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시작
고온수로 타 두었던 슈가제로 믹스 커피는 딱 마시기 좋게 알맞게 식어 있었다. 며칠 변비가 걸려 고생 중인 복자 씨에게 변비약을 갖다주고, 양치질을 할 수 있게 해 준 뒤 소파에 나오니 말이다. 그래도 앉아서 마시는 이 커피 한 잔이 꿀맛이다. 눈에 보이는 일들을 뒤로한 채 소파에 앉아 글을 쓰는 지니 씨.
소파 앞 거실 한 공간에는 어제저녁 건조기에서 나온 빨랫감이 있고 6인용 식탁에 자리를 틀고 있는 물건들이 치워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복자 씨 아침을 챙겨야 하고 당직 근무인 후니 씨의 아침을 챙겨야 한다. 형님이 오는 날이라 어느 정도 살림살이의 재정비도 필요하다. 아, 오늘도 엄청 엄청 바쁠 예정인 지니 씨다.
사실, 글이란 생각났을 때 쭈욱 적어 내려와야 맞겠지만 어짠지 이 글은 여기서 끝나있다. 기억을 거슬러 다시 그때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게 힘들긴 하지만 이 또한 글쓰기의 매력이 아닐까.
설 전에 담았던 양배추가 들어간 물김치와 무를 첨가한 알배추 김치는 벌써 우리 가족 입속으로 들어가고 설날 당일에 담은 김치도 바닥을 보였다. 이제 알배추 한 개가 남았는데 이걸로 김치를 담아? 아니면 배추 된장국을 끓여? 고민하다 일부는 된장에 넣고 일부는 고춧가루를 넣어 가볍게 무쳐주었다. 지니 씨의 손맛이 통했던 걸까 다행히도 무쳐 둔 배추도 바닥을 보였다. 형님이 온다 해도 신경이 쓰이는 건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먹을 게 있어야 지니 씨가 없어도 복자 씨를 챙겨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런 부분도 생각 안 하고 살면 좋겠지만 꼼꼼한 성격이라 그런지 잘 지나치지 못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형님한테 다 맡기고 지니 씨는 몸만 나오면 되는데도 말이다.
냉장고에 계란과 두부가 있고 실내에는 고구마, 감자가 있다. 냉장고 밑 칸엔 과일도 종류별로 한가득이다. 집에 오면 형님은 토요일엔 저녁 한 끼, 일요일은 점심 한 끼만 한다. 여러 가지 주전부리로 때운다. 형님이 매운 라면을 좋아할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한 날은 신라면 더 레드 + 열 라면을 끓여 함께 먹은 적이 있다. 매운 내를 양껏 풍기며 꼬돌꼬돌하게 끓여진 라면은 정말 꿀맛이었고 형님이랑 지니 씨랑 맛나게 나누어 먹었다.
지난 명절에 서울 조카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형님은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갔다. 다음날 조카들에게 잡채라도 해서 먹일 요량이었다. 마음 바빠 떠난 자리를 지니 씨가 매웠는데 마음이 바쁜 건 지니 씨도 마찬가지였다. 마음만 바빴지 이것저것 준비를 하지 못했고(이번 설은 다른 때보다 정신이 없었음) 조카들이 도착하고 결국엔 후니 씨랑 조카들만 저녁을 먹고 오라고 했다. 지니 씨는 복자 씨의 저녁이 남아 있었고 다음날 먹을 음식을 만들 생각이었다.
오늘 아침, 지니 씨는 머그컵에 봉지 커피를 부은 후 정수기 고온 버튼을 눌렀다. 순간 복자 씨가 부른다. 배변 습관이 좋은 복자 씨는 아침 늘 같은 시간에 화장실을 간다. 화장실 이용을 도우고 자리를 돌아오니 물을 부어 두었던 커피가 생각났다. 긴 스테인리스 찻 수저로 몇 번 휙 돌린 후 소파로 들고 오는 지니 씨. 아, 식었지만 맛나네. 꿀맛이네. 이 맛에 먹는다니깐… 하며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다른 날 같으면 글 한 편 적고 미뤄 둔 일들을 하는데(글 한 편 써야 뭔가 하루가 돌아가는 느낌으로다?) 오늘은 주방을 싹 치운 뒤 글을 적으려고 앉았다. 마음이 참 개운할 것 같았는데 이게 아닌가 싶기도 한 지니 씨다. 뭔가 쫓아오는 것 같고 쫄리는 마음으로 써야 글도 잘 써진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맛이 없고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람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일이면 인근 체육 시설에 신규 접수가 있는 날이다. 한 달씩 끊어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두근거림 반, 설렘 반이다. 멋진 수영장도 있지만 주말에 언제든지 이용이 가능하니 이번엔 헬스를 먼저 해 보자 다짐을 했다. 남들 말을 잘 듣질 않는 편인데 운동은 진짜 해야겠더라 생각이 든 지니 씨다.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근력 부족이랄까. 물론 예전보다 찐 살이 주범이겠지만 운동의 필요성을 깊게 느꼈기 때문이다. 짬 내서하는 그 한 시간은 정말 내 죽었소 하고 해보려고 한다. 3월부터 시작! 지니 씨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