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 쓰는 글 (4)
벌써 8년 전이다.
고작 일년이었지만 내가 프랑스 땅을 밟고 살았던 적이 8년 전 2017년이었다.
3월에 나는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 탔고
파리가 아닌 굳이 다른 도시에 가겠다고
처음 들어보는 툴루즈라는 도시에서 대충 3개월을 살았다.
그러곤 재미없어진 나는 파리로 넘어갔다.
파리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었는데
인연은 파리한국영화제와 한인민박 사람들에서 생겨났다.
그 중에 지금 동시에 생각나는 사람은 두 여인인데
한 명은 민박에서 만났던 사진 작가 언니.
다른 한 명은 파리한국영화제 인연으로 만났던 특파원 언니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사진 작가 언니는 한국에서 사진을 공부를 했고
파리에서 프리랜서 사진 작가를 하고 싶어서 지금 내 나이 쯔음인 서른 중반에 파리에 왔었다.
우리는 같은 민박에서 생활했는데 각자 침대 하나에 400유로나 내고 얹쳐 살았다.
그런 생활을 공유해서 였는지
우리는 그때 꽤 친하게 지냈고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우리는 종종 연락을 했던 것 같다.
연락이 뜸해지던 중 어쩌다 다시 안부를 묻고
각자 서울과 파리에서 사는 얘기를 하다가
그녀는 내게 지나씨는 그때도 그랬고 알뜰해서 어디서든 잘 살거에요 같은 얘기를 했다.
그래,
내가 참 알뜰하다 못해 반거지같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 다행히 젊었고 예뻤다. 돈은 없었지만 당당했다.
프랑스어를 배우러 어학원 같은데 돈 쓸 생각은 하지도 못했지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랑 말하면서 생활 프랑스어를 습득했다.
혹시 돈이 떨어질까봐 사지도 먹지도 않고 아꼈고
민박에서 여자 손님들이 버리고 갈 옷을 입을래 하고 주면 그걸 넙죽 받아서 잘도 입고 다녔었다.
운동화가 터져나간 걸 바늘로 꼬매어 더 헤질 때까지 신었고
툴루즈에서는 호텔 방 청소부를 하면서 고생을 했던 기억까지..
아마 그랬던 내 모습을 기억하는 그녀는
내가 알뜰했던 사람으로 남아있었던 거겠지.
파리한국영화제에서는 나처럼 잠깐 파리에 머무는 사람들보다는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한국인들이 많이 장기간 봉사개념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해 파리한국영화제에서 홍보팀으로 보도자료 쓰는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위원장님은
나를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기를 좋아했는데
나는 그게 부담스럽기도 하면서
파리에서 사는 한국인 언니들을 소개해줘서 한편으로는 좋기도 했었다.
나와는 사뭇 다른 언니들이 멋지고 부러웠다.
나는 프랑스어 문장 하나도 제대로 구사하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거처도 없는 얘였지만
번듯한 직장도 있고 파리의 스튜디오에서 사는 그녀들이 참 좋아보였다.
나도 언젠가 그녀들처럼 파리에서 살 수 있을까 상상해보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알게 돼 가끔씩 카페 테라스에서 와인을 한 잔씩 하던 그 언니와
이제 8년이 지나서 전화기 넘어로 서로의 목소리를 듣게된 거다.
언니는 '지금은 잘 지내냐'고 물었다.
잘 지내요? 라는 말과 대체 많이 다를 것도 없는데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어지는 말들에서 전해지는 걱정스러운 듯한 어조.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말.
말 자체로는 따뜻한 듯한 말인데 그 말에 내가 고마워해야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왜 인지 네 잘지내요 만 하면 되는데,
그때는 제가 좀 돈도 별로 없고 가난하고 그랬죠 하하하 웃었다.
언니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마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을 텐데
몇 년전 한국에 돌아온 그 위원장님이 술 한잔 같이 마시다가
파리에서 만났던 사람들 얘기를 했고 그 중 하나인 내 얘기가 나왔고
그러다가 전화나 한번 해보자 했던 건데
얼마나 궁금하고 정말 걱정했을쏘냐.
언니는 잠깐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다.
나는 예의상 또 반쯤은 진심으로 시간이 되면 이번에 보면 좋겠다고 했다.
언니는 시간없어 장난스런 말투로 거절했다.
어쨋든 서로 잊고 있던 사람들끼리
감정은 없는 단조롭지만 각자 과거를 회상하는 그 맛으로
잠깐 말들을 나눴다.
언니의 그 말들을 듣고 있자니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그때의 내가 스크린 속에서 파리 시내를 걸어다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대체 내가 어땟길래.
어떻게 지내 보다 지금은 잘 지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을까 싶었다.
마치 그때는 잘 못지냈다는 것처럼.
생각해보니,
나는 그때 유학생이거나 파리지앵처럼 직장인 생활하는 언니들 틈에서
창피하거나 한 걸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파리에서 하루에 바게트 샌드위치 큰 거 하나 사서 하루 종일 먹던 나를 제대로 인식할 겨를도 없었던 걸까.
그런데 갑작스레 몇마디 나눈 말 때문에
8년 전 나의 모습이 한순간에 떠올랐던 것이다.
창피하거나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고 하지만
결코 편안한 생활을 한것은 아니었으니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꽤 가난하고 처량했던 것 같다.
그냥 그런 언니들이 봤을 때 나는
돈도 없는 얘가 어디 파리에와서 뭘하겠다는 걸까 했을테지
별 관심은 없지만 눈 앞에 자꾸 보이니 궁금하기는 했을 것도 같다.
그래서 잊고 있었지만 기억은 나는 거 아닐까.
언니는 결혼해서 살만해? 라는 말도 했는데
나는 또 속없는 사람처럼 네네 그때보다는 뭐 엄청 잘산다는 아니지만 평범하게 잘 살고 있어요 라고 이상한 말들을 해버렸다.
질문에 적당히 예의는 갖추어야 하는데 사실이 아닌 말을 할 수 없고
그러느라 이상하게 말을 늘어놨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웠다.
참.. 그래도
그 이상하게 멤돌던 말 몇 마디 덕에 오랜만에 그때의 좋은 추억과 기억에 한동안 생각이 났다.
내가 왜 그렇게 구질구질하게도 파리를 좋아했는지.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는 그냥 그때의 내가 대체 어땠길래 싶었다.
가난하고 뭣도 없어보이는데
이유는 모르겠고 파리에 사는 게 즐겁고 좋아보이는 별난 여자애 정도로 보였으려나.
갑자기 타인의 눈으로 그때의 나를 보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프랑스 남자와 한 집에서 살고
프랑스 사람들과 일하면서
매일 매일 프랑스 말을 하면서
마치 서울에서 파리사는 흉내를 내면서 살고 있는
내가 왠지 그때 원했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