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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Nov 11. 2023

가해와 피해 그 얕은 차이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넋이 온통 나가버렸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은 여전히 산더미인데 나만 덩그러니 소용돌이 속으로 갑자기 휘말려 들어가 버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그 속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마구잡이로 섞여있다. 소용돌이 속에서 가해와 피해를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저 이 아비규환을 빨리 탈출하는 것이 공동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냔 말이다.


하지만 어떤 극한의 상황이 오더라도 사람들은 싸운다. 누가 더 힘든지 끝없이 비교하고 누가 나쁜 놈인지 마치 정답을 찾아내야만 하는 시험을 치르듯 밝혀내려 한다.


사실 나쁜 놈 착한 놈은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정의가 달라진다. 타국을 몰락시킨 장군은 자국에선 전쟁영웅이다. 우리를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은 나쁜 놈도 사실 자기 가족에겐 든든한 버팀목일 테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삶에서의 투쟁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지금 내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생긴 작은 폭력사건이 어른들의 싸움으로 커지고 있다.  인터넷으로만 봐오던 비상식적이던 싸움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이토록 대화가 통하지 않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


이 싸움에서 이길 방안을 고민하며 주말을 시작했다.

나 역시 폭력적이거나 투쟁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던 걸로 아는데, 싸우자고 자꾸만 달려드는 사람 앞에서는 싸우지 않을 재간이 없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버린 이 사건의 잔상들 덕에 아침부터 머릿속이 소란스럽다.


어른의 싸움이 되는 걸 피할 수 없다니 별 수없지만 그 속에서 눈 동그랗게 보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시리다.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은 너무도 확실하니까.


만삭의 엄마가 자신의 큰 아이가 당한 걸 생각하며 토하고 배가 뭉쳐 괴로워하고 있다. 몰랐다면 좋았을 피해였을까? 그 부모를 설득시키며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


우리 모두는 아무 죄가 없는데 왜 이토록 치열히 싸우고 있는 건지. 왜 가해자는 죄를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은 채 되려 우리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건지. 도통 이해되지 않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순수하고 투명한 아이들은 가해도 피해도 알지 못한다. 그저 재미난 놀이를 하며 놀았을 뿐이니까. 이게 나쁜 행동인 것도, 누군가는 많이 아플 수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재밌게 놀았을 뿐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는 피해자이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가해자이다. 아이들이기에 가능한 그런 일 앞에서, 틀린 건 틀렸다고 알려주고 이런 행동은 안된다고 알려줘야 하는 것어른의 몫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어른의 보호 아래에서 자라야만 하는 것이다.



어른이 어른다워야 아이가 바르게 자란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할 수 어야 하고, 올바른 행동을 알려줘야 한다. 그것이 어른의 가장 큰 역할이다.


세상 모든 어른이 다 같진 않다. 행동에 대한 기준도 제각각이다. 그렇기에 아이들도 다 제각각의 모습을 지닌 채 자란다.  


제각각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어른이 되고, 서로 다른 어른들이 자신과 닮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가며 서로 맞춰가며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도통 맞춰지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맞춰보려 시늉이라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른의 삶이다. 시늉이라도 하지 않으면 맞서 싸우거나 인연을 끊어야 하는데 그것이 더 에너지소모가 큰 일이니 그냥 대충 맞추는 시늉 해가며 살아간다고 해야 할까?



가해와 피해를 나눠 싸우자는 게 아니고, 대충 적당히 타협하고 맞춰가며 지금 알게 된 문제를 바로 잡아보자 시작한 일이었을 뿐이다. 선한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나쁜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가장 앞섰던 거니 결코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뿐더러, 비슷한 의도를 가진 어른들이 함께 시작한 일이었다. 그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시작이었다.

우린 아이들에게 올바른 것을 알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어른이니까.


모든 구성원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걸어오는 시시비비에 휘둘리지 말고 내 갈길을 가야지.


아이들만 생각해야 한다.

착하고 순수한 우리 아이들을 말이다.


우린 아이들에게 올바른 것을 알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부모이자 어른이니까.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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