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이다. 육지에서는 벚꽃이 한참일텐데. 모래와 펄이 섞인 무채색의 갯벌에도 꽃이 피었다. 아무리 작업복이라지만 노랗고 빨간 원색부터 꽃분홍과 짙은 보라색까지 다채롭다. 햇볕을 가리기 위해 꽁꽁 싸맨 채양 깊은 모자에도 꽃무늬가 화려하다. 몸은 갯벌 바닥에 묶였어도 볕 좋은 봄날 여심은 한참 꽃 시절이다.
오늘은 무녀도 어촌계가 주관하는 바지락 공동작업이 있는 날이다. 장소는 무녀 1구 서드리 마을 앞 갯벌이다. 시간은 바다가 정한다. 물이 빠지고 다시 들기까지 대략 6시간이지만 대략 서너 시간 일한다. 개인당 채취량도 60킬로그램으로 정해져 있다. 시작을 알리는 어촌계장 인사말도 따로 없고 도착하는 대로 눈인사 나누며 적당한 자리 찾아 알아서들 시작한다. 벌써 빨간색 고무 대야에 소복하게 오른 바지락 더미도 보인다. 두서없어 보여도 이미 오래도록 닳고 닳은 눈썰미와 손놀림이다. 따로 바지락이 숨겨진 보물 지도를 가진 것도 아닌데, 이정표도 없이 막막한 갯벌에도 나름 선수들이 앉은 자리가 꽃자리다.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간밤의 사건 사고부터 동네 돌아가는 소식들이 중계된다. 어제 KBS ‘한국인의 밥상’ 제작팀이 다녀간 모양이다. 누구 집에서 뭘 찍었는지는 이미 다들 알고 있었다. 장자도에서는 애틋한 모자의 정을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아귀탕과 실치 회무침에 버무려 담을 계획이란다. 아마도 다음 달 5월 가족의 달 특집으로 구성되는 듯싶다. 무녀도에서도 갯벌 앞, 서드니 마을 애틋한 고부간의 사연을 고사리 우럭탕과 바지락 무침과 함께 소개될 예정이다. 최불암씨랑 같이 사진을 찍었다는 뉴스는 별 자랑에도 못 낀다. 지난번 방송에 화면발이 잘 받지 않아서 속상했다는 말을 듣고 보니 방송 출연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수다들이 오가는 사이, 어느덧 고무 대야에 수북해진 바지락은 20킬로그램 정도 담기는 그물망에 담겨 배가 닿을 수 있는 갯고랑 가까이 옮겨진다.
무녀도 바지락은 군산과 부안 식당가에서 제법 알아준다. 오염될 만한 뭔가도 없고 서해안의 풍부한 영양염류와 햇볕 좋은 갯벌 때문이다. 특히 무녀도 갯벌은 바지락이 좋아하는 모래와 펄이 적당히 섞인 혼합갯벌이다. 그래서 어른 손가락 두 마디 될 만큼 씨알도 굵고 잘긋하게 씹히는 맛도 그만이다. 탕으로 끓여낸 뜨거운 국물은 차가운 바닷바람에 얼은 몸을 녹이는데 다시 없다. 양념 고추장으로 제철 미나리와 함께 무치면 술안주로 제격이다. 다져서 죽으로 끓이면 보양식이 따로 없고 깊은 국물이 스민 칼국수는 간편식으로 인기 있다.
우스갯소리로 무녀 1구, 서드리의 지명이 ‘서둘러야 먹고 사는 동네’라고 한다지만, 무녀도 지킴이 육영인 회장님 말로는 젊은 과부 혼자서도 애들 키우며 살 수 있는 이유가 저 갯벌 때문이라고 한다. 사지 멀쩡하고 아픈 데 없이 건강해서 게으름 피우지만 않으면 아무 밑천 없는 사람도 살만한 섬이 무녀도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번 무녀도에 들어온 사람은 좀처럼 외지로 나가지 않는다. 특별히 부자가 된 사람도 없지만 그렇다고 못살게 놔 둘만큼 무심한 동네가 아니다. 어촌계도 그렇고 부녀회도 그렇고 의기투합 잘 되는 섬이 무녀도다.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 갯골은 깊다. 사리때 썰물에도 큰 배가 다니는 뱃길이다. 1985년에 두 섬을 잇는 다리, 선유대교가 놓였는데 그전까지는 선유도 쪽 나루와 무녀도 쪽 나루를 잇는 돛배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진또깡’이라고 부르는 무녀도 선착장은 썰물에도 배를 댈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공동작업으로 캔 바지락은 선외기라고 불리는 작은 배로 이곳에 옮겨져 무게를 잰다. 저울은 솔직하다. 한나절 노동의 무게가 고스란히 계량되면 어촌계원 중 한 사람이 작은 표 딱지에 날짜와 작업자 그리고 무게를 적어 준다. 한 사람 한 사람 저울의 눈금이 나올 때마다 주변이 시끌시끌해진다. 계량을 마친 바지락 보따리는 23킬로그램씩 정량화해서 진또깡 나루 가장자리에 쌓아둔다. 여자들만으로는 버거운 작업이다. 이제 곧 바지락을 실어 갈 배가 오던지 때로는 객선에 실어 보내기도 한다. 망 하나당 5만3천 원씩 쳐 준다니 세 망이면 한나절 일당이 15만 원인 셈이다. 뒷일은 어촌계에서 마무리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호미며, 깔개 같은 저마다의 도구들을 소중히 챙겨 들고 모감주나무 새순이 오르는 길을 지나 집으로 향한다. 아직 해는 중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