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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Jan 15. 2019

워크숍, 좋아하세요?

Year-end Workshop 에필로그

<Year-end Workshop>은 개개인의 한 해를 제대로 돌아보고, 내년을 차분히 준비하기 위해 설계된 워크숍이다. 퍼실리테이터는 따로 필요 없고, 설명에 따라서 순서대로 시간에 맞춰서 진행하면 된다. 각 세션마다 시간이 정해져 있다. 사람마다 걸리는 시간이 달라서 꼭 그 시간 안에 완성할 필요는 없지만, 시간 압박이 있으면 조금 더 빨리 할 수 있으므로 시간을 재면서 하는 걸 추천한다.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2명 이상 모여서 하는 걸 추천하지만, 혼자서 해도 상관없다. 


지난 12월 30일, 쿠팡 본사에서 <Year-end Workshop>을 진행했다. 본 워크숍의 목적은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각자의 한 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준비하며, 하이퍼 아일랜드 워크숍 방법론을 배워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서로에게 영감을 받는 것으로 국내 및 해외 대기업, 에이전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 마케터, AE, 카피라이터, 아트 디렉터, 개발자, 에디터 등 60여 명이 워크숍에 참여했다. 


워크숍은 쿠팡 디자이너 분들께서 일찍부터 오셔서 입장, 안내, 정리 등 운영을 도와주셨고, 참석자 분들께서도 시간도 칼 같이 지켜주시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신 덕분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쿠팡! 다음에도 함께해요! 워크숍 퍼실리테이터로 나와 함께 현재 하이퍼 아일랜드 디자인 리드 코스에 재학 중인 새별이 참여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한다. 


워크숍이 끝나고 여기저기서 <Year-end Workshop>을 이미 진행했거나, 진행할 계획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워크숍에 참석한 분들 뿐만 아니라 혼자서 해봤거나 모임에서 진행한다는 분도 있었고, 미국에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서 디자이너를 모아놓고 진행하셨다는 분도 있었고, 워크숍 툴을 조금 변형해 본인이 진행하시는 일본 독서 모임에서 진행한다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Year-end Workshop>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 퍼실리테이션 팁, 피드백을 나눠볼까 한다. 


쿠팡 최고. 쿠팡 사랑해요.



워크숍은 단합대회가 아니다


먼저 워크숍에 대한 오해부터 바로잡고 가자. 워크숍은 팀끼리 1박 2일 교외로 놀러 가서 고기나 구워 먹는 단합대회가 아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짧게는 2시간, 길게는 최대 4주까지 서로 머리를 맞대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활동이다. 어디선가 외국인들이 모여서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토론을 하거나, 심각한 표정으로 전지에 무언가를 적는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사진이 워크숍의 원래 느낌에 가깝다. 구글의 디자인 스프린트도 잘 설계된 워크숍 방법론 중 하나다. 


워크숍은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활동이 많다. 그러다 보니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생각을 공유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 결과,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내는 효율적인 팀으로 거듭나게 된다. 나는 워크숍이 한국의 수직적 조직 문화에서 비롯된 의사소통 결핍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번 워크숍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전에 스웨덴에 맞게 설계된 워크숍을 한국 문화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워크숍 설계하기


수평적 조직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스웨덴에서 의사소통은 연차, 직급, 나이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며, 모두가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피력한다. 이런 문화에서 워크숍은 단 시간 내에 다양한 의사결정자의 의견이 담긴 결과물을 내는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그러나 상하 간의 예의를 중시하고, 말하기 조심스러워하고, 의견을 수동적으로 피력하는 한국에서 워크숍은 어차피 최고 의사결정자 의견대로 하면 빠르고 편할 것을 괜히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간편한 과정을 더 어렵고 복잡하고 만드는, 그래서 결국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어떻게 해야 이 부분을 조율할 수 있을까? 나는 일단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광고회사, 스타트업, 대학교 등을 돌며 하이퍼 아일랜드에서 가져온 방법론으로 간단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워크숍의 어떤 부분이 한국에 정서에 맞고, 안 맞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얻은 교훈으로 <Year-end Workshop>의 초안을 세웠고 하이퍼 아일랜드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그다음 브런치에 글을 올려서 독자 피드백을 받았고, 베타 테스트로 디자인 에이전시 듀오톤, 카카오 모빌리티에서 간단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받은 피드백으로 최종 워크숍 진행 계획을 완성했다.


카카오모빌리티에서 한 컷


여기서 배운 점 몇 가지만 공유해보자면, 먼저 수동적인 참가자의 긴장과 마음을 풀고,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마이크로 활동이 필요하다. 마이크로 활동은 짧고, 간단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다. 대신 누구든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부담이 없어야 한다. 활동이 재미있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는 지금 워크숍을 하는 거지 레크리에이션을 하는 게 아니다. 업무 관련성은 없을수록 좋다. 시작부터 긴장하고 힘 뺄 필요 없다. <Year-end Workshop>에서는 "올해의 ____"와 "Theme of the year"를 사용했다. 


워크숍은 무언가를 배우는 자리는 아니다. 오히려 워크숍에서 제공하는 방법론으로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에 가깝다. 스웨덴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면 방법을 디테일하게 설명하지 않고 개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수동적인 자세로 참여하면서 퍼실리테이터가 떠먹여 주길 기다리는 참가자가 많다. 이들은 설명과 지시가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하게 적혀있으면 혼란에 빠지며, 금세 워크숍에 회의적인 태도로 돌아선다. 그래서 활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시를 보여주면 더 좋지만, 종종 예시에 있는 그대로 따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예시를 들거나 마지막에 예시를 따라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어야 한다.


근배님 리암님 활-짝



워크숍 잘 진행하기


계획은 잘 세워놓고 실행을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워크숍을 잘 진행하기 위해서는 퍼실리테이션이 필요하다. 나는 이번 워크숍의 퍼실리테이터로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내가 생각하는 퍼실리테이션은 워크숍에 참석한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 퍼실리테이터는 우선 참가자가 어떤 상태인지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그들이 최상의 상태에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궁금한 내용은 없는지, 어려운 부분은 없는지, 시간은 넉넉한지, 쉬는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지속적으로 물어보면서 진행하면 좋다. 


칼 같은 시간 운용은 퍼실리테이션의 기본이다. 그러나 서두르거나 시간 안에 끝내려고 허둥지둥 댈 필요는 없다. 워크숍의 스케줄과 모든 활동은 결국 참가자가 시간 내에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스케줄만 잘 지키고 참가자가 기대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면 좋은 워크숍이라고 할 수 없다. 퍼실리테이터가 참가자의 상태를 보면서 시간을 잘 조정해나가면 된다. 쉬는 시간이라고 무조건 쉴 필요도 없다. 사실 상황과 참가자에 따라 시간 운용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설계 단계에서 여유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놓으면 좋다. <Year-end Workshop>에는 여유 시간이 20분 정도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대화 중일 때는 조금 천천히 진행하자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음악은 워크숍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조성한다. 혼자서 하는 활동의 경우 음량을 조금 키워서 참가자 간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차단하고, 각자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그룹으로 하는 활동은 음량을 북적북적한 느낌이 드는 카페 소음 수준으로 낮춰서 다른 그룹과의 연결을 차단하고, 그룹 간의 대화를 유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 나는 Boy Pablo나 Kings of Convienience 음악처럼 나른하고 잔잔한 음악을 틀거나 가사가 없는 재즈 힙합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편이다.


더 많은 팁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본인이 편하고, 잘하는 퍼실리테이션 스타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 나는 자연스럽고 유쾌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편이라서 중간중간 농담도 던지고, 참가자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하지만, 이건 내 방식일 뿐이다. 퍼실리테이션에는 왕도가 없다. 본인이 조용하고, 섬세한 성격이라면 조용하고 섬세하게 참가자를 챙기면서 퍼실리테이션을 진행하면 되고, 수다스럽고 대담한 성격이라면 마찬가지로 그렇게 퍼실리테이션을 진행하면 된다. 물론 처음부터 본인 스타일을 알기는 어려우니 연습과 반복이 필수겠지만.


쉬는 시간도 잊고 워크숍에 빠져든 그들
개인적으로 참 재밌는 조합이었다



워크숍, 어떠셨어요?


워크숍이 끝나기 전, 참가자들에게 포스트잇 한 장에 짧은 피드백을 요청드렸다. 한 해를 짧은 시간 동안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의견, 다른 참가자와 이야기하고, 네트워킹 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의견, 다음에 또 참가하고 싶다는 의견, 돌아가서 회사에서, 친구들과 워크숍을 해보고 싶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개인적으로 모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신 것 같아서 안심했고, 시간은 어느 정도 의도적이었지만, 너무 짧았다고 아쉬워하셔서 조금 죄송스러웠다. 읽으면서 감사하고, 뿌듯했던 피드백 몇 개를 가져왔다.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았던 점들을 한 곳에 모아서 볼 수 있었던 시간! 시간이 짧아서 잘게 쪼개어 계획을 세우진 못했지만, 집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정리를 하면서 연말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좋은 시간 만들어주신 진재님, 새별님 감사합니다. 
한 해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여기서 배운 방법을 실생활에도 잘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시간이 금방 지나갔어요. 진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찍어보았습니다


1년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간에 쫓겨 한 해를 정리하지 못했는데. 올해 나에게 이런 사건도 있었구나. 새삼 1년이 더 값지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어요. 시간이 좀 더 길면 좋겠어요!
네트워킹 측면에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저도 오늘 배운 걸 활용해서 제 주변 지인들과 연말 파티를 해보고 싶네요. 아쉬웠던 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적었다는 것. 그래도 깊이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더 소수의 인원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의 정리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혹은 했는지도 궁금해요. 내년에도 다시 뵙기를!


피드백 너무 감사합니다. 여름에 한 번 더?


모두를 한 자리에서 만나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에서 시작한 워크숍이 이렇게까지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줄 몰랐다. 그래서 앞으로 6개월에 한 번, 한국에 올 때마다 워크숍을 진행해보려고 한다. 어떤 워크숍을 어디에서 어떤 규모로 진행하면 좋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이번에 받은 피드백처럼 시간을 조금 더 넉넉하게 잡아보려고 한다. 여름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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