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Jina Jul 25. 2017

디지털노마드도 쉽지 않다.

#지나가다본것들

바다 바람을 마주하고 칵테일 한 잔과 함께 선베드에 기대 일하는 상상 혹은 풀벌레와 새소리가 들리는 고요한 산속에서 조용히 일하고 싶다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꿈을 현실로 옮겼을 땐, 상상만큼 현실은 녹록지 않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일한 지 벌써 6개월이 되었다. 방콕, 발리, 싱가포르 등 동남아 지역을 다녀온 후 현재는 영국에 머물고 있다. 지난번 글에서는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좋은 점만 썼다면 이번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부분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발리와 방콕에서 경험한 노마드 생활의 현실을 통해 새롭게 여정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첫 번째는 최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무나 기본적인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일하는데 가장 큰 문제였다. 디자이너로서 일을 하기 위한 최소, 필수 조건은 책상, 의자, 콘센트이다. 책상, 의자도 어느 정도 높이가 맞아야 최소 3시간 이상 일할 수 있다. 너무 낮거나 너무 높으면 오십견을 빨리 만날 것 같은 통증에 시달리게 된다. 개발자라면 사실 노트북만 들고 선베드에 누워서 일할 수 있겠지만, 난 마우스를 써야 하니 책상이 필수였다. 디자이너에 따라 타블렛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텐데, 난 마우스로 작업이 가능한 편이라 그나마 수월했다. 또 그래픽 작업은 워낙 배터리 소모가 심해 콘센트가 있어야 노트북 충전을 하며 장시간 일할 수 있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주말이나 평일 밤에 주로 카페에 가서 작업을 많이 했었지만, 동남아의 카페는 조금 다르다. 콘센트가 기본적으로 잘 없고, 의자나 책상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카페 테이블이나 의자가 아닌 퀄리티가 많이 떨어지는 의자라 불편하다.


두 번째는 리서치를 하든 협업자에게 파일 공유든 하려면 인터넷이 필요하다. 인터넷은 한국에서 어디서든 가장 쉽고 싸게 접할 수 있지만, 발리에서는 굉장히 비싼 재화였다. Hubud은 외국인들과 네트워킹을 하거나 일하기에 필요한 환경을 잘 갖추고 있었지만,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하루에 5시간 이상은 일하기를 원했는데, 그렇게 따져보면 10일만 일해도 50시간 이용권을 다 써버리는 셈이다. 원래는 20시간을 테스트 삼아 등록했다가 일주일도 안돼서 다 쓰는 바람에, 천천히 아껴 쓰자며 30시간을 추가 등록했는데, 고작 며칠 만에 다 써버렸다. 결국 무제한이 아니면 소용없었다. 그 이후엔 카페에서 일해보자는 생각에 추가 등록하지 않았다. 무제한 이용권은 30만 원 정도. 발리의 물가에 비하면 거의 집 값이랑 비슷하다. 그렇다고 인터넷이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자주 끊겼다.


그 후 남은 2주는 인터넷 동냥을 하러 이 카페 저 카페를 찾아다녔다. 카페는 관광객들로 시장통을 방불케 했고, 인터넷이 된다는 사인이 붙어있는 카페조차도 자주 끊기는 인터넷으로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나올 때가 많았다. 외주는 커뮤니케이션할 것이 많았는데, 인터넷이 느리니 제플린에 디자인을 올리는 것도 자꾸만 실패가 나고, 카톡으로 시안을 보내려고 해도 가질 않았다. 게다가 콘센트가 있는 곳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이렇게 고생할 거면 그냥 후붓의 무제한 요금제를 끊을 걸, 하고 후회했지만 고생하고 배움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스타벅스의 인터넷 환경이 가장 안정적이지만 항상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부분은 감수해야 한다.


우연히 발견했던 우붓 요가 센터의 카페. 에어컨 없이도 시원한 피난처였지만, 인터넷이 거의 되지 않았다.


세 번째는 주거 환경으로 날씨나 음식, 문화 등,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환경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동남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작하기 전에 본인의 성향이 동남아와 맞는지 미리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날씨에 민감하여, 너무 덥거나 추운 날씨를 잘 견디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동남아는 더운데, 겨울, 가을, 봄 정도는 적당히 살만 하지만, 한 여름의 땡볕 더위는 한국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치앙마이였다. 치앙마이가 비용이나 인터넷이 발리보다 좋다고 하여 계획을 세운 것이었는데, 4월의 치앙마이는 매우 덥고 공기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하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가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발리도 점점 더워져 살기가 어려웠는데, 치앙마이는 더 덥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발리 카페들은 에어컨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 스벅 정도로 큰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대부분 에어컨이 없고 탈탈 돌아가는 선풍기 몇 대뿐이다. 반드시 가기 전에 그 지역의 날씨를 확인하길 바란다.


또 이번 여행으로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나는 확실히 산 속이나 시골에서는 살지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우붓은 한국으로 치면 치악산 아래 마을처럼 수련원들이 있고, 싸고 좋은 빌라들이 많이 있어 힐링을 원하는 사람에게 모이는 동네이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힐링은 일주일 이상 하기 어려운 것이고(사람 만나고 이것저것 하는 것이 더 힐링되는 타입), 눈에 보이는 풍경이 자연보다는 사람의 손으로 디자인이 잘 된 곳에 있을 때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치악산 절에서 한 달을 머물러도 힘들지 않은 성향이라면, 우붓에서 지내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본다. 나는 책상이 불편해서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는데, 침대에 누워 3시간씩 일하는 로니를 보니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로니는 음식도 잘 맞고 날씨도 잘 맞아 그야말로 동남아의 최적화된 인간이었음)




디지털 노마드가 일하는 모습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르다. 이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노마드들을 만났다. 프리랜서로 외주 업무를 하거나, 스타트업 형태로 자기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국내에 회사를 두고 원격근무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행 중 만난 한 개발자는 프리랜서였는데, 일이 바쁜 기간은 한 지역에서 일만 하다가, 일이 좀 적어지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며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외주, 스타트업 일, 개인 디자인 작업을 돌아가면서 했다. 우붓에서는 전체 기간의 80%를 일을 했고, 길리에서는 반대로 90% 이상의 시간에 여행을 했다.(길리에선 거의 놀았다는 얘기). 지금은 런던에서 공부를 병행하고 있어서 20~40% 정도만 일을 하고 있다. 2주는 일을 하고 1주는 노는 경우도 있고, 매일매일 조금씩 할 때도 있다. 나는 기대했던 것보다 일을 많이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시작 전에는 '낮 시간에 여행을 하고 오후에 집에 돌아와 일을 해야지'라고 계획했었는데, 여행을 해보니 체력이 평소보다 매우 금방 소진되어 거의 집에 돌아오면 맥주도 한잔 못 마실 정도로 뻗어버렸다. 여행을 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쉽게 예상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다.) 자신의 목적에 따라 매우 유연하게 변형될 수 있는 것이 디지털 노마드의 가장 큰 장점 같다.


여행을 하며 프리랜서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자유롭게 일 하는 대신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외주와 스타트업을 같이 하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느 정도 자금을 모아두었는데, 혹시나 수입이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원치 않는 일로 치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페북에서 떠돌던 우붓에 대한 글을 읽고 발리로 가기로 결심했었는데, 글에서 봤던 비용과 실제 내가 썼던 비용이 달랐다. 아마도 2년 사이에 우붓의 물가가 껑충 뛴 탓으로 생각된다. 대략적으로 숙박비는 2명이서 60만 원, 식비는 1인당 한 끼에 2천 원에서 만원 정도로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다.(매일 나시고랭만 먹으면 저렴하게 먹고 살 수 있다;;) 1달에 백만 원으로 살기는 빠듯하고, 160만 원 정도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동남아는 (지역에 따라) 적은 비용으로 기본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 대비 삶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런던에선 주말에 항상 이 곳에 와서 일한다.  Ace Hotel Cafe.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여행과 한 지역에 최소 1주에서 한 달 이상을 일을 하며 머무는 것은 꽤 다르다. 일과 여행이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생활 방식을 하나로 결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기가 어렵다.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일을 하면 생산성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기본적인 업무 환경이 충족되어야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오히려 초기에는 생산성이 떨어진다. 초기에 발리에서 일하는데 마치 새 직장에 이직한 기분으로 적응하는데 꽤 걸렸다. 앉아있는 시간이 긴데도 불구하고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항상 쾌적하고 안정적인 업무 환경에서 일을 해오다가, 수시로 환경이 바뀌어 예측하기 힘든 상태로 일을 하려다 보니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다. 그렇게 2주 정도 지나니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도 적응이 되긴 했다.


모든 일이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을 가지고 있듯이, 많은 이가 꿈꾸는 디지털 노마드도 환상처럼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노트북을 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경험은 인생에 한번쯤 경험해 볼만 하다. 사무실을 벗어나 낯선 곳과 마주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다시금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모두가 동의하던 성공의 기준이 나라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무실에 갇혀 앞만 보고 살아야 하는지도 회의감도 들었다.


일생동안 같은 환경에 적응되었던 내 몸을 새로운 환경에 맞춰갈 때, 서먹하고 낯선 공간이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으로 변해갈 때, 처음 만나는 이에게 말 거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때, 그 순간들은 언제나 당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싱가폴 디자인샵 겉핥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