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충치
"어떻게 자일리톨로 사탕을 만드실 생각을 하셨어요?"
사탕가게를 하고 나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사실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3살 된 큰 아이의 구강검진에서 발견된 정말 작디작은 까만 점 하나 때문이었다.
나 역시 여느 엄마들과 다름없이 아주 유난스럽게 첫째를 키우고 있었는데,
아주 작은 크기라곤 해도 충치가 생겼다는 소식은 청천벽력 그 자체였다.
아이에게 충치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동네 엄마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더니, 한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자일리톨 사탕을 먹여봐!”
그리고 집에서 만들었다며 자일리톨 사탕을 조금 건네주었다.
그 시절만 해도 자일리톨 사탕이 지금처럼 알려져 있진 않았다.
껌으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자일리톨을 직접 가공해 사탕을 만들어 먹이고 있다니.
육아에 유난스러운 엄마는 나 하나인 줄 알았는데 세상엔 대단한 엄마들이 훨씬 더 많았다.
친구가 만들어 준 사탕은 아이도 잘 먹고 맛있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크기가 너무 커서 아이가 먹다 말고 자꾸 뱉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는 더 작은 크기의 자일리톨 사탕을 찾아 나섰지만, 아무리 찾아도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었다.
그렇게 작은 사탕을 찾아 헤매다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그럼, 내가 만들자.”
그렇게 지금의 니니네를 있게 한 미니반달캔디의 여정이 시작된다.
ㅡ
외국 사이트를 뒤져 딱 원하는 크기의 실리콘 몰드를 찾아냈다. 그리고 집에서 자일리톨 사탕을 만들어 아침, 저녁으로 먹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의 충치는 그 이상 커지지 않았고, 자일리톨이 효과가 있는 것만 같아 더 열심히 양치캔디를 먹였다.
그때 우리는 자일리톨 사탕을 양치캔디라고 불렀다. 저녁 양치질을 하고 나서 약처럼 챙겨 먹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양치캔디가 되었고 그렇게 우리의 양치캔디는 니니네 첫 자일리톨 캔디의 이름이 되었다.
자일리톨 사탕을 한번 만들면 제법 많은 양이 만들어지기에 만들어진 사탕은 여기저기 나눠주곤 했다. 거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었기에 나의 사탕은 어딜 가나 환영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엄마가 물어봤다.
"이거 매일 받아먹기 미안한데, 팔면 안 돼요? 나 친구한테도 좀 나눠주고 싶은데 팔아줘요."
"엇 나도 사고 싶어요."
"저도 정말 사고 싶은데 좀 팔아주세요!"
순식간에 세 명의 고객이 생겼다.
"아 그럼 재료비를 각자 내고 똑같이 나눠요!"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팔기 위한 사탕을 만들게 되었다.
기왕 한 번 만들면 양이 많이 나오는 김에, 맛도 조금 넣어보고 싶었다. 자일리톨 100%만 먹는 게 슬슬 지겹기도 하던 참이었다. 때마침 요가 강사를 하던 친한 친구가 보내준 에센셜 오일이 떠올랐다.
먹어도 되는(식용 등급의) 향이 있다며 추천해 준 오일이었다.
'향료'가 아니라 '천연 오일'을 넣어 만들면 어떨까 싶어 소량의 오일을 넣어 보았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맛이 과하게 강하지 않고 은은해서,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이 먹기에도 딱 좋았다. 게다가 순도 100%의 천연 오일이라 아이의 기관지나 건강에도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자일리톨 맛, 오렌지 맛, 레몬 맛 세 가지 사탕이 완성됐다.
각각의 사탕을 집에 굴러다니던 이유식 유리병에 담았더니, 넘치게 많다 생각했던 사탕이 순식간에 동나버렸다. 심지어 네 통으로 나눠야 했는데 두 통도 채 나오질 않았다. 내가 만든 사탕은 알이 너무 작아서 작은 유리병을 채우는 데에도 너무 많은 사탕이 들어가는 것이 문제였다.
'어디에 담아야 예쁘고, 깨끗하며, 맛별로 구분해 나눠 담기 좋을까?'
고민을 하며 주방 서랍장을 열었다. 그리고 내 눈에는 내 고민을 해결해 줄 만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지난겨울 귤을 너무 좋아하던 아이가 귤 주스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사놓았던 스파우트형 파우치였다. 그때 사이즈를 잘못 골라 너무 작은 크기의 파우치가 왔고, 귤 주스를 넣기에 너무 작았던 파우치는 그대로 서랍에 처박혀 버렸다.
그 파우치를 다시 꺼내 든 순간, 나는 바로 알았다.
투명한 겉봉투, 단단한 재질, 그리고 하나씩 빼먹기 좋은 입구까지.
내 작은 자일리톨 사탕을 담기에는 너무 완벽한 케이스였다.
그렇게 니니네 미니반달캔디는, 아무도 사탕을 담을 생각을 하지 않던 액체 전용 스파우트형 파우치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때는 생소하기만 했던 양치캔디 파우치는 엄마들에게서 극찬을 받았다.
손에 묻지 않고 사탕을 하나씩 꺼내 입에 털어 넣을 수 있었고, 가방에 쏙 넣고 다니기 좋은 크기라 휴대하기 너무 편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거기에 투명한 봉투로 보이는 알록달록 사탕들이 너무 예쁘고 특별해 들고 다니면 기분까지 좋아진다고 했다. 그렇게 니니네의 캔디파우치는 변경 없이 쭉 시그니처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작은 선택들이 전부 지금의 니니네 스위트를 만들기 위해 어딘가에서 맞물려 움직였던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든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던 그때의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이걸 본격적으로 팔아야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창업교육을 들으면서 ‘이왕 시작한 김에, 사탕을 제대로 팔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탕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일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식품을 팔려면 1종 근린생활시설로 구분되는 매장이 필요했고, 구청에 신고해 영업신고(허가) 절차를 거쳐야 했다. 지금처럼 집에서 만들어 파는 건 불법에 해당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최대 5천만 원 과태료까지 부과될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사탕을 조금 팔아보겠다고 그런 모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매장을 덥석 계약하자니, 그것 역시 부담이었다.
‘잘 안되면 어떡하지?’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일, 게다가 매장을 계약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판매’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두렵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싫은데, 뭔가를 하려니 겁이 나는 마음.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잘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ㅡ
아무런 결정을 못한 채 창업 수업을 듣던 어느 날이었다.
"다음 시간에는 사업자 등록증을 만들 거예요. 상호와 주소를 미리 준비해 주세요."
온라인 사업은 집 주소로 사업자 등록증을 내도 되지만, 이상하게도 집 주소를 사업자 등록증에 넣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교육장 근처에 있는 한 소호 오피스에서 주소를 임대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교육이 시작되기 전에 임대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소호오피스에 들렀다.
"어떤 사업을 해보려고 하시는 거예요?"
"아 온라인쇼핑이요. 그냥 이것저것 만들어서 팔아볼까 하고요. "
"음 그래도 뭘 팔지를 정확하게 정하는 게 좋아요. 그럼 비슷한 일 하는 사장님들한테 도움도 받을 수 있거든요. 우리 사무실에도 사장님들 많으니까 제가 소개해 줄 수도 있잖아요. "
"아.. 그냥 취미로 해볼까 하는 거라서, 잘 모르겠어요. 아직 별 생각은 없어서... 해보고 안되면 접죠 뭐 ^^ "
정말 별생각 없이 나누었던 스몰토크였다. 해보고 안되면 접겠다는 내 말을 들은 오피스 사장님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할 거면 안 하는 게 나아요. 죽어라 해도 살아남을까 말까 한 곳이에요 이 쪽은. 그런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사업을 취미로 하다가 안 되면 접겠다’는, 그렇게 오만한 말을 내뱉은 걸까.
그 말 안에는 잘해보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해보고 안 되면 접겠다니.
그렇게 어설픈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아이에게는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었고, 외벌이로 빠듯한 가계에 어떻게든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 현실을 똑바로 마주하지 않은 채, ‘취미’라는 말 뒤에 숨어버린 나의 그릇된 자존심이 못 견디게 부끄러웠다.
그날을 기점으로, 내 마음속에서 ‘그냥 심심해서 한번 해 보는 일’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내가 벌인 일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며, 비로소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대단한 각오는 아니었다.
다만, 더 이상 가볍게 생각하지 않겠다는 것. 그 마음 하나만은 분명해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