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재 Oct 23. 2018

외국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괴로움

외국 회사도 출근은 출근이고, 월요일은 월요일이다

요즘따라 외국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글이 자주 보인다. 대부분 이래서 좋다, 혹은 저래서 좋다는 이야기로, 한국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의 부러움을 사고, 더 나아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도 이 흐름에 발맞추어 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외국에서 일하는 멋진 디자이너로 보이고 싶어서 즐거운 이야기만 적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나 싶은 순간이 종종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고, 조금 솔직해져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외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겪는 괴로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외국에서 일해본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외국에서 일해보고 싶은 디자이너라면 누구든 한 번쯤 생각해봐야 볼 매일매일의 괴로움들.  


언어부터 시작해보자. 나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경영학을 공부하고 광고 회사에 다녔다. 학교 다니는 내내 논술, 에세이, 발표는 나의 일상이었고, 글쓰기와 말하기 덕분에 회사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영어는 논외다. 어릴 때 아주 잠깐 외국에 나갔다 왔고, 외고에 다니면서 영어 음악에 심취한 덕에 발음은 꽤 그럴싸하다. 그러나 영어가 나를 먹여 살리지는 않았다. 부족한 영어 실력 탓에 외고생이 맞느냐는 질문도 여러 번 받았고, 회사에 가서는 동기 중에 영어를 가장 못하는 그룹에 속해서 팀장님을 속상하게 만들었다. 영어는 유학하는 동안에도 수시로 나를 괴롭혔고, 발표라도 하는 날이면 잔뜩 긴장한 탓에 손바닥 가득 땀이 흘렀다. 


스웨덴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 어렵고 답답하다. 아침 인사 던지기도 버거운데, 내 생각을 정확한 단어와 뉘앙스로 전달해야 한다니. 게다가 추상적인 디자인과 인터랙션의 움직임을 설명하려고 하니 두 세 번 말하는 건 기본이다. 단어가 생각 안 나서 막히는 순간이 하루에 몇 번씩은 찾아온다. 상대도 영어가 능숙하지 않다면, 커뮤니케이션은 점점 산으로 간다. 나는 주로 프랑스에서 온 UX 디자이너와 네덜란드에서 온 인터랙션 디자이너와 일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정말 한글로 1분이면 충분한 이야기에 최소 5분이 걸렸다. 지금은 그래도 조금 빨라졌지만, 대화가 끝나고 답답함은 여전하다. 


말하기는 발전하는 게 조금씩 보여서 그나마 괜찮다. 글쓰기는 도무지 나아지지를 않는다. 매번 답답하고 무기력하다. 이 단어가 맞는지,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 이 뉘앙스가 맞는지 확신이 안 선다. 그래서 메일 하나, 메시지 한 줄 보낼 때도 구글 번역기와 그래머리(Grammarly)는 필수다. 그래머리는 영어 문법을 수정해주는 서비스로 노트북, 핸드폰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 깔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문법 지적이라도 하는 날이면 몇 주 동안 내 문법 자존감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문장 하나에도 노이로제 걸린 사람처럼 반응하게 된다. 


질의응답은 정말 피하고 싶다


언어도 이 모양인데, 커뮤니케이션은 어떨까. 언어를 못한다고 커뮤니케이션도 못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언어를 잘한다고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은 문화와 긴밀하게 엮여있다. 문화에는 입고 자란 옷, 먹고 자란 음식, 크고 자란 집, 듣고 자란 음악, 보고 자란 영상, 디자인, 예술 등이 포함된다. 이런 문화는 맥락을 구성한다. 그리고 문화적 맥락은 커뮤니케이션의 밑바탕이 된다. 다른 언어를 사용해도 문화적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축구가 만국 공통어라는 이야기도 이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스웨덴의 문화가 내가 보고 자란 문화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일하는 문화는 말할 것도 없다. 회의 문화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책임지지 못할 말을 잘 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스웨덴 회사에서 진행되는 회의는 조금 버겁다. 모두가 자기 의견을 피력해야 하고,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이 날 때까지 회의가 계속된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 참여한 의사결정의 책임은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사람이 진다. 그러다 보니 본인이 리드를 맡지 않은 프로젝트에 책임감 없이 아무 의견이나 뱉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의견을 수용한 결론을 도출해야 하다 보니 프로젝트 리드에게도 부담이 가는 게 사실이다. 이상적인 경우야 민주적이고, 포용적이고, 효율적인 회의 방식이지만, 대부분은 비효율적이고 기 빨리는 회의가 되기 십상이다. 끝나고 집에 갈 때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다른 디자이너와 문화적 맥락을 공유하지 않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상대가 이해하기 쉬운 예시를 들면서 설명하는 편인데, 다른 디자이너에게 무언가를 설명할 때 어떤 예시를 들면 좋을지 감을 못 잡겠다. 일상 대화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보고, 들은 게 다르다 보니 어느 하나 수월한 게 없다. 서로 배우면 되는 것 아니냐고 나이브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 물론 좋은 점이라면, 다른 디자이너와 확실히 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대부분 한국, 중국이 타깃이라 내 관점이 꽤나 유용하다. 


마지막으로, 외국 회사도 출근은 출근이고, 월요일은 월요일이다. 여기라고 딱히 별빛이 내리지 않는다. 처음이야 물론 매일매일이 새롭고 즐거웠다. 심지어 출근길 지하철 풍경도 신기한 수준이었다. 오피스도 북유럽답게 아름답고,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들도 모두 멋있었다. 게다가 나는 외국에 오면서 처음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받는 프로젝트와 맡은 역할이 새로워서 배우는 재미도 있었다. 지금도 물론 하는 일은 좋다. 다만, 일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여기도 클라이언트와 매니저 대하기는 까다롭고, 하기 싫어도 참고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금세 퇴근, 주말, 월급날만 기다리는 사람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매일 밤과 일요일 밤이 다시 괴롭기 시작했다. 아, 정말.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야 여기에 더 녹아들 수 있을까? 아니,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까지 고생하고 있는 걸까? 스웨덴 생활 1년 차까지는 전자에 집중했다. 그들의 방식을 배우고 그들의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은 후자를 더 많이 고민하고 있다.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 여기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 나는 앞으로 어디에 살고 싶은가. 나는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외국으로 오기 전, 그 누구도 나에게 이런 걸 이야기해주지 않은 덕분에 하나하나 겪고, 부딪히면서 몸으로 배우고 있다. 가끔 친구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한국 사진을 보면서 부럽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면서 이 모든 시간과 노력이 불필요한 게 아닌가, 아무런 소득 없는 고통을 인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까지는 할만하다. 여기서 배우고 가지고 가야 할 것이 분명히 있고, 그걸 얻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고,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이유로 나왔고, 각자 다른 이유로 외국에서 지내고 있을 한국인 디자이너 여러분,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건투를 빌며 배부른 투정 같은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해본다. 


스웨덴 회사도 출근은 출근이고 월요일은 월요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Framer X 베타 한 달 사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