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니네스위트, 첫 번째 시작 이야기
프롤로그
결혼 후 세 번째 이사를 끝마친 어느 여름,
뜨거운 햇살만큼이나 내 마음속 불안도 커져만 가고 있었다.
이사를 마치고 운 좋게 24개월 된 둘째가 단지 내 어린이집에 입소했고, 두 아이 모두 각자의 사회생활을 하러 떠난 그 잠시의 여백 같은 시간은
오히려 나에게 더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혼자 우두커니 빈 집을 지키는 시간.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핸드폰을 보며 축내는 시간.
아이가 올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시계만 계속 올려다보는 시간.
늘 육아에 시달리는 나에게는 분명 단비 같을 자유의 시간인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무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거의 강박에 가까운 스트레스를 견뎌야 했다.
새 집을 마련하며 경제적으로 무리를 한 탓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나는 애초에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역할에 그리 잘 맞는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라는 존재의 쓸모를 다시 찾아내고 싶기도 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것에 있음이 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일은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어린아이 둘을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이가 열이라도 오르면 등원도 못 시키니 엄마가 붙어 밀착케어를 해야만 했다. 일찍 원생활을 시작한 둘째는 또 어쩜 그리 자주 아픈지...
게다가 코로나가 극성이던 시절이라 사람들이 많은 곳에 나가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국이었기에 파트타임 일자리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루 한두 시간 정도의 단순 아르바이트나 집에서 할 수 있는 재택 부업은 어떨까 싶어 찾아봤다.
하지만 그것 역시 쉬운 길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계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을 금액을 벌기 위해
내 소중한 시간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시간이라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 같은 일로 창업을 해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작정 네이버에 ‘창업’을 검색했다.
광고가 너무 많아서 도무지 어떤 것도 클릭할 수 조차 없었다. 재택근무 고수익보장 컴퓨터만 하면 오케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창업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여성창업’으로 다시 검색했더니, 한 기관에서 진행하는 창업 교육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엇, 이거다. 일단 교육을 들어야겠어.’
자세히 보니 접수 마감은 내일까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준비해 직접 방문 접수를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일이 이렇게 되려고 누가 신호라도 준 게 아닌가 싶다.
느닷없이 검색을 하고, 우연히 발견하고, 정신없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만든 뒤 영통에 있는 수원여성인력개발센터로 향했다.
서류를 제출하고, 짧지만 유난히 긴장되던 면접을 마친 끝에 나는 창업 교육의 수강생이 되었다.
국비 지원 프로그램이라 하루 5시간씩 40일, 총 200시간을 들어야 하는 긴 과정이었다.
교육을 듣는 두 달 동안 아이들은 매일 저녁 7시까지 기관에 남아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 엄마가 준비하는 시간이야. 두 달만 참아줄 수 있지?”
고사리 같은 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약속을 했다.
그렇게 두 달을 기다려준 여섯 살, 세 살의 내 작은 아이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참 미안하고 또 고맙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삐 뛰어 퇴근 시간의 지하철을 타고, 다시 마을버스로 환승해야 했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괜히 야속해져 하염없이 시계만 바라보다가 내려서는 또 숨이 턱까지 차게 달렸다.
그렇게 아이들을 하나씩 찾을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 시간을 꼭 견뎌내서,
언젠가는 당당히 창업한 엄마의 모습을
너희에게 보여주겠다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해내는 엄마’를,
그리고 나 자신에게는 다시 쓸모 있는 사회인으로 재탄생한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육아를 하며 낮아진 자존감을 다시 세워 올리는 일.
그때의 나에게 가장 절실한 일이었기에 나는 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수업을 들으며 창업을 했고,
어느덧 4년째 사장을 하고 있다.
매일 출근해 사탕을 만들고 택배를 싸는 일.
아주 평범해 보이지만,
내 소중한 두 아이를 누구의 도움 없이 키울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일이다.
또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 말고도 ‘사장’, 그리고 ‘강사’라는 역할을 다시 건네준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도전이 설레고 두려운 건 아마도 그 끝을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뜨거운 여름날, 충동처럼 보였던 그 선택이
내 인생을 이토록 선명하고도 달콤하게
바꿔 놓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여전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나둘 겨우 해내고 있는 초보 사장이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고,
분명히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사탕공장 공장장 황사공, 사실 사장이라는 타이틀도 조금 부담스럽다.
아주 작은 공장의 공장장 정도가 딱인 그런 역할이 더 어울리는 딱 그 정도의 기분.
나는 거창한 성공담을 가진 창업가는 아니다.
다만 두 아이를 키우며, 내 가정과 생활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다 보니
어느새 사탕가게 사장이자 창업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달콤하기만 할 줄 알았던 창업은
생각보다 쌉싸름했고,
그래도 이상하게 자꾸 다시 손이 갔다.
다음 이야기부터는 내가 만든 대표 상품들의 이름을 빌려 이 달콤 쌉싸름한 창업의 순간들을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ㅡ
인생은 곱셈이다.
어떤 기회가 와도 내가 제로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ㅡ
적어도 0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만들고, 포장하고, 배우고 있다.
그 노력의 여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