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몽 박작까 Dec 13. 2024

80점 아니고 90점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매주 월요일 받아쓰기 시험을 본다. 처음에는 쉬운 단어들이라 100점을 맞았다. 헷갈리는 받침이나 모음이 섞이고부터는 점수가 들쑥 날쑥이다. 연습해서 가면 80ㅡ90점이고 어떤 날에는 연습해도 60점이다. 한 번은 아이가 다른 급수를 외워가서 40점 맞기도.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가 꼼꼼하게 챙기지 않았다. 아이 말만 믿다가 본 낭패였다. 잘못 외운 걸 안 시험에서 아이는 마음속으로 눈물이 났다고 했다. 너무 속상하고 억울해서. 들으면서 생각했다. 엄마가 챙겨줬다면 겪지 않았을 시련이었겠지. (강하게 크자. 아들아. 좋은 경험이었을 거야. 그 이후로 시험 볼 급수를 헷갈리는 일은 없었다)


 아이 담임 선생님의 첫인상은 단호함이었다. 1학년 선생님 같지 않은 강하고 위엄 있는 표정과 우렁차고 힘 있는 복식 음성의 목소리. 학부모가 모인 공개수업에서 말씀하셨다. 학급 band로 오늘 있었던 일과 소식을 전하는데 댓글이나 표정은 달지 말라고. 부담스럽다고. 카리스마 있는 말씀에 '우리 둘째 올 한 해 쉽지 않겠는데?' 싶었다.


 아이는 역시 선생님을 무서워했다. 글씨를 예쁘게 쓰느라 느리게 쓴 건데 선생님은 "어이~" 큰 소리로 말씀하시며 주의를 줬다고 한다. 엄마의 눈에는 선생님이 여러 명을 집중시키느라 하신 추임새 같았다. 아이의 눈에는 크게 꾸짖는 거라고 생각되었나 보다. 한동안 아이는 선생님과 마찰이 있는 듯했다. 원리 원칙을 중시하셔서 아이들이 쉽지 않겠다 싶었다. 선생님은 수학학습지 숙제도 매일 내주셨다. 매일 독서기록을 쓰게 하셨고 독서 빙고판도 만들어 다양한 책을 읽게 했다.


 한 번은 아이가 받아쓰기를 100점 맞아왔는데 부모님 사인을 받지 않아 나머지 청소를 하고 왔다고 했다. 부모님 사인을 받고 틀린 거 세 번 쓰기가 숙제였으니. 이해는 가지만 사인 안 받아 청소하는 건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행히 아이는 이해했고 다음부터는 부모님 사인을 꼭 챙겼다.


 점차 아이들과 선생님의 관계가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무서워했던 둘째도 선생님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자신을 예뻐한다며. 2학년때도 담임 선생님이면 좋겠다고 말하며. 그렇게 1학년의 끝을 달리고 있다.  





 며칠 전 아이가 받아쓰기 공책을 가져왔다. 아이는 '80점 아니고 90점'이라고 했다. 공책을 열어 보니 채점이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채점이 되어있는지 물어보았다. 자신이 10번 문제를 쓰다 말았는데 채점한 공책에 다시 한번 불러줘서 써보게 하셨다는 거다. 아이가 맞게 써서 세모 표시를 해주셨다. 그리고 띄어쓰기 안 한거랑 같이 1개 틀려 80점 아니고 90점이라고 표시하셨다. 선생님의 정확한 채점과 확인방식이 달라서 놀라웠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2개 틀렸다고 하셨을 텐데. 띄어쓰기 하나도 맞춤표 하나도 안 썼으면 틀렸다고 하셨는데.


 80점과 90점은 천지차이다. 80점은 잘했지만 잘한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게 하는 점수라면 90점은 잘했고 아쉽게 1개 틀린 느낌이다. 아이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다. 그래서 신나게 받아쓰기 공책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80점 아니고 90점인 받아쓰기 공책을 보고 있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선생님의 학습방식이 때론 1학년 치고 과한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4학년도 없는 숙제를 매일같이 내주시기도 하니까. 아이도 억울해했다. 형아는 숙제 없는데 자기는 맨날 있다고. 그런데 결코 과한 게 아니었다. 학습결손 없이 공부습관을 잡아주시려는 노력이었다. 80점 아니고 90점으로 높여주신 건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려고 하는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하신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기 중에는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잡으시려고 똑 부러지게 하셨고 이제 1학년이 끝나가니 그러신 거 아닐까 하고.


 

최근 읽고 있는 책 [1등급 집공부 학습법 (유선화 지음)] 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 공부 싫다는 걸 억지로 시키기보다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자유를 주는 것이 맞는 거 아닐까 의문도 일면 타당한 것 같습니다. 그도 아니면 언젠가는 스스로 마음먹고 하는 날이 오겠거니 그저 기다립니다. 그런데 기다리면 안 됩니다. 바라는 대로 공부하겠다는 때가 오지도 않거나, 왔을 땐 늦습니다. 공부 안 하는 아이는 억지로라도 시키셔야 합니다.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문제가 생깁니다.


# "공부하기 싫어"라고 아이가 말합니다. 공부는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아이는 없어요. 공부는 '하고 싶어'의 영역이 아니라 '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공부하기 싫다는 아이 감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감정을 이해하되, 받아주지는 마세요.



 담임선생님은 1학년이어도 공부습관을 잡아 주기 위해 노력하셨다. 이 책에서 처럼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고 해야만 하는 거니까. 그래서 1년 내내 공부도 열심히 시키고 채점도 정확하게 하고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셨을 거다. 매일 수학 숙제가 있고 독서기록을 쓰는 게 아이숙제인데 엄마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바쁘기도 했지만 결국 아이를 위한 길이었다. 아이가 집공부를 하게 하고 부모가 아이의 교육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시려는 깊은 뜻. 이렇게 교육에 있어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 선생님을 만나 1년간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년에는 담임선생님이 바뀌시겠지만 또 새로운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시겠지.


정말 감사합니다. 000 초등학교 1학년 1반 윤소영선생님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