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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재 Nov 07. 2018

직관을 믿고,
느낌으로 디자인하자

구글의 디자인 컨퍼런스, SPAN 2018 참관기 #1

구글 디자인 팀은 매년 SPAN이라는 이름의 디자인 컨퍼런스를 주최한다. FORM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 샌프란시스코를 시작한 이 컨퍼런스는 뉴욕, 런던, 도쿄, 멕시코 시티 등 대륙을 넘나들며 다양한 지역에서 열렸고, 올해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열렸다. 이런 행사가 설마 북유럽에서 열리겠나 싶어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지인 덕분에 바로 근처에서 열린다는 걸 알게 되어서 바로 참가 신청을 했고, 운 좋게 표 추첨에 뽑혀서 직접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SPAN은 기간 혹은 폭, 다양성이라는 뜻으로 구글 디자인 팀은 SPAN의 개념에 세 가지 의미가 담았다고 말한다. 먼저 디자인과 테크 업계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개발자, 아티스트, 선도자가 모여 서로의 생각과 관점을 교류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 미국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행사를 개최하면서 지역의 다양성을 넓히는 것, 마지막으로 SPAN에 오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관심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행사에 참여한 250명 중 상당수는 북유럽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로, 내가 추첨에서 뽑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었나 싶다.



2018년 SPAN은 북유럽에서 열리는 만큼 연사는 북유럽과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위주로 오슬로에 본사를 두고 있는 건축사무소 Snøhetta의 디렉터 Tonje Værdal Frydenlund, 네덜란드의 디자인 스튜디오 Envisions의 디자이너 Sanne schuurman, 취리히의 디자인 스튜디오 Astrom / Zimmer, <New dark age>의 작가이자 아티스트 James Bridle,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디렉터 Isabelle Olsson, 베니스 비엔날레의 핀란드 파빌리온 큐레이터 Anni Vartola 등이 참여했다.


참가자는 디자인 스튜디오 Schick Toikka의 손으로 그리는 타이포그래피,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팀의 하드웨어 디자인, 구글 디자인 팀이 진행하는 디자인 스프린트, 음성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위한 퍼소나 디자인 등 최대 2개의 워크샵에 참가할 수 있었고, 구글 머티리얼 디자인 팀이 머티리얼 디자인을 소개하는 세션과 1:1로 스타트업의 프로덕트 디자인을 리뷰해주는 세션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핀란드의 XR/VR 스타트업 Varjo와 인터랙티브 디자인 언어를 개발하고 있는 RNDR의 데모 세션, 핀란드 디자이너들의 인터랙티브 전시, 핀란드 디자인 회사가 참가한 팝업 디자인 마켓이 열렸다. 작은 공간이 사람들의 인터랙션으로 가득 찼다.


사실 가기 전만 해도 내 기준 생소한 이름의 연사가 많고, 직접적인 업무 관련성도 없는 데다가, 구글 디자인 팀이 진행하는 세션도 그리 많지는 않아서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세션이 진행될수록 구글 디자인 팀에서 이 연사를 왜 초대했고, 참가자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고, 개개인이 무엇을 느끼게 하고 싶은지가 분명해져서 마지막 세션이 진행될 즈음에는 조금 더 듣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이 순간의 느낌을 기록하고 싶어서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보고 들은 프로젝트와 케이스 스터디, 기술과 디자인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메모장에 옮겨 적었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곧 모든 세션이 유튜브에 영상으로 올라오겠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세션 몇 가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Design thinking feeling.

Isabelle Olsson, 구글 하드웨어 팀 디자인 디렉터


먼저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팀의 디자인 디렉터 이자벨 올슨 Isabelle Olsson의 세션을 가져왔다. 그녀는 구글 하드웨어 구글 홈, 웨어러블 등 하드웨어 디자인 팀을 이끌고 있으며, 20분 동안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팀이 사용하고 있는 디자인 언어, 구글 홈 미니를 디자인하면서 배운 4가지,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공유했다. 지금부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I believe in design feeling,
not design thinking


디자이너들은 그동안 느낌적인 느낌만으로 디자인하지 않도록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디자인하도록 훈련받았다. 그러나 최근 디자인 트렌드는 개인의 직관과 느낌에 조금 더 귀 기울여도 괜찮다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그녀 또한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 중 하나로, 디자인 씽킹보다 디자인이 주는 느낌을 믿으며, 이런 흐름은 디자인을 조금 더 빠르게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만든다고 말한다.




Design Language of Google Hardware


기술과 감정이 만나는 지점은 어디일까? 기술은 지난 30년 동안 우리에게 복잡하고, 어둡고, 파랗고, 기술적이고, 어려운 느낌을 주었다.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팀은 이 고정관념을 깨는 것에 도전하기로 했고, 간단한 비유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스톡홀름의 겨울은 춥고, 어둡고, 우울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지난밤 내린 눈을 보고 있으면, 그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세상 모든 게 조용하고, 차분하고, 단순해진다. 눈이 가진 차분하고 단순한 형태와 부드러운 느낌은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팀이 몇 년 동안 만든 제품 디자인의 기초가 되었다.  


구글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체계화하여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 미션이다. 그러면 눈과 구글의 미션을 어떤 연결할 수 있을까? 2년 전,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팀은 구글의 핵심 브랜드 가치가 무엇인지 세 가지로 정의했다. 구글이 만드는 제품은 사용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늘 단순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Human & Simplicity, 구글은 항상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궁금해하며 다채로운 색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Optimistic, 구글은 늘 현상과 관습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Daring을 뽑아냈다.


이들은 세 가지 핵심 가치를 디자인 언어로 재해석했다. Human & Simplicity는 조금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도록 디자인하는 것. 베개처럼 단순하지만, 부드러운 형태에 겉을 순수한 색의 패브릭으로 감싼 구글 홈 미니에서 살펴볼 수 있다. Optimisitic은 사용자를 더 즐겁고,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디자인하는 것. 유쾌한 뒷면과 다채로운 색으로 출시한 구글 스마트폰 픽셀에 녹아있다. Daring은 예상을 뒤엎을 각오로 디자인하는 것. 모든 부분을 패브릭으로 만든 구글 데이드림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자벨과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팀은 구글의 핵심 가치를 뽑아내서 디자인 언어를 정립하고, 구글 홈 시리즈, 픽셀 시리즈, VR 헤드셋 데이드림 등 구글의 다양한 하드웨어를 디자인해왔다. 이 과정에서 그녀와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팀은 무엇을 배웠을까? 지금부터는 이자벨이 그 과정에서 배운 4가지에 대해 들어보자.



1. Share the same image


먼저, 모두 같은 그림을 공유하자. 한 회의실에서 같이 이야기해도 각자는 다른 생각을 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면 디자인팀이든 엔지니어링팀이든, CEO든 상관없다. 디자이너의 일은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정확하게 그려내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등장한 눈이라는 비유는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팀이 추구하는 미학이 무엇인지 구체화하고, 이런 미학을 구글 홈을 비롯한 구글의 하드웨어 전반에서 어떤 디자인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지 설명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모두가 같은 그림을 공유하는 것은 디자인뿐 아니라 제품이 하는 일을 정의하는 것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구글 홈 허브는 "모든 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비주얼 어시스턴트"라는 문장으로 과제를 정의했다. 짧고 단순한 문장이지만, 여기에는 구글 홈 허브의 모든 디자인 과제가 담겨있다. 가령 "모든 방"이라는 단어에는 침실은 물론 거실에서도 아름답게 동작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식이다.




2. Ground the unfamiliar in the familiar


두 번째, 혁신적인 제품을 디자인할 때에는 익숙한 것에 기반을 두자.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준비가 되어있을지 몰라도, 세상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팀은 구글 홈 허브를 디자인하면서 할 때 이 제품이 최신 기술이 들어간 제품의 일종인지, 아니면 인테리어의 일부인지 고민했고 둘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그 결과로 Ambient EQ라는 기능을 만들었다. 이는 제품이 집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액정의 색과 밝기를 주변 환경에 따라 조절하는 기능으로, 주변이 밝으면 밝아지고, 어두우면 같이 어두워지면서 배경에 녹아드는 사진 액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3. Think in action


세 번째, 행동하면서 생각하자. 아주 이른 시점부터 프로토타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팀도 구글 홈 허브를 만들면서 정말 많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초기 디자인은 디자인 팀은 물론 다른 팀 사람들 눈에도 못 생기고, 무겁고, 낡고, 크다는 느낌을 주었고, 심지어 벽돌 같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이들은 처음으로 돌아가 이 제품이 어디에 필요한지 다시 생각했다. 이들은 화이트보드가 달린 프로토타입을 포스트잇 크기부터 TV까지 가능한 모든 화면 크기로 만들어서 디자이너, 엔지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할 것 없이 각자 집에 다양한 위치에 가져다 놓고, 이 화면에서 어떤 정보를 보고 싶은지 써오기로 했다.


그 결과로 이들이 처음 생각한 화면 크기가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든 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비주얼 어시스턴트라는 컨셉에 들어맞기 위해서는 침대 옆이나, 복도, 혹은 복잡한 주방에 놓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여야 했고, 이 맥락에서 보고 싶고, 필요한 정보들은 그냥 슬쩍 흘겨보면 충분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구글 홈 허브는 원래 계획보다 훨씬 작은 화면 크기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4. Rehearse the future


마지막으로, 미래는 어떻게 될지 리허설해보자. 이는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요약한 문장이나 다름없다. 특히 제품의 색, 재료, 마감에 있어서 실제로 어떻게 나올지 미리 알아보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며, 그 과정에서 리서치, 프로토타입, 테스트는 필수다. 그녀는 사용하고자 하는 색이 실제 조명 환경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미리 알아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색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다고 한다.


실제 집에 가깝게 꾸며진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팀 사무실에는 커다란 선반이 있는데 제품 프로토타입이 나올 때마다 여기에다 진열해놓는다. 회의실에 앉아서 진지한 표정으로 제품 디자인을 바라보는 대신 이렇게 하루에 20번씩 프로토타입을 스쳐 지나가다 보면 이 제품이 실제 생활에 녹아들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자연스럽게 보이는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제품을 보고 묻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Follow your intuition,
what does it feels like.


그녀는 말한다. 생각을 묻지 말고, 느낌이 어떤지 묻자. 지금까지 전혀 듣지 못했던 답과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아름다운 디자인은 측정할 수 없다. 느낌을 믿고, 직관을 따라가자.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팀은 구글 홈 미니의 올바른 버튼 위치를 찾기 위해 150가지 디자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만족하고, 좋아하고, 뽀뽀하고 싶고, 심지어는 먹고(?) 싶어 하는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프로토타입을 만들면 꼭 그녀의 어린 딸에게 보여준다. 어느 날 구글 로고조차 안 붙어 있던 구글 홈 맥스 프로토타입을 집에 가져갔다. 그리고 딸에게 보여주었더니 딸은 말했다.


Nice, Soft, Goog(le)!


브랜드는 당신이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라는 문구로 이번 글을 정리해본다. 다음 글에서는 James Bridle의 "Stop making things easy" 세션과 구글 하드웨어 디자인 팀의 하드웨어 디자인 워크샵을 소개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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