히 공부하는 주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들이 자녀의 사교육에 열성인 것은 단순한 모성애 때문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자녀의 성공은 엄마의 자아성취의 수단이자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이기 때문이리라. 이는 우리 사회에서 주부는 구조적으로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꿈조차 직접 바꿀 수 없는 사회적 소외계층임을 반증한다. 그런데 인문학 바람이 불면서 '공주'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코로나 19 상황이 지속되어도 공부하고자 하는 맘은 줄어들지 않았고 요즘 나의 스터디들 또한 원격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청춘들도 취업이 안 되는 요즘, 그녀들은 왜 학생 때 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하는 것일까? 주부들이 공부하는 이면에는 소외된 삶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것도 있겠지만, 결혼, 임신, 출산, 육아, 시댁과 친정이 얽힌 이런저런 경험이 인간의 성찰을 기본으로 하는 인문학이 낯선 것만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때문일까? 예전에 난해했던 책들이 이제야 쉽게 읽힌다고 이야기하는 그녀들...




사실 공부하는 여자, 책 읽는 여자가 비난받고, 조롱거리나 저격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 제목이 <블루스타킹>인 판화가 있다. 그 아래는 어머니가 창조의 열풍에 빠져 있을 때 아기는 욕조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라고 쓰였다. 늘 시민의 편에서 날카로운 풍자와 따뜻한 인간애가 담긴 19세기 프랑스의 판화가이자 풍자화가로 유명한 도미에(HonorDaumier)조차도 자신의 본분을 잃고 공부하는 주부를 비판했다. '공주'의 원조격인 ‘블루 스타킹’은 18세기 영국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문학 취향이 비슷한 여성들이 모여서 사교와 교육을 위해 결성된 비공식 여성단체였다. New women운동, 여성들끼리의 진정한 우정을 강조한 블루스타킹은 당시 유식한 여성들을 비하하는 말로 시용되었고, 조롱과 비난의 상징이 되었다.

오노레 도미에, <블루스타킹>, 잡지 <르샤리바리> 1844년 2월26일치, 석판화, 파리국립도서관

1911년 근대 일본에서 처음 여성문예잡지로 창간된 <세이토>는 한자 그대로 青鞜, 즉 블루 스타킹이다. <세이토>의 여성들은 스스로를 신여성으로 규정하고 이전 시대의 남성 중심적 관습과 비판하고 여성의 자아확립을 주장했다.

1911년에 창간된 근대일의 최초여성문예잡지 <세이토>

이 잡지는 특히 일본에서 유학을 한 한국의 근대 여성문학가인 김명순, 김일엽, 나혜석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고, 귀국 후 그녀들은  '신여자를 창간하고 '청탑회'를 조직했다. ‘이혼 고백서’로 잘 알려진 화가 나혜석 역시 1913년부터 1918년까지의 일본 유학 생활을 통해 가장 영향을 준 잡지가 <세이토>였다고 말한다. 나혜석이 그린 1920년에 '김일엽 선생의 가정생활'이라는 제목의 네 컷의 만화를 보자. 신여성은 낮에는 집안일을 하고 밤이 되면 늦게까지 책을 읽고, 다시 새벽까지 원고를 쓰고 집안일을 하면서도 신여성의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공부한다는 내용이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 별반 다르지 않다.  영국의 '블루스타킹'과  일본의 <세이토>의 여성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모던걸까지... 그 시절 그녀들도 모두 '공주, 공부하는 주부'였다.

그런데 주부들이 왜 모여서 계속 공부를 하는 것일까? 사실 공부는 운동처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자신을 단련시키기 좋은 과정이다. 특별한 목적을 두지 않더라도 공부를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잡념을 떨쳐 내고 몰입해야 하는 과정에는 고도의 정신력이 필요하고, 매일매일 꾸준히 해야 하는 성실이 요구된다. 하 면 할수록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터무니없이 적은 것임을 알면 겸손해지고, 그 안에서의 작은 깨달음은 살아가는데 용기와 지혜를 준다.

입시생이나 취준생들만 치열하게 공부하는 것도, 대학원이나 연구소 같은 곳에서만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옛날 사람들도 치열하게 공부했고 오늘날의 주부들도 치열하게 공부한다. 함께하는 공부는 심지어 즐겁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속도대로 사는 삶, 일상을 즐기면서도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 어쩌면 공부한다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 목적을 세우고 뜻을 이루겠다는 것이 아니라나와 내 삶, 그 자체를 사랑하고 나의 존재와 목소리를 찾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20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 제247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https://kugnews.tistory.com/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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