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
아주 먼 옛날, 바다 밑에서 땅이 솟아 산이 되고, 다시 봉우리 턱 밑까지 바다가 차올라 섬이 되었다는…….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손주에게 들려줄 성싶은 까마득히 먼 옛날이야기다.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에서 조개들과 바다 생물들의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그것은 그저 아득히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복날 삼계탕 그릇에 담긴 어린 닭이 쥐라기 공원을 휘달리던 공룡의 후손일 거라는 말은 당최 믿기지 않는다. 푹 삶아진 살이 씹을 것도 없이 무력하게 뜯기는 저 생물체가 한때 잔혹한 포식자로 집단 사냥을 했을 만큼 영악한 사냥꾼의 진화 물이라니.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과학이 밝혀낸 지구 연대기에 관한 비밀들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지구의 나이를 1년으로 환산하면 12월 31일에나 출현하게 되는 인류에게 45억 년이라는 시간은 무한의 개념이다. 마치 하루살이에게 인생의 생로병사를 이해시키려는 것처럼 무모한 시도인지 모른다. 하지만 믿을 수 없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다. 과학의 힘은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달나라도 가고 화성에도 탐사선을 보냈다. 또한 지난 백 년 사이 과학이 이룬 성과 중 하나가 방사성 연대측정법을 통해 지구의 나이를 계산해낸 것이다.
서해로 뻗어가던 여맥이 듬성듬성 무리를 이룬 고군산군도, 그 섬들의 뿌리가 육지에 닿아있다고 해도 섬에 들어가려면 바다를 건너야 한다. 고군산군도 중에서도 가장 끝 섬, 말도까지는 군산 연안여객터미널에서 하루 한 번 뜨는 배편으로 세 시간이 조금 덜 걸린다. 만약 장자도에서 출발하면 평일 두 번, 주말에는 세 번 운행하는 객선을 이용할 수도 있다. 뱃삯이나 시간을 아낄 수 있지만, 고군산군도 12개 봉우리가 마치 무사들이 도열한 무산십이봉(武山十二峯) 풍광을 놓치지 않으려면 전자가 낫다.
횡경도에서 방축도, 광대 섬, 명도, 보광도, 말도까지 차례로 짚어가는 섬들이 고군산군도 북쪽을 울타리처럼 두르고 있다. 덕분에 안쪽에 자리한 선유도와 무녀도, 장자도는 여름 태풍과 겨울 한파를 피할 수 있다. 선유 8경 중 하나로도 꼽힌다. 방축도와 명도, 말도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지만 사이사이 놓인 섬들은 선착장은 물론이고 배편도 따로 없다. 군산항에서 출발한 객선은 야미도와 횡경도 사이를 지나 신시도를 끼고 우회해서 ‘진또강’이라고 불리는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 좁은 물길을 따라갔었다. 장자도까지 자동차 도로가 뚫리면서 뱃길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고속도로가 아닌 시골을 지나는 길의 매력처럼 이국적인 풍경들로 소문난 고군산군도의 속살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책바위’ 또는 ‘떡바위’라고 불리는 광대 섬도 빠뜨리면 안 된다. 광대 섬은 방축도와 명도 사이에 놓인 무인도다. 크게 침식된 섬의 남측 절벽 사면에 드러난 습곡구조는 심하게 뒤틀려 있다. 마치 조물주가 실수로 떡시루라도 엎어버린 듯 층을 이룬 바위의 결들은 굽이지고 들쭉날쭉하게 요동치고 있다.
말도에는 객선이 닿는 선착장이 두 군데다. 평상시에는 마을과 가까운 안쪽 선착장에 배를 대지만, 물 때나 날씨에 따라 마을에서 한참 벗어난 바깥쪽 선착장으로 오가기도 한다. 바깥쪽 선착장에 내리면 곧 갈림길이다. 등대와 피항 시설을 갖춘 포구가 있는 왼쪽과 마을로 이어지는 오른쪽 길이다. 초행길이거나 딱히 서둘러야 할 목적이 있다면 고민이 되겠지만. 어느 쪽 길을 택하던 길은 다시 만난다. 섬 전체 둘레길이라야 겨우 3킬로미터 남짓한 작은 섬이다.
2009년 6월 9일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제501호)로 지정된 ‘군산 말도 습곡구조’는 마을로 가는 오른편 길에 있다. 약 1킬로미터 남짓한 해안 길을 따라 절개된 사면에 노출된 지질층을 볼 수 있다. 문화재청의 설명으로는 고생대 이전 선캄브리아 시기에 생성된 암석층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원형이 남아 있는 사례가 매우 드물고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어서 학술과 교육 가치가 뛰어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약 5억 7천만 년, 아득히 먼 시간은 가늠되지 않는다. 대신 눈앞에 남겨진 그 흔적의 실체 위에 손을 내밀어본다. 체온보다 차가운 무생물의 온기, 분명 저 노두의 뿌리는 지구의 심장으로 뻗어있을 것이다. 아득히 먼 옛날 해수면 아래로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가 퇴적되고 변성되고 뒤집히고 뒤틀려서 생긴 주름이다. 사나운 파도와 거친 바람을 견디며 아물어 온 생채기다. 하지만 주름진 지층에 눌린 시간의 무게를 알 수 없고, 굽이진 세월의 깊이 또한 잴 수 없다. 닿을 수 없는 시간의 거리만큼이나 인지의 영역을 벗어난 숫자는 무한에 가까운 경이로만 겨우 짐작될 뿐이다. 다만 뒤집히고, 뒤틀린 섬의 모습이 섬사람들의 삶을 닮아있다. 그 또한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