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개로 이어지는 작은 고개 하나를 넘는다.
선유 1구와 2구, 두 마을을 잇는 지름길이다. 선유도 초중학교를 가로지른 길은 오래전 아이들 통학길이 었겠다. 차량 하나 겨우 지날만한 폭에 제법 경사도 있는 편이어서 그런지 고갯길을 넘는 내내 마주치는 사람 하나 없다. 해변을 따라 뚫린 넓고 편한 길이 있으니, 동네 사람들조차 굳이 이 불편한 길을 왕래할 이유가 없겠다. 이런저런 탈 것들이 흔한 시절이니 숨차게 걸어 올라야 하는 고갯길이 외면당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무리 헐한 걸음이라지만, 오르막 끝에 닿을 즈음 짐을 멘 등에 땀이 찬다. 작은 수고에 보답이려니 싶게 하늘만 가득했던 고갯길 너머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잠시 배낭을 벗어두고 사진기를 꺼내 든다. 문지기처럼 마을 앞바다에 뜬 두어 개 작은 섬과 파도를 막고 배를 정박하기 위해 뻗어나간 짧은 방조제. 선유 1구, 통개 마을은 남쪽 바다를 향해 산을 등지고 앉은 전형적인 어촌이다. 마을 초입 해양경찰 초소를 지나면 포구를 끼고 앉은 마을로 들어선다. 외지 바람을 덜 탄 듯 소박하다. 더러 민박을 치고 한두 군데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카페도 생겼지만, 통개는 조용히 늙어가는 섬마을이다. 생필품 파는 구멍가게 앞 평상 동네 할머니들 수다가 여전하고 풀어 키우는 개들 걸음걸이도 느긋하다. 바다로 길게 뻗은 당산을 두고 해안은 둘로 나뉜다. 앞장불은 어선과 낚싯배가 드나드는 포구고, 옥돌이 깔린 뒷장불은 주로 외지 손님들이 찾는 작은 해변이다. 고즈넉한 포구를 벗어나 골목길로 접어들면 온갖 생선을 널어 말리는 날것의 비린내와 고단한 섬살이를 말해주듯 낡은 빨래가 널린 그런 동네다. 집 주변을 끼고 코딱지만 한 텃밭을 빼곤 농사지을만한 땅도 보이지 않는다.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끼고 앉은 선유 2구, 진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커다란 수족관에 제철 물고기를 가득 채운 횟집이 즐비하고 새로 지어 올린 번듯한 펜션들, 빨간 중국집 간판도 보이고 치킨과 피자가게 너머로 노래방도 빠지지 않았다. 섬까지 이어지는 길이 나면서 여객선 대신 관광버스가 풀어놓은 낯선 발걸음과 조금 떨어진 주차장을 마다하고 굳이 해변 가까이 들어오려는 차들과 무어라 부를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탈 것들이 뒤엉켜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한 진말. 고갯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간의 경계를 넘어온 듯 이 작은 섬에서도 삶의 모습은 다양하다.
통개는 조선시대 통정대부를 지낸 벼슬아치를 배출한 자부심 있던 마을이었다. 정 3품 이상 당상관이니 지금으로 치면 상당히 높은 고위직 공무원이다. 마을 이름에는 그런 사연이 담겨있다. 마을 뒷산을 가로질러 고군산 연결도로가 나면서 마을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몽돌 해수욕장을 끼고 앉은 낡은 펜션 몇 채가 리모델링 중이고, 바다로 뻗은 당산 둘레로 이어진 산책길도 얼마 전 단장을 마쳤다. 사람 많고 번잡스러운 분위기보다 호젓한 섬마을 속살 냄새가 남아 있는 정겨운 마을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별은 유난히 밝고 떠드는 사람 없어 파도 소리가 더 가까이 파고든다. 고개 너머 통개 마을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