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미미"

때로는 콤플렉스로...

by jina S Kim
냐옹이와 미미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수많은 콤플렉스가 생기기 이전부터.

어린 시절, 늘 나를 당혹시키던 콤플렉스.

이것이 나의 인생 - 첫 콤플렉스가 되어버렸다.


매일 저녁 준비에 바쁜 엄마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졸라댔다.

부엌 주변 엄마를 맴돌던 어딘가에서-

엄마가 나의 이야기에 동참해주길-

나의 원대로 해주길-바라며.


지금은 저녁 준비 시간이 얼마나 바빴을지

말하지않아도 그 분주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이해할수 있지만,

한두박자 뒤늦게 맞장구 쳐주는 엄마의 관심을 더 끌고 싶었고, 엄마는 그런 내가 은근 짜증이 났을것이다.


새삼 여자들의 다재다능함과 고도의 집중력에 절로 감탄이 터져나온다.

나도 뜨거운 불 앞에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움직이다보면 아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화를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그때만큼 예민한 시간도 없다.

불 앞에 서서, 국자 넣었다 칼도 만졌다가,

식재료 준비에 물을 틀고 손을 넣었다 뺐다, 닦았다가 냉큼 냉장고로 뛰어가 보지도 않고

척척 집어내오는 실력이란..

작게는 대략 다섯, 많게는 열 가지가 넘는

양념들을 척척 집어 훅훅 뿌려대며 요리를 하는 모습은 정신없기도 하나 또한 얼마나 멋진가!

처녀때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엄청난 음식물 쓰레기와 요리하며 나온 설거지들까지 상대해야하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건 당연하다.

그 와중 동시에 열가지가 넘는 지시를 통해 아이들까지 돌보지 않는가.


젊었던 우리 엄마도 저런 모습이었겠지.

어린 꼬꼬마는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까부터 뒤에서 조잘조잘.

투정인지, 수다인지 아까부터 엄마가 뭐라고 대꾸하기를 바라고 앉았다.


'엄마, 엄마- 나 이름 바꿔죠-'

'......'

'엄마, 나 이름 바꾸고 싶다고-----!!'

'응, 그래그래'

바쁜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들은건지, 들은 척만 한건지, 나도 인내심에 한계가 왔지만 곧 엄마의 작은 관심을 허락으로 받아들이고는..

'진짜? 나 이름 바꿔도 되는거야?'

엄마가 뒤를 흘끔 바라본다.

'이름?'

'응. 이름 바꿔죠-내 이름 싫어'

그제야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한듯,

다시 요리하는 자세로 돌아가 물어본다.

'이름을 왜 바꿔야 하는데?'

'애들이 자꾸 놀려서.'

'이름이 어때서..왜--?!'

엄마는 알고 있을까? 답답한 내 속을.

'그렇다니까! 남자애들이 자꾸만 놀려.

남자이름 같다고.. 나는 여자인데, 왜 내 이름은 남자이름이야?'


엄마에게도 우리가족에게도 나에게도 태어나면서 쭉-불렸왔던 내 이름이 남자이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결코 단 한번도 없었기에 당혹감을 감출수없었다.

7살까지는-

그렇게 내 이름이 너무 당연했고,

이름이란 곧 '나'니까 그렇게 6년의 세월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왔다,

꼬꼬마는 태어나서 처음 맞이해본 충격을

엄마에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밖에 나가 온 동네를 휘젖고 다니던

꼬꼬마는 짖꿎은 동네 남자 아이들이

만나기만 하면, 이름을 가지고 놀렸기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다.

아니, 지들이 내 이름가지고 뭐 해준거 있남?

슬슬 짜증이 밀려오던 차에,이름을 바꾸겠노라 결심하고 엄마에게 선언을 했다.


계속해서 요리를 하던 엄마가 뒤늦게

생각이 난듯 물었다.

'그럼, 무슨 이름으로 바꾸고 싶은데?'

'...음...'

막상 너무 순순히 허락해주니,

얼른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본래 생각해 놓은 이름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여자다운 여자 이름이 갖고 싶었을 뿐.

순간 내 머리를 스쳐 간 여자다운 예쁜 이름 하나.

'어떤 이름이 좋을지 얘기해봐-'

웬지 모르게 놀리듯 묻는 엄마.

순간, 스쳐간 그 이름을 부르짖을 때

나의 눈망울은 더 커지고 똘망똘망했으리라.


' 미미!'


지금 희미해진 기억으로 엄마는 잠시 말이 없으셨지만, 곧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그래, 오늘부터 미미해~'

'얏호!~'

그날 밤은 너무 들뜨고 흥분의 상태라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 나의 새로운 이름 미미를 소개하기엔 동네 아이들이 너무 많았기에..


* 미미- 80년 중반대 당시 인기였던 인형입니다. 바비를 갖기 전 처음으로 선물받은 아이여서 제가 많이 아꼈지요.. 미미와 제니(?)가 있었는데, 제니보다는 미미가 웬지 더 예뻐서 아꼈던걸로 기억하네요.
일자 앞머리를 한 갈색 긴 머리 인형이었고, 후에 바비를 사랑한 후 미미는 토이스토리에 우디처럼 창고 어딘가 묻혔을....*


결국, 미미라는 이름을 소개하고 다녔는지는 기억이 도통 나질 않으므로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아마 며칠 하다가 애들 반응이 시큰둥하니까,

절로 잊혀져 나도 포기하고 그냥 원래 내 이름으로 돌아가 이제껏 살진 않았을까.

그러나 이름이 바뀌지 않은것을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김. 미. 미.



그리고 또 다시 찾아온 당혹스러움.

바야흐로 내 나이 한참 예민하던 시절-

중학교 시절 이야기이다.

남녀공학을 다니던터라 중 2가 되면서부터는 이상하게 선배 오빠들만 보면 눈에 하트가 자연히 발사되었다.

특히나 인기 많은 오빠들의 집단 중 하나라도 매점이나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도 한다면

그날은 어김없이 여기 저기 푹 푹 쓰러지며 주변 아이들과 난리 브루스, 아수라장이었으니-

지금 떠올려보면 잘생긴 외모 문제가 아니라,

그저 태어나 처음 맛보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군중 심리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나름 그 시절 우리만의 소소한 재미랄까.

학교 가는 재미.

뭐 과정이야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2학기가 되면서 선배 오빠들과 점차 친해질 계기가 생겼고, 그때부터 왜 그렇게 이름을 물어보는지.


또 다시 고민으로 붉어진 내 이름.... 석자.


하물며 호감이 있든 없든,

일단 남자 선배와 대화를 나눈다는것 자체가 부끄럽고 쑥스러운 일인데 말이다.

얼굴이 안되면 이름이라도 좀 예쁘던가.

안그래도 작은 키가 그 질문으로 인해 더 작게만 느껴지곤 했다.


'넌 이름이 뭐야?'

<작아짐...>

'....'

'응?'

<더 작아짐..>

숨고만 싶었다.

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사실 이름도 이름이지만,

성과 함께 붙여 말하는 건 정말이지

죽기보다 싫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남자와의 첫만남- 이름을 소개할 때면 늘 거꾸로 이름 먼저- 그리고 성을 나중에 붙여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대부분 내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의 80%이상이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해달라고.

그건 더 싫었다.

넘어가고 싶은데 왜 자꾸 묻는건지.

다시 말하는 건 더 끔찍했으므로,

이왕 갈꺼면 한번에 깔끔하게 가는 게

더 나을거라 단정짓고는..

생각해 낸 방법이 나와 이름이

같은 연예인 이름을 대는거였다.


아주 잘 먹힌지라 일단 처음 대면하는 남자에게는 무조건 이 방법을 20대까지도 써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름이 뭐야?'

'....'

처음엔 머뭇거린다.

그냥 지나가주길 바라면서..

딴소리나 딴청을 해보기도 했다.

두번째 되물음이 오면 포기했다는 듯

눈을 질끔 감고 큰 소리로 답해주었다.


'승원- 성은 김.'

이러면 반드시 또 세번째 되묻는다.

'차승원 알지? 승원-!!!'

말해놓고 참 애매했던 기분.

내 이름이 가령 혜정이거나, 지혜이거나...비스무리하게 승연이래도 괜찮겠다.

상대방은 뭐 별거 없는 듯 하면서

또 네번째로 말한다.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이름이 남자이름같네-'

'........'

어쩌라고?! 화끈 달아오르는 내 얼굴.

아마도 남자이름같다는 소리에 발끈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미미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에

내 이름을 당당히 말할 수 있지만,

그때만큼은 이름에 대한 강렬한 콤플렉스를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내가 만약 미팅이라도 나가서 짝이 연결되지 않으면 이름 탓을 했을거라 생각한다.


한창때는 Cy월드에서 남몰래 혼자

내 이름을 쳐본 기억도 있다.

과연 여자 승원-은 몇명이나 될까.

승연은 많아도 승원은 없다.

죄다 남자들만 나왔다.

가끔은 원숭이라 불리기도 했다.

다행히 성이- '이'씨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더 웃긴 건 고1때 만화를 잘 그리던 나의 절친이

붙여준 별명이다.

'숭어' <-- 이건 좀 억지라 생각한다 아직도.



처음 낯선 곳에서 영어 이름이 필요했을 때

정말이지 성심성의를 다하여

예쁜 여자 이름만 찾아 골랐다.

승원- 영어로 발음하면 'ㅆ ㅓ 엉원'이 되므로.

못생기고 남자같은 내 이름의 발음을 들어주는 것도 한계가 왔다.

캐서린, 엘리자베스, 캐시, 제니, 줄리.. 등등 여성스럽고 예쁜 이름은 지천에 깔려있다.

지금이야 더욱 세련된 이름도 많지만,

그때만 해도 영어 이름을 짓기에 교과서를 뒤졌으니..뻔할 뻔자의 이름 뿐이었다.

흔히 우리가 토익 리스닝할때 나오는

흔하디 흔한 이름들.

그래도 마냥 좋았다.

하얀 종이 위에 그 이름들을 좌악 나열해 놓고 한참을 고민하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 홈스테이 주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그 분이 골라 준 이름이 웬걸-

순위 저 밖에 맨 아래 줄 몇 칸 더 채우려고 써놨던 'Judy' 였다.

궁금해 물었더니, 내 이미지와 가장 잘 맞는 이름이라 했다.

그 말 한마디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Judy 당첨.

나의 모습이 엘리자베스나 줄리아 같은 이미지였으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과 동시에 거기에 웬지 나도 모르게 쇠뇌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 예쁘고 여성스럽고 싶다-

그래도 이름만은.....하면서

영영 그런 이미지와는 이별을 해야할 것만 같은 슬픈 예감이랄까.


그 후 나는 소원대로 승원이 아닌,

Judy로 살았다.

단 몇 개월 그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전까지는.

당시 랭귀지 스쿨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날 또래 남자 애 하나가 새로 왔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귀여운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여자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은 어딘가 모르게 건방짐이 붙어있는 녀석이었다.

1:1 대화 수업에서 반갑지 않게 짝꿍이 되었다.

한국말 반 엉성한 영어 반 반 섞인 수준.

좀 더 잘하는 아이와 짝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건방진 녀석은 이제 온지 일주일밖에 안된 신삥이었으니 더 반갑지 않았겠지.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아직 이름 소개할 타이밍이 아니였는데,

이 건방진 녀석이 잘 나가다가 대뜸 이름부터 묻는거 아닌가.

'니 이름이 뭐꼬?'

'아우- 지금 이름 묻는거 아니거든?'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은 짝꿍이라 잔뜩 인상을

지푸렸다.

'맞나. 근데 니 이름이 뭐꼬?'

'내 이름 주디다 왜-?!'

...............

순간 큰 소리로 깔깔 대며 배꼽을 잡고 나뒹굴더라.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놀란 눈으로 어이없이 바라만보고 있는데 더 큰 소리로 물었다.

'주디 맞나? 니 주디가 뭔줄 아나?'

'뭐래...이름이지 뭐야'

'주디- 주둥이....'

부산 말로. 주디-는 주둥이...난 몰랐는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이미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있었다.

한국말 알아듣는 한국 아이들은 배꼽이 빠져라

다 깔깔대며 웃었고, 내 예감처럼 진짜 그 녀석의 시건방은 거기서 끝이 아니였다.

매일 만날 때마다 놀려댔으니

꼴도 보기 싫어 피해다녔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결국은 두번 다시 그 이름을 쓰지 않겠다 맹세했다.


눈물겹게 바꾼 이름이 바로 지나킴이다.

이것도 사실 Gina가 맞지만,

평범한게 싫어 일부러 J를 썼고,

영어 이름이지만 친해지기 전까지는

내 이름이 '진아'라고들 착각한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래도 일부러 수정을 해주거나 하지 않는다.

아무리 괜찮아졌다해도 버릇이 되었는지

물어보기 전까지는 원래 이름을

굳이 알려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역시나 미미인 것보다는 낫다.

엄마도 기억하고 있을까?




이랬거나 저랬거나 지금은 이름 덕분에

사람들이 내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특히 차승원이 나올때마다 내 생각을 해줄꺼라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 차승원이 자주 나오면 웬지 더 반갑고 좋다.

무엇보다 이제는 내 이름에 무뎌졌음을 느낀다.


이름때문에 속상해하던 나에게

언젠가 친한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힘이 되었다.

'이름 이뻐.
원래 여자가 남자 이름 가지고 있으면
엄청 성공한다더라-
그렇게 믿고 살아!'

꼭 믿을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저 위로를 듣고 난 뒤 실제로 무의식적으로

저렇게 믿으며 살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친구의 위로말에 마음도 한결 편했고

내 이름에 대한 묘한 기대감까지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웬지 모르게 정말 그래줄것만 같은.


한자를 풀어 아빠의 뜻대로 이야기해보자면 만리장성같이 거대한 성벽을 이으라는 뜻이다.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려 해본 적없이 살아왔지만, 이제와 그저 속으로는

'관계'로 연결 시켜본다.



관계 안 사람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조화를 이루며

담을 잇듯, 손을 잡아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조화로움이 더욱 잘 이루어지도록

도움주는 삶을 살라는 뜻으로.


실제로 그런 삶을 꿈꾸기도 한다.


Jun 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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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을 하면서 아주 사소한 것들 하나 하나- 오고가는 많은 생각들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울 때가 많다.


아침 식사 대용으로 혼자 앉아 빵을 씹거나..

그늘에 잠시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만 보고 있어도 문득 문득 떠오르는 여러 기억 중 어린 시절의 기억은 떠오를 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해주어 더욱 반갑다.

따져보면 바쁘게 살아간다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멍하니 딴생각을 하고 있는 시간도 분명 많은데, 매일이 그렇게 여유가

없다고 칭얼 거리기만 했을까 싶기도 하다.


글이란 친구가 생기고 부터는 오래전 기억과 추억을 세밀히 더듬어 볼 수 있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나의 이름과 추억 속 미미-

그리고 그 안에 떠오른 많은 이미지들...

내가 살아온 과정을 뜨문 뜨문 떠올려보니.

나는 참으로 복된 삶을 살았구나.

귀엽고 예쁘고 꿈 많던 소녀였구나.

단편의 기억 속

나는 단 한 순간도 불행하지 않았구나.

달콤하고나!

승원이의 인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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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한참을 붙잡고 있었다..

소재를 떠올려 끄적이기 시작한 건

벌써 15일도 넘었건만.. 글을 수정할 수도

다시 읽어보기조차 힘들었다.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저 내 마음이

글을 쓰는 데 자꾸만 브레이크를 걸었다고

말하는 게 가장 잘 맞다.

쓰여지지 않는 글을 억지로 붙잡고 있기가 싫어서 그냥 한없이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이 글이 처음 썼을 때의

따끈 따끈한 느낌이 아니였다.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자

점점 더 눅눅해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정성들인 내 글이 바래져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사실 글은 따끈할 수도, 눅눅할 수도 없는데-

나의 시선이-

나의 마음이-

이 글을 바라볼 때 그렇게 느꼈나보다.

그런 나의 마음이 배신처럼 느껴져 참을 수 없었다.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여전히 부족하기 짝이 없는 글일지언정, 나름 배 아파 심사숙고하여 어느날 새벽 잠 못이루며 적어내려간 나의 글이 굴욕을 당하는 꼴이 보기 싫어 밀려오는 배신감에게 펀치를 날리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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