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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보너머 May 20. 2021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서평

신좌파와 리버럴의 기묘한 동거

김보현 운영위원의 서평입니다.


1. 들어가는 


  프랑스의 68 혁명, 그리고 미국의 휴런항 선언과 신사회운동은 신좌파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좌파들은 과거 계급투쟁을 부르짖던 구좌파들과 다르게 여성・유색인종・성소수자・반전・환경 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피스 마크 목걸이를 메고 있는 히피가 떠오른다.


  반면 리버럴은 누구인가? 이들은 중도적이고 온건한 진보세력으로서 기본적으로 자유주의・개인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공산주의・사회주의 좌파가 정권을 잡지 못한 국가에서는 리버럴 정당이 노동의제를 대변해주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노동당과 미국의 민주당이 그렇다. 과거에는 이러한 정당들이 민중의 당이자 노동자의 당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수트를 빼입은 고학력, 전문직 엘리트가 떠오른다.


  재밌는 점은 오늘날 리버럴들이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로 대표되는 신좌파 의제의 대변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노동자의 대변자였던 리버럴이 신좌파 사상으로 무장한 엘리트가 되었을까? 히피와 엘리트 사이의 기묘한 간극에서 오는 미스터리를 토머스 프랭크의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이 해결해 주었다.




2. 힙스터와 은행가는 친구다


  2021년 5월 12일,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가 비트코인으로 자사의 제품을 구입하는 거래를 중단시켰다. 그는 비트코인 채굴을 통해 발생하는 에너지 과소비가 환경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오늘날 부자들은 과거처럼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성차별, 인종차별, 환경오염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한다. 미국의 리버럴들에게 월 스트리트와 실리콘 밸리의 부자들은 재력과 도덕성을 모두 갖춘 인물들이다.


  과거에도 멸종 위기 동식물을 보호하는 등 '진보적으로 보이는' 부자들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오늘날 보수적인 부자와 진보적인 부자 사이에는 개인적 취향으로 설명될 수 없는 훨씬 큰 간극이 존재한다. 리버럴들은 그들을 더러운 부자 대 깨끗한 부자, 거만한 자본 대 겸손한 자본으로 분류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존 스펄링이라는 억만장자는 미국을 '레트로 아메리카'와 '메트로 아메리카'로 구분했다.


  거대한 분열이라는 저서를 통해 존 스펄링은 미국이 양립 불가능한 두 개의 문화적・경제적 체제로 분할되었다고 단언했다. 이는 가난한 자들과 부유한 자들의 균열이 아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유나 농작물 생산에 매진하며, 뚱뚱한 남자들이 야만적인 구호를 외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미국(레트로 아메리카). 그리고 현대적이고 미래에 초점을 맞춘, 합리성과 과학성 그리고 첨단기술을 갖춘, 발레와 같이 세련된 문화생활을 즐기는 우수한 인재들의 미국(메트로 아메리카). 스펄링은 이러한 구분에 따라 민주당에게 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뉴딜 시대의 정치를 당장 그만두라고 조언했다. 민주당이 새로 주목해야 할 집단은 월 스트리트와 실리콘 밸리에 있었다.


  토머스 프랭크는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에서 이와 같은 경향을 <힙스터와 은행가는 친구다>라고 표현했다. 1972년의 조지 맥거번부터, 2001년의 빌 클린턴까지 여성, 소수자, 전문직 종사자 집단은 민주당 내에서 훨씬 더 중요해졌다. 이 노동자를 대체할 새로운 집단은 젊음, 개성, 첨단기술을 상징하는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심지어 신좌파의 문화였던 반문화는 이들을 통해 주류 사회에 스며들었다. 오늘날 반문화를 볼 수 있는 어느 장소에서든 부자들과 민주당원들을 볼 수 있다. 텍사스 오스틴에서 해마다 열려 온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축제는 원래 인디 록 페스티벌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첨단 기술 사업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총회로 탈바꿈했다. 이 축제에서는 힙스터들과 벤처 자본가들이 같은 거리를 활보한다. 어떤 민주당 정치인들에게는 이곳이 일종의 자연 서식지가 되었다.(p. 175)


2015년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축제에서 미셸 리의 연설

  심지어 2015년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축제에서는 전직 구글 임원이었던 미셸 리가 미국 특허 상표청의 새로운 청장이 되는 취임식이 열렸다. 이 행사의 주재자는 서브 프라임 대출 은행의 전임 회장이자 당시 상무부 장관이었던 페니 프리츠커였다. 래퍼인 페티 왑과 스눕독, 하드록 밴드 더 좀비스를 보러 온 관객들 앞에서 이루어진 이 취임식은 신좌파와 리버럴의 동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3. 조지 맥거번: 뉴딜 연합은 끝났다 


  1970~2000년대까지 민주당에서는 다양한 개혁 운동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변함없이 등장한 화두는 '뉴딜 연합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블루칼라보다 화이트칼라가 많아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첨단 기술 산업이 발달한 선벨트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힘을 잃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해체되어 마땅하기 때문에 등등. 하지만 상이한 이유를 제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민주당의 미래에 대한 비전은 확고히 일치했다. 그것은 '고학력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당'이었다.


  본격적인 변화는 1972년 대선 준비였다. 조지 맥거번을 지지하는 민주당원들은 전당 대회에 참가할 대표단을 인구 비례에 따라 구성하도록 의무화했다. 덕분에 여성과 소수자, 젊은이가 대표단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정작 민주당은 노동자 계급의 대변자로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1968년에 수백만 명의 노동계급 유권자를 동원했던 민주당에서 노동계급은 그들의 자리를 상실했다.

 

개혁 이전의 정당 시스템은 한쪽 당, 즉 공화당이 화이트칼라 유권자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고 다른 한쪽 당, 즉 민주당이 블루칼라 유권자에게 주로 관심을 쏟는 형국이었다. 개혁 이후에 양 당은 각자 다른 성향의 화이트칼라 연합에 공을 들였다. 한편 민주당의 주요 지지 기반이던 블루칼라들은 한때 그들의 요구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여주었던 당에 다시 비집고 들어가고자 애써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 바이런 셰이퍼(⟪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69페이지에서 재인용)


  민주당의 개혁을 주도했던 로비스트, 프레데릭 더턴은 "정치권력의 무게중심"은 "경제적인 영역에서 어느 정도 정신적인 영역"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무게중심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정신적인 문제로 옮겨갔고 조만간 영적인 영역으로 옮겨갈 터였다.(p. 72) 지극히 신좌파적인 사상이 민주당에 스며들기 시작한 시점이다.


  이러한 개혁을 통해 민주당에는 '새로운 민주당원'들이 유입되었다. 역사학자 제퍼슨 코위는 "새로운 민주당원들은 반전 운동이나 맥거번 캠프, 평화 봉사단, 여성 운동 출신이거나 교외에 거주하는 사람들, 전문직 종사자들이었고 노조나 빈민가와는 동떨어진 사람들이었다."라고 설명했다. 1977년 당선된 민주당 출신 대통령 지미 카터는 공공사업을 취소하거나 노동조합을 대놓고 냉대하는 등 온갖 노골적인 방식으로 뉴딜 전통에 결별을 고했다. 그는 부자들을 위한 감세와 규제 완화, 긴축 정책을 실행했다. 덕분에 민주당의 근간을 이루었던 일반 노동자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p. 77) 심지어 카터의 조언자였던 경제학자 앨프리드 칸은 "나는 전미 트럭 운전사 조합원들이 가난해지길 바란다.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가난해지길 바란다."와 같은 반노동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과연 사라진 뉴딜 연합을 부활시킬 수 있을까?



4. 빌 클린턴: 누구나 여피족이 될 수 있다


  "바보야, 중요한 건 경제야"라는 유명한 문구를 들고 나온 빌 클린턴은 겉으로 보기에 블루칼라 노동계층을 대변하는 듯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공황 시대의 민주당에 대한 향수와 그들의 업적을 지우는데 바빴다. 빌 클린턴은 노동계급 대신 여피족들을 감싸주었다. 여피족이란 'Young Urban Professional'의 약자로서 대도시에 근무하는 고학력 전문직을 뜻한다. 여피족은 히피족의 신좌파적 사상을 주류에 퍼뜨린 기반이 되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와 같이 히피로 생활하던 이들이 재력을 갖추고 여피가 된 사례도 있다.


<아메리칸 사이코>는 여피족들의 생활을 풍자적으로 그려낸 영화다.


  빌 클린턴 시대에 누군가의 경제적 수준은 가방끈 길이와 SAT 점수로 결정되는 것이었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능력주의적인 분위기 아래에서 노동 계급이 블루칼라 노동에 종사하는 이유는 그들의 노력과 지능 탓이었다. 대학교 졸업장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윤택한 삶을 누리고, 학교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깡통을 줍는 신세가 되었다. 좋은 직장을 가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고학력자가 되어라. 노력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라. 스스로의 삶을 바꾸어라. 누구나 여피족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빌 클린턴의 관점이었고, 미래 민주당의 기본 입장이 된다.


  히피들이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모였다면, 여피들은 클린턴 내각에 모여들었다. 빌 클린턴은 '앞선 어느 정부보다' 미국다운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백인, 흑인, 아시아인, 남성, 여성 등 그의 내각은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정체성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대중들과 다를 게 없는 사람들로 보였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그들은 평범한 노동자들과 괴리된 사람들이었다.(p. 111)


  빌 클린턴은 마약 크랙과 코카인 사이에 100대 1의 양형 편차를 두는 조항에 직접 서명했다. 빈곤층 흑인이 주로 사용하는 마약인 크랙은 사회악으로 여겨진 반면에, 여피족들이 주로 사용하는 코카인은 무해한 범죄로 간주되었다. 빌 클린턴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을 절대 선으로 취급했고, 덕분에 고용주들은 노조를 결성하려는 노동자들을 향해 걸핏하면 사업장을 멕시코로 옮기겠다고 위협했다. 클린턴 정부 아래에서 범죄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고, 복지와 국가 지출은 축소되고, 불평등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다. 이제 미국인들은 보수적인 대통령과 진보적인 대통령 중 선택하는 게 아니라, 보수적인 대통령 후보 두 명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월 스트리트의 금융가들은 큰 이익을 얻었고, 반대로 노동자들은 빈곤에 허덕이거나 감옥에 갇혔다. 하지만 민주당은 아무런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저자인 토머스 프랭크는 이러한 사태가 클린턴이 민주당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만약 공화당 대통령이 규제 철폐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공화당은 심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대통령이 그런 일을 벌인다면 개인의 일탈이 될 뿐이었다. 노동자들의 '친구'만이 노동자들의 '배신자'가 될 수 있다는 역설이다.



5. 버락 오바마: 전문직들의 정당이 된 민주당


  버락 오바마는 지금까지 민주당의 행보와 다르게 선거운동에서 뉴딜과 계급 의제를 언급했다. 그러나 언제나 말 뿐이었고,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처우와 입지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바마 행정부 직원의 90%는 전문 학위를 소유했고, 25%는 하버드를 졸업했거나 하버드에서 강의한 경력이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유독 '똑똑함(smart)'이라는 가치에 집중했다. 오바마는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 그 이유를 항상 '그것이 스마트하기 때문'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오바마가 대법관을 뽑을 때도 기준은 단 한 가지. 똑똑함이었다.


결국 진보 계급에게 중요한 것은 딱 하나 바로 똑똑함이었다. 그들에게 대법원이란 마치 전 우주적인 차원에서 실시된 SAT 시험에서 보통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점수를 기록한 능력자를 선발하는 대학과도 같았다.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토머스 프랭크, 열린책들, p. 196.


  그렇다면 국정을 운영하는데 똑똑한 사람을 뽑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일까? 첫째로 전문성, 학력주의, 능력주의의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게 된다. 오바마가 대통령이던 시절 전문가적 기질이 부족하다면서 상대를 무시하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었다. 2014년 아이오와 주 민주당 의원 중 한 명은 상대 공화당 의원에게 "로스쿨도 가본 적 없는 아이오와 출신 농부"라고 모욕을 가했다. 민주당이 정말 노동자들의 당이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민주당 브루스 브레일리 의원이 공화당 척 그래슬리 의원에게 한 발언에 대한 워싱턴 포스트 기사.

  

  둘째로 같은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게토를 만들어 대중과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전문직 종사자들은 말 그대로 어떤 '전문적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비전문가인 대중들의 의견은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월 스트리트의 불가해한 전문 용어와 진보된 금융 상품, 그리고 전문가적인 진지함은 진보주의자들에게 절대적이고 조건반사적인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야기하여 수많은 대중들을 생활고에 빠뜨린 월 스트리트의 금융 상품은 너무나 복잡해서 이를 조사하던 법무부 차관이 "지금 우리는 금융의 탈을 쓴 로켓 과학을 다루고 있다"고 푸념을 늘어놓을 정도였다. 대중들은 자신이 거리로 나앉은 이유조차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전문직들은 자신의 행동을 '과학 대 비과학', '스마트함 대 멍청함', '옳음 대 그름', 심지어 '선 대 악'의 구도로 몰고 간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실업자들을 구제하는 것보다 은행들을 구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중산층 블루칼라들의 임금은 줄어들고, 실리콘 밸리 기업가의 보수는 늘어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플랫폼 경제와 기술 혁신으로 인하여 기존의 업자들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는 민주적 토론이 필요 없다. 그저 전문가들의 의견과 결정만이 필요할 뿐이다. 오늘날의 진보주의는 노동자들의 철학이 아니라 고학력 전문직들의 철학이 되었다.



6. 힐러리 클린턴: 천장은 없다


  힐러리 클린턴은 2015년 3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천장은 없다'라는 행사를 주최했다. 아마 클린턴은 유리천장을 없앤다는 취지로 행사를 열었을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자리에 모여 서로에게 찬사의 말과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포천 500대 기업에서 여성 임원이 매우 적다는 사실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표출했다. 하지만 포천 500대 기업 매장 한편에서 일하는 노동자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월마트나 아마존 등 저임금으로 악명 높은 기업이라도 여성 임원만 나오면 된다는 식이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저자인 토머스 프랭크는 아래와 같이 비판한다.


힐러리는 '능력주의'와 정확히 일치하는 페미니즘으로, 즉 자신의 재능이 허락하는 만큼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전문직 여성들의 투쟁에만 관심을 갖는 버전의 페미니즘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토머스 프랭크, 열린책들, p. 331.


  2007년 <포천> 잡지의 표지에는 힐러리 클린턴의 사진을 배경으로 "재계는 힐러리를 사랑한다!"라는 글귀가 인쇄되어 있었다. 시티 은행 회장, 골드만 삭스 대표, 재무 장관을 거친 로버트 루빈은 대통령의 연설에서 '계급적인 색채가 짙은 표현'이 사라지고 총선 과정에서 민주당이 '계급 갈등'에 호소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힐러리가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우버와 같은 플랫폼 노동이 문제로 떠올랐을 때 힐러리는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서 애매한 발언을 늘어놓다가 얼른 이민 문제, 환경 문제, 동성 결혼 문제 등 '민주당을 하나로 묶어주는' 주제로 황급히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힐러리의 관심은 철저히 '천장'에 머물렀고, '바닥'은 없었다.



  토머스 프랭크는 진보주의자들이 항상 논란의 여지없는 '압도적인 선'을 찾아다닌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매우 엄격한 도덕을 추구하고,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단순한 권선징악 구도를 연출하고, 자신과 뜻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온갖 종류의 잣대를 들이댄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람들의 주의를 분산시킬 뿐이다. 어떤 정책을 시행하면서 그 정책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회피하는 것이다.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민주당 정부는 소리쳐왔지만 정작 실행된 것은 북미 자유 무역 협정, 은행 규제 철폐, 대대적인 교도소 증설과 같은 보수적인 정책들이다.(p. 312)



7. 나가는 말


  이 책이 2016년에 나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트럼피즘과 능력주의 논쟁을 정확히 예언한 책이기 때문이다. 토머스 프랭크는 이러한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이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피력한다. 이 책은 한때 민중의 당을 표방했던 전 세계의 정당들이 지지기반을 버리고 전문직 엘리트들과 영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민주당은 그 어느 때보다 전문직 계급에게 봉사하고 그들을 찬양하는 데 헌신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민중의 당'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민들이 역겨움을 느낄 정도로 독선과 계급 특권 조합을 선보이고 있는 점이다. 게다가 2년마다 공화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국의 유권자들을 자신들의 깃발 아래로 결집시킬 수 있을 거라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토머스 프랭크, 열린책들, p. 348.


  "민주당을 찍어주세요. 왜냐하면 공화당을 찍을 수는 없으니까요."라고 외치는 것은 정치를 도덕의 영역으로 치환하는 리버럴들의 특징이다. 리버럴들은 세련된 언사로 정치적 올바름, 정체성 정치와 같은 가치들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계급 문제만 나오면 그들이 자랑하던 공감 능력은 사라지고, 뜨겁게 불타오르던 심장은 짜게 식는다.


  과연 한국의 민주당은 저자가 경고한 '착각'과 '오만'의 결과를 얼마나 피해 갈 수 있을까? 모두가 느끼고 있듯이 심판의 날은 이미 시작된 듯하다. 부디 제정신이 남아있는 리버럴이 있다면 토머스 프랭크의 경고를 똑똑히 새기길 바란다. 입으로는 도덕적 올바름을 외치지만, 손으로는 부자들의 돈을 챙기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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