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못한다. 결혼한 지 10년 차인데, 아직도 요리에 허덕인다. 평소에는 티 나지 않는다. 요리 잘 못하는 엄마라는 게.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이상 꽁꽁 숨길 수 있다. 그러다 요리 못하는 엄마를 자각할 때가 있다. 바로 '아이의 소풍'이다. 10살, 7살 두 아들을 키우며 도시락을 몇 번 싼 적이 있다. 그런데 성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김밥 뚝딱 만들고 거기에 모양도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앙증맞은 도시락을 싸는 엄마가 그저 부럽다. 도시락을 싸야 된다는 얘기가 들리면 그날부터 검색모드에 들어간다. 어떤 도시락을 쌀까. 어떻게 하면 간단하면서 아이들이 잘 먹을 수 있을까. 요리 똥손인 엄마는 요리는 안 하고 검색만 하고 걱정만 한다.
"그럴 거면 차라리 김밥을 사서 줘."
도시락을 싼다고 아침부터 동분서주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이 너무 초라하고 맛없는 비주얼을 보며, 남편이 한 말이다.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했으니까. 나 역시 지금이라도 김밥을 사서 보내야 하나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그렇게 내 기억 속 소풍 도시락은 실망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다음에 도시락을 싸게 된다면 맛있는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서 도시락통에 넣어줘야지 했다. 그나마 코로나로 몇 년간 소풍도시락의 폐해는 피해 가는 듯했다.
청명한 가을. 소풍의 시즌이 시작되었다. 둘째가 소풍을 간다고 한다. 아주 오랜만의 소풍이라 들떠 보인다. 아이는 소풍 전 주부터 신이 났다.
"엄마, 다음 주 금요일에 소풍 간다~ 좋겠지?"
"엄마, 드디어 내일모레 소풍 간다. 신나 신나~"
한껏 들떠 있는 아이를 보며 도시락의 걱정은 1도 하지 않았다. 새벽부터 문 여는 김밥집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김밥을 살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아이의 소풍날은 내가 강의하는 날이었다. 안 그래도 바쁜 날, 도시락 때문에 더 바쁘기 싫었다.
게다가 둘째 아이는 맛없으면 맛없다고 큰 소리로 얘기해 주는 아주 호불호가가 확실한 아이다. 아기 때부터 적량을 딱 먹으면 고개를 홱 돌리고. 내가 한 음식이 맛없으면 "이거는 너무 맛이 없잖아!"라고 큰 소리로 얘기할 줄 아는 전형적인 T스런 아이랄까? 그런 아들에게 도시락은 당연히 엄마의 정성보다 맛이라고 생각했다.
소풍 가기 전날, 아이는 들뜬 마음으로 소식을 전했다.
아들: "엄마, 내일 우리 롯데 타워 가면 150층에 가서 도시락을 먹는데. 너무 좋겠지? 꼭대기층까지 올라갈 때 귀가 먹먹할 수 있는데, 그럴 때 침을 삼키면 된다고 선생님이 알려주셨어. 그리고 도시락은 아무거나 된대. 엄마 내일 '치즈 초밥' 싸줘. 환이가 아침에 도와줄게. 알겠지?"
엄마: "으잉? 치즈초밥이 뭐야? 엄마는 김밥집에서 환이가 좋아하는 스팸김밥 사서 주려고 했는데?"
아들: "치즈 초밥~~. 치즈 초밥~~~!!!!"
엄마: "엄마가 만들면 맛없을까 봐 그렇지~"
이렇게 팩트를 날렸는데도 아이는 변치 않았고 삐침이 시작되었다. 표정은 굳고 입은 삐죽 나오다 못해 울상이다. 심술이 볼때기에 가득 묻어있다.
아들: "내일 150층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귀 아플 것 같아. 소풍 안 갈래. "
딱 봐도 그놈의 치즈초밥을 안 싸준다고 해서 기분 나쁜 티 팍팍 내는 것 같다. 심통 부리는 아이를 보며 엄마가 치즈초밥 도시락 찾아봐서 꼭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요리 똥손인 엄마는 또 밤늦도록 도시락 메뉴를 검색한다. 김밥재료를 미리 사지도 않았고 있다고 해도 어차피 맛나고 예쁘게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간단한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것 위주로 찾아본다.
그렇게 찾은 후보 3가지.
세 개 다 김밥김, 치즈, 계란, 햄, 밥 정도만으로 해결되는 메뉴들이다. 무얼 할까 잠깐 고민을 한다. '달팽이 김밥'을 시도해서 특별한 도시락을 만들까 한다. 그러나 역시 망조의 기운이 보이는 메뉴여서 포기한다. 제일 쉬워 보이는 '스마일 무스비'로 정한다. 스팸통에 랲비닐을 깔고 양념된 밥에 스팸 넣고 계란 넣고 밥 넣어 네모 밥 만들어 김을 두르면 끝! 간단해 보였다. (물론 요리 똥손인 엄마는 간단해 보이는 메뉴도 간단하게 못 만든다는 게 함정이지만;; )
새벽 1시까지 메뉴고민과 '스마일 무스비'영상을 반복해서 시청했다. 그 바쁜 아침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전략(?)이라고나 할까? 간단하지만 그래도 영상을 끊어보며 만들기 싫은 꼼수(?)라고나 할까?
다음날은 강의하는 날이라 머리도 감고 화장도 하고 옷도 예쁘게 입어야 한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다. 나를 꾸미는 시간 40분, 도시락 준비하는 시간 50분, 애들 깨워 준비시키는 시간 40분을 잡아 총 2시간 10분을 예상했다. 8시 40분 전에는 나가야 하므로 최소 6시 반 전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렇게 6시부터 6시 반 사이 알람을 여러 개 맞춰놓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2시 반에 첫째 아들이 코 막혀서 숨이 안 쉬어진다고 깨버렸다. 일어나기 힘들지만 아파서 깬 아이를 어째. 코세척을 하고 코스프레이를 뿌려주고 연고를 발라 재웠다. 3시에 다시 잠을 청하고 6시부터 알람이 울려 되기 시작했다. 6시에 딱 일어났으면 여유롭고 좋겠지만 일어난 시각은 결국 6시 45분. 부랴부랴 머리를 감고 화장을 했다. 입고 갈 옷을 세팅하고 밥을 안쳤다. 서둘러한다고 했는데도 시간은 7시 20분을 향하고 있었다.
시간적 여유도 없고 제일 자신 없는 분야를 해야 하니, 마음이 요동을 쳤다. 머릿속에는 긴장감이 맴도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대대적인 수술을 앞두고 흘러나오는 음악. '딴딴 따라단. 딴딴 따라단. 딴딴 따라단~'
왜 이 음악이 생각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만큼 긴장이 되었다. 지금 이 한 시간으로 많은 것이 결정된다. 둘째 아이의 표정, 마음, 나의 노력, 요리 똥손이라는 자책 등등이 기로에 서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얼른 스팸을 잘라 뜨거운 물에 담가놓았다. 요리 못하는 엄마지만, 스팸주는 엄마지만, 뜨거운 물에 스팸을 담그며 생각한다. '그래도 보존제는 빼며 건강을 생각하는 엄마야.'
계란 지단을 만들며 생각한다. '스팸과 계란과 치즈만 들어가므로 계란은 꼭 성공해야지.'
야무지게 나무숟가락 2개의 스킬을 이용하여 약불에서 타지 않게 계란지단을 만든다.
이제 김을 자를 차례다. 아이가 어리니 김밥김을 반으로 나눠할 생각이다.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조금 마음이 안정될 즈음. 작은 사고를 친다.
요리 똥손인 엄마는 요리하다 작은 사고들이 많이 일어난다.
김을 꺼내다 김을 바닥에 다 쏟아버린다. '역시, 나야.'라는 생각이 들며 좌절하고 자책하게 되지만 다시 생각한다.
'그나마 이틀 전에 부엌에 물걸레질을 했었지. 그리고 얼른 주우면 괜찮지 뭐.'
얼른 김을 모아 줍는다. 그리고 제일 위에 있는 김을 골라 반으로 자른다. 그리고 갓 지은 밥에 깨, 소금, 참기름을 둘러 양념한다. 스팸통에 랩을 깔고 밥 넣고 스팸 넣고 계란 넣고 치즈도 넣는다. 치즈초밥 만들어 달랬으니 치즈는 꼭 넣어야지. 그리고 다시 밥 넣어 꾹꾹 네모 모양으로 만든다. 이제 김을 두르니 끝.
분명 레시피대로 똑같이 만들었는데, 결과물은
왜 똑같지 않을까. 어렵게 만들었는데 모양이 영 엉성하다.
칼질도 서투니 1개 만들어도 양쪽 꼬다리 빼고
터진 거 빼니, 도시락에 넣을 건 몇 개 안 된다. 이제 귀요미 표정모양 김을 붙여야 한다. 표정펀치가 없으니 가위로 잘라볼까 하다가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포켓몬 김가루에 있는 포켓몬 김이 생각난다.
드디어 완성한 나의 도시락. 이거 만드는데도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었는지;;(엄마가 요리똥손이라 미안해)
잘 먹는 둘째 아이의 먹성에 비해 김밥이 너무 적은 것 같다. 그래서 과일이랑 과자는 왕창 넣는다.
소풍 다녀온 아이와 마주한다.
엄마: 환아, 도시락 잘 먹었어?
아들: 웅. 엄청 맛있었어. 아이들도 선생님도 환이 도시락 다 부러워했어. 엄마도시락은 '환상'이었어. 엄마 사랑해요.
기뻐하며 신나서 칭찬해 주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요리 똥손이지만 엄마가 더 노력해서 요리 많이 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