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들〉
*본 내용은 현재 제가 가르치고 있는 방과후학교 아이들과 함께 나눈 내용입니다.
왜 윤가은 감독은 어린이가 등장하는 영화에 장례식 장면을 넣었을까? 그리고 그 장면 뒤에 선이는 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장면이 나올까? 너희들이 한번 생각해볼래?
너희 생각 모두 맞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빠가 슬퍼해서. 맞는 이유야. 그런데 선이의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볼까? 선이의 아빠와 선이의 친할아버지, 그러니까 아빠의 아버지이지. 이 둘은 끝내 화해하지 못했어.
선이의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았잖아. 선이의 엄마에게 늘 아버지를 향한 섭섭함을 이야기하고, 선이와 윤이가 할아버지를 보지 못하게 끝까지 막았어. 매일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했지.
끝까지 용서하지 못한 어른(아빠), 또는 용서받을 기회조차 없었던 어른(친할아버지). 이 두 어른의 끝이 어땠니? 복수하면 시원할 줄 알았지만, 선이의 아빠 모습이 어땠어? 너희가 보기엔 속 시원해 보였니? 맞아. 선이도 어른들을 보면서 느꼈을 거야.
지아에 대한 미움과 실망도 크지만, 마음 한구석엔 분명 우정도, 추억도 남아 있어. 사실 선이도 원하지 않았을까? 언젠가 지아와 함께 다시 우정을 나누는 시간을 말이야. 그런데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선이도 알게 된 거야. 시도조차 못하고, 상대를 떠나보내는 날이 올 수도 있겠구나. 우리가 지금 서로를 등진 채 상처 주는 나날의 끝에는 후련함만 있는 게 아니구나. 깨달았겠지. 혼란스러움에 뒤척였던 거야.
자, 이번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두 가지였지. 여름방학을 보내는 시간, 그리고? (여름방학 후예요.)맞아. 여름방학 때 선이와 지아가 처음 만나 단번에 친해졌지. 둘은 참 신나게 놀았어. 마치 너희처럼 말이야.
그런데 방학이 끝나고, 지아가 선이의 반에 전학 오면서 상황이 달라졌지. 여전히 잘 지냈니? 아니었지. 지아가 선이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둘의 우정이 부서지고 말았어. 대체 왜 그런 걸까?
교실 분위기를 생각해 보자. 겉으로는 친한 듯 보이지만, 은밀히 따돌리며 괴롭히지. 영화의 첫 장면이 피구하는 장면이잖아. 아이들이 피구를 하다가 선이한테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나지? “너 금 밟았잖아. 빨리 나가.” 이 반에서 교묘하게 친구를 소외시키는 방식이었어.
그런 교실에 선이와 지아가 있었고, 거기엔 보라라는 아이가 존재해. 보라는 또래가 좋아할 만한 걸 많이 가진 친구야. 선생님 눈에도 반짝반짝해 보였지. 너희도 만약 보라 같은 친구가 “같이 놀자” 하면 기분이 좋을 거야.
하지만 문제가 있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저마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성격도 모두 제각각이잖아? 그런데 말이야. 이 반에서는 보라가 모든 걸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야. 보라가 보기에 괜찮은 친구는 좋은 친구, 별로인 친구는 이상한 친구, 그러니까 소외시켜도 상관없는 친구가 되어버리는 거야. 지아는 선이와 친해진 것처럼 보라와도 친해져. 그래서 보라가 싫어하는 선이를 점점 피하게 돼.
우리 모두 소중하고 고유하지? 그런데도 보라의 시선으로 자기를 보니 선이도, 심지어 보라의 무리에 속했던 지아조차도 따돌림당하는 게 당연한 존재가 되어버려. 세상에 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는데 말이야. 사실 선이와 지아 외에도 보라에게서 자유로운 친구가 이 반엔 없어. 그 무서움의 끝에는 별게 없는데도 말이야.
또 다른 이유가 있어. 너희, ‘응보의 법칙’이라고 들어봤니? 쉽게 말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거야. “네가 나한테 이렇게 했지? 너랑 이제부터 안 놀아.” 네가 나한테 상처 준 만큼 갚아주려는 마음이지. 그런데 용서가 없는 관계는 어떨까? 내가 상처를 준 만큼 똑같은 양의 상처를 주는 사람은 없어. 보통은 더 큰 상처를 주게 돼. 그러다 보니 복수가 되풀이되고, 잠깐은 시원하겠지만 언젠가 상대가 다시 앙갚음할 거란 두려움 속에 살아가게 돼.
4학년이면 고작 11살인데도 교실은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했어.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큰 무기는 서로의 약점이었지. 방학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선이와 지아가 함께할 때 서로의 좋은 면만 보았니? 아니었지. 선이의 아빠는 술에 의존적이었고, 형편이 어려웠어. 지아의 아빠는 부유했지만 이혼하셨고. 또한, 둘 다 소외된 상처가 있었지.
그런데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위로해. 때론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때론 그저 말없이 안아주면서, 또 봉선화 물을 손톱에 물들이면서. 사실 약점이란 건 말이야. 상대가 그걸 약한 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약점이 되지 않아. 그런데 어떻게든 복수해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으면 아주 사소한 점도 큰 약점이 되어버려. 결국 가장 친했던 두 친구가, 한때는 너무나 잘 이해했고 보듬었던 아픈 점을 이용해 복수를 주고받게 돼.
그러다 선이가 친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겪고, 동생 윤이와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깨닫기 시작해. 지금까지 영화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많지만, 사실 윤이의 대사만큼 이 영화를 관통하는 말은 없다고 생각해.
그럼, 언제 놀아?
맞아. 네 편, 내 편을 만들고, 약점을 무기 삼아 서로를 공격하면, 도대체 이 긴장은 언제 끝날까? 우리는 언제쯤 함께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표들이 한데로 합쳐진 질문이 바로 ‘우린 언제 노냐’는 거야.
마지막 장면, 아이들이 다시 피구를 하지. 이번엔 지아가 금을 밟았다고 오해받아. 모두가 보라처럼 지아를 미워하고, 지아 편에 서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데 금 밖에 서 있던 선이가 지아를 위해 나서지.
아냐, 한지아 금 안 밟았어. 내가 봤어.
선이가 손톱 끝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봉선화 물을 바라보잖아. 남은 봉선화 물은 아직 함께하고 싶은 흔적이야. 아주 희미하지만, 여전히 함께 놀고 싶은 마음,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너무나 아름다운 건 분명해. 보라라는 기준, 그리고 서로의 약점은 그 마음을 도저히 이길 수 없어. 아름다우니까 계속 희망하게 될 수밖에 없어. 그래서 선이가 지아를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던 거야.
아마 너희가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용기를 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할 거야. 때로는 아픔을 주고받는 과정도 겪어야 하겠지. 그래도 선생님은 너희가 지금의 이 나이에 꼭 알았으면 좋겠어. 서로에 대한 실망, 서로의 약점, 복수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게 있다는 걸.
그 소중함을 부디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선생님의 바람이야. 너희도 친구와 함께할 때, 선이처럼 한 번만 용기를 낼 수 있으면 좋겠어. 긴장도 무서움도 끝낼 수 있는 힘은 결국 서로에 대한 소중함에서 나오니까. 그러니 그 마음을 꼭 잃지 않았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