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겨울 이야기
저번 주까지는 그나마 찌는 듯한 더위보다는 바람이 불어주어 고마웠지만 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요 며칠 하늘에는 온종일 먹구름이 뒤덮혔고 간간히 매직 아이를 하듯 특이한 모양들이 무시무시한 형상들로 다가오기도 했다.
비를 동반한 바람이 불어대도 습기 탓인지 눅눅한 기운을 퍼뜨리며 조금만 움직여대도 땀이 송글 송글 맺혀 진이 빠졌고, 눅눅함을 잔뜩 머금고 있던 때라 비바람이라도 맞으면 금새 추웠다 더웠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온도의 변화로 저번 주 내내 평소에는 걸리지도 않던 몸살 감기를 앓았다. 오한과 짙은 두통 덕분에 거의 누운 시체처럼 지냈다. 무거운 머리를 겨우 들고 앉아있으면 연속 재채기 5~6번은 기본이었고, 코를 팽 팽 풀어 재끼면 시원함보다는 오히려 코가 더 꽉 막혀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코 맹맹이 소리에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는 상태까지 되고 보니 요리는 할 수도 없었고, 식사도 거의 시켜먹거나 대충 사서 떼웠다.
숙제가 덜렁 놓여졌다.
'한여름의 겨울이야기'
감기로 인해 몸이 축나있는 상태이긴 하나, 더위가 점차 심하게 조여 올수록 겨울이라는 단어는 새벽 찬바람 느낌으로 신선함과 설레임을 더해주었다.
나름 작품을 구상이라도 하듯 며칠 내내 고민해 보았지만 한 여름의 겨울 이야기로 풀어낼만한 것들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뭉게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생각의 구름 풍선은 많았지만 어떠한 모양새도 갖추지 못하고 팡 팡 터져 사라졌고 그럴수록 부담감이라는 망치가 내 머리를 때리는 것만 같았다.
글을 쓴다는 것.
즐거움과 편안함으로 가야한다.
모든 부담을 버리고 쓰기로 작정해보았다.
예상컨데, 오늘 글은 군더더기가 더 많고 고르지 못할 것만 같다.
이런 불안감으로 고민하던 중 나를 응원이라도 해주는건지 고맙게도 나의 귀를 간지럽혀 준 노래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늦은 밤 시간 뻥뻥 뚫린 올림픽 대로를 타고 한남대교 정도를 지날 때 보이던 한강의 모습과 잔잔한 목소리로 마음을 울려준 노래.
삼복 더위에 캐롤이라.
거리마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물결
기쁜 크리스마스
또 찾아왔네
city side walks busy side walks
dressed in holyday style
In the air there's a feeling of Christmas
Children laughing people passing
Metting smile after smile
And on every street corner you'll hear
Silver bell, silver bell, silver bell...
겨울하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금방 머리 속에 떠오른다.
단어 하나로 느껴지는 백색의 차가움을 따뜻한 그림으로 바꿔주는 유일한 순간이랄까.
성탄절 트리는 나에게 그런 느낌이다.
결코 가져보지 못한 것-
산타할아버지, 루돌프, 굴뚝, 양말,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선물은 그저 동화나 영화 속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동화 속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시즌이 다가올 때마다 약간의 의기소침과 우울함을 선물했다.
우리 집 근처에는 규모가 꽤 큰 지하 상가가 있었다.
한 동네에서만 30년을 살았으니 등하교, 출퇴근을 위해 지하 상가를 항상 통과해야만 했고, 시즌이 다가오면 그곳은 이미 한 두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행세를 하느라 분주했다.
아름다운 형형 색깔을 갖춘 트리 전구들은 일정한 리듬에 맞춰 같은 듯 다른 춤을 추었고, 그런 신기한 광경을 반쯤 넋을 잃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라 보는 것이 나의 하교길 하나의 중요한 이벤트였다.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예쁜 소품들과 카드들은 주인들의 손에 이끌려 맵시를 뽐내며 가지런히 진열되기 바빴고, 그 많은 이쁜이들을 하나 하나 내 눈과 기억에 담는 일은 불가능했지만 마냥 즐겁고 설레여 매일을 반복했다.
생기돋는 조명들과 크리스마스 나무, 갖가지 트리 장식, 종, 촛대, 크리스마스 악세사리, 앙상한 나뭇가지 조차도 멋스러워보이는 조화, 빨강 초록 잎사귀를 가진 포인세티아. 성모마리아와 예수님의 조각상, 나팔부는 아기 천사들, 음반 가게 옆을 지날 때면 무한대로 캐롤 송을 뽐냈고 어울리지 않는 이름 모를 트로트 가수들의 포스터와 외국 음반들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수천가지 종류가 넘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구경하는 일도 절대 빼놓지 않았다.
상가에서 사용하지 않는 두개의 커다란 분수대 위에 둥글게 깔아놓곤 했었는데 여러 개의 환한 주황색의 조명들이 쏘아대는 불빛은 진열된 카드의 투명 봉투 위로 반사되어 더욱 서너가지의 선명한 빛을 뿌려대 지나가는 모든이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그 곳을 돌며 카드 구경을 했는데 너무 몰입해서 거의 얼굴을 카드에 묻고 있을 정도였고, 추운 바깥과는 다르게 후끈한 실내온도, 따뜻한 조명과 여러겹 껴입은 외투 차림에 땀이 범벅이 되곤 했다. 그렇다해도 아기자기한 그림 하나, 반짝이 하나, 글씨 하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카드 구경은 아마 하교 후 나의 중요한 이벤트 중 손꼽히는 최고의 순간이 아니였나 싶다.
그 당시 멜로디 소리가 나오고 움직여지는 카드는 눌러보고 열어보고 만져보기만 해도 너무 신기해서 쏠쏠한 재미를 더해주었다.
늘 분주한 크리스마스 시즌을 준비하는 바깥 세상과는 다르게 우리 집 크리스마스는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아니 크리스마스라는 기념일 자체를 무시했다. 기독교도 아니였던 우리와는 아무 관련없는 서양 세계의 예수님 탄생일 일뿐이었고, 외국에서 따온 모든 문화는 기업들이 돈을 벌기위한 상업적 수단일뿐이고 허위 과대 광고를 한다는 것이 우리 아버지의 생각이셨다. 아마 지금도.
어찌되었든 나는 단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해보고 싶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특히나 아빠의 생각은 도저히 이해불가였다.
가족을 위해 트렌드를 따라가면 좀 어떠한가 말이다. 작은 불만이 싹트기도 했다.
우리 집 거실에는 커다란 화분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키가 커서 트리 장식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아이들이 나란히 서있었다.
눈에 띄자마자 곧장 작전을 서둘렀다.
아버지가 오시기 전 일을 끝마쳐야했기 때문이다.
지하 상가 곳곳을 탐문하였지만 가격대가 너무 높았고, 나는 그 길로 문방구로 뛰어가 반짝 반짝 빛나는 빨강, 초록, 금, 은, 파랑의 술장식이 있는 기다란 줄과 고리가 달린 볼 장식도 몇가지 골랐다. 부족한 나머지 장식은 집에 돌아와 스케이치북에 꾸며 그리고 만들었더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저녁쯤 되니 썰렁했던 우리 집은 트리 장식 옷을 입은 화분들 덕분에 빛이 났다.
그때의 뿌듯함이란!
화려한 무대의상을 갈아입은 듯한 화분들은 과하게 매단 장식들로 인해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분명 내 눈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활기차보였다.
그 해 겨울이 지나갈 때까지 장식을 떼지 않고 싶었지만 단 하루만에 화려한 무대는 빛을 잃었다.
트리 장식을 해 놓은 모습을 보고 아버지께서 노발대발하시고 장식 모두를 떼어 버렸던 것이다.
장식도 장식이었지만, 나의 크리스마스의 작은 소원, 환상은 그대로 묻혀버렸다.
실망이었으려나. 지금 떠올려보면 작은 가슴에 상처도 받았겠다 싶다.
크지 않은 사소한 기쁨과 행복을 거절당했을 때의 감정은 겉으로 보기엔 괜찮은 것 같았지만, 용기를 내어 흔들었던 꼬리는 숨기고만 싶은 것이 되었던 것 같다. 그 후 아버지가 싫어하는 부분에 대해 섣부른 용기는 내지 않았고, 감정은 최대한 자제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잠시나마 꿈꾸었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에 대한 어릴 적 나의 환상은 그걸로 끝이었지만, 지금이라도 소심한 듯 대담한 돌발 행동을 해준 나에게 박수와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캄캄한 밤 멀리서 아파트를 향해 걸어오다보면 거실 베란다 쪽 창문을 통해 유난스럽게 반짝이며 움직이던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이 보이던 집들 덕분에 구경만으로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나름 즐길 수 있었고,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길이 심심하지 않았다.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어떤 집일까 궁금했다.
트리는 어떤 모양일까.
언제까지 반짝일까.
유치한 생각이었지만 트리가 있는 그 집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다.그러면 동화에서 보던 외국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가 꼭 저 집도 그럴 것 같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트리 하나로 내가 갖지 못하는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여 웬지 모르게 질투도 났다. 동시에 쓸쓸한 기분을 느꼈던 것도 같다.
다른때는 괜찮다가도 꼭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트리 장식을 하는 집은 즐거워보였고, 장식을 하지 않는 집은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모르게 내 머리가 그렇게 구분 짓기도 했다. 그러다 막상 집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곤 했는데 그런 기분은 20살이 지난 때까지 이어졌으니 혼자 꽤 오랜 시간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거 같아 웃음이 난다.
매년 어김없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깜깜한 곳에 환한 불빛을 터뜨리며 춤을 추는 트리.
그 아래 놓여있을 듯한 커다란 선물 박스.
맛있고 달콤한 케익.
잔잔히 흘러나오는 캐롤.
나 아닌 누군가에게도 있을 법한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매년 행복했던 추억일 것이다.
여름에 떠올려보는 겨울 추억
그 때문일까.
가정을 꾸린 후 나는 매년 크리스마스 트리를 꼭 장식한다. 서로 하겠다고 장식을 하며 아이들이 아웅다웅 티격대는 모습. 예쁘게 꾸며진 트리 위에 살포시 얹은 몇백개의 작은 전구들이 빛을 보일 때 환호하고 함께 박수치며 뿌듯해하는 모습.
크리스마스 아침 눈 뜨자마자 달려가 놓여진 트리 아래 커다란 선물 상자를 뜯어보고 눈이 커지는 모습- 산타가 다녀갔다는 동화 속 이야기가 실화가 되어 상상력을 자극해주면 아이들은 한동안 빙글 빙글 돌며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나와 남편은 선의의 거짓말을 하며 007하듯 몰래 암호 문자를 주고 받으며 선물을 준비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추억으로 남겨질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만큼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하나도 남김없이 고스란히 베길 바란다. 그 순간을 기억할 때는 행복하고 즐거움만 가득해 한동안 가슴 안에 따뜻함과 사랑이 남길.
비록 어릴 적 내가 꿈꿔오던 크리스마스를 단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지만, 어른이 된 후 나의 크리스마스는 더욱 특별해졌고 그때의 나의 소원은 매년 이루어지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