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아빠에게 쓴 글을 보내드렸다. 독자도 없었기에 내가 쓴 글을 평가받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부족한 글에 대한 고칠 점이나 느낌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터져나오는 생각을 옮겨 적다보니 과한 부분이나 두서가 없음을 느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 된 글인지 도통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이 때 아빠가 보내주신 짧은 글 (신문에 올라온 글을 보내주셨음) 을 보고 정말 부족했지만 그 부족함이 뭔지를 많이 느꼈다.
역시...지금도 쉽게 고쳐지진 않지만..
짧으면서 연결이 부드럽고
주제나 소재가 부각되는
재미있는 글-을 쓰기란!!
엘리베이터에 타자 젊은 엄마가 두어 살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이는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 새로 입장한 아저씨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럴 때 방긋 웃어주는 게 아저씨의 가장 평범한 반응일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아이는 계속 칭얼거리고 있었다. 칭얼거림의 대상은 그 엄마임이 분명했으나
아이의 눈동자는 줄곧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가 “칭얼거리기도 바쁜데
아저씨는 또 뭐야“ 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칭얼거리기 마련이고 그런 아이의 엄마는 그 아이를 달래기 마련이다. 나는 최대한 방긋 웃어줬으나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잉잉 징징거렸다. 그때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해. 안 그러면 저 아저씨가 이노옴 한다.”
나는 억울했다.
나는 그 아이가 칭얼거리는 것이 불쾌하지 않았고 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그 칭얼거림과 이별할 것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나는 그 아이에게 이노옴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나를 ‘이노옴 할지도 모르는 아저씨’로 규정하고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아이에게 그렇게 통보했다.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던 아이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림 속에, 그러니까 이 후줄근해 보이는 아저씨가, 내가 칭얼거리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면
이노옴 같은 호통을 칠 수 있는 위인이란 말인가
하는 그런 불안과 의심과 재수 없음을 표현하는 그 무엇인가가 획 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노옴 할지도 모르는 아저씨가 된 이상 방긋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이노옴 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 그 아이가 앙하고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웃음을 그쳤으나 화를 내는 것도 아닌 대단히 이상한 표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아이는 더 이상 칭얼대지 않았고 엄마는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모자가 내리고 엘리베이터에 혼자 남았을 때 거울을 보고 혼잣말을 했다.
“이노옴~!”
(조선일보 한현우 주말뉴스부장)
글 며칠 전 신문에서 * *
우리 이웃의, 우리 동네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우리 동네의 이런 아이와 젊은 엄마를 하루에도 몇 번씩 거듭 만나는 평상시의 생활 속의 만남이다.
흔히 맞닿는 현실의 일을 카메라가 찰각하고 순간포착을 한 것 같이 생생하여 어쩌면 정겨운
그림 같은 모양이다.
글이란 이렇게 아주 쉽게 누구나 즐기면서 읽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낸 글은 고급 사회에서 논문을 읽은 것 같이 난해하고 초점이 떠오르지 않고, 읽고 난 뒤
무엇을 읽었는지 남아 있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름답고 세련된 어휘나 단어를 모아 흩여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누구에게 넋두리 하는것 같기도 하고 하늘이나 길을 보고 한풀이 욕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 입술언저리에서 반투명체로 들락 날락 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 자체도 비평가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사람도 아닌 그냥 보통사람의 시선에서 내 느낌을 이야기할 뿐, 정석도 아니고 규격에 맞추어 떠드는 것도 아니니까 아빠의 말을 그냥 참조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