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아오니 이런 날도 있다

따뜻한 구들방에 앉아 글을 쓰는 즐거움

by 지니


여느 날과 다르게 일찍 눈이 떠졌다. 지금은 달달한 믹스커피와 함께이다. 달달함과 커피 향의 조화가 좋다. 이틀 전 다시 모카골드로 돌아왔다. 맛나다.


오늘은 자동으로 눈이 떠진 게 아니라 로봇청소기가 깨웠다. 눈을 뜨고 나니 새벽 5시 20분이었다. 이 고즈넉한 시간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전날 읽다 만 책과 폰을 챙기고 이를 닦고 세수도 했다. 따뜻한 물 한잔으로 속을 풀어주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블로그를 열어보니 지난날 작성한 글이 8개가 뜬다. 두 개를 열어봤는데 하나는 작년 글이었다. 요양보호사 시험을 이틀 남겨두고 도시락을 싸서 집 인근 도서관을 갔더랬다. 시험이 쉽다고는 하나 긴장이 된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그때도 어머님을 케어하면서 공부하러 다녔기에 사실 빠진 날도 있었다. 그래도 40일간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시험을 치르게 된 거였다. 그때의 힘들었던 과정과 여정을 잘 버티고 나왔으니 지금의 내가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요양보호사로 가정요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 그렇게 하라고들 했는데 마음이 움직이니 하게 되더라.


사람일은 정말 모른다. 어떻게 펼쳐질지 말이다. 작년 오늘은 울산에 살았고 오늘의 나는 부산에 살고 있으니. 지금은 작년에 취득한 자격증으로 가정요양을 하고 있으니. 땄다고 다 써먹을 수 있는 건 아닌데 말이다. 비록 지금은 1시간 요양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밖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금곡...


범일에서 증산 가는 길

몸이 많이 약해지신 엄마를 뵙기 위해


먼 길을 달려간다



퇴근 후 집 도착 해 시장 들러 재첩국

사과 사구 마트 들러 햄도 하나 사고

서둘러 밥을 안치고


사과도 잘라놓고 재첩에 넣을 부추도 썰어 두었다

다 해 놓고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딱

한 시간!


호포...


증산을 향해 달려간다





수고 많았어!


6년 전 지하철에서 쓴 글이다. 몸이 갑자기 쇄약 해진 엄마를 뵙기 위해 가고 있던 때인데 이날의 바빴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글에 녹아져 있다. 범일에서 증산은 30분으로 안된다. 한 시간은 넘게 걸리는 거리다. 이리저리 보내지는 시간도 있으니 1시간 30분은 잡아야 하는 거리다. 이럴 땐 자가용이 좋긴 한데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해서 늘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엄마를 빨리 뵙고 싶었지만 집에 일도 해야 했기에 그걸 후딱 해놓고 달려 나가는 모습이다. 삶은 후회의 연속이다. 집에 것을 포기하고 바로 달려갔으면 좀 더 편하게 다녀왔을까... 그때도 욕심이 많았던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이것도 잘하고 싶고 저거도 잘하고 싶었던.


내가 엄마를 본격적으로 케어하게 되었을 때부터 몇 달간은 아예 엄마집에서 살걸하는 후회가 남았다. 그랬으면 엄마가 더 오래 사셨을까... 더 건강해져서 지금쯤 잘 살고 계실까... 후회는 후회로 남겨야지 그걸 가지고 자신을 후벼 파면 안 된다는 걸... 그런데 그런 생각들이 가끔 올라온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가 어떻게인데? 그냥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보는 삶.


그때도 그랬지만 예측불허의 삶을 살았을 뿐이고 지금도 마찬가지인 걸. 지금 최선을 다해 살아도 지나고 보면 후회할 일 투성일 것이지만, 그래도 그 상황을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온몸을 던져보는 것. 상대방에겐 어떻게 미칠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에게는 떳떳한 삶을 살았노라고 고백할 날이 올 것이다. 하루하루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보는 삶. 그것이 바로 내 삶의 가치가 아닐는지.


글을 쓰다 오늘을 살아가기에 제일 중요한 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불려진 쌀을 저당밥솥에 넣어 물을 적당량 맞추고 전자레인지에 돌려주었다. 13분 뒤면 맛있는 밥이 완성될 것이다. 따뜻한 구들장에 앉아 글을 쓰다가 밥 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주저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는 삶. 오늘은 몸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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