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 막대사탕

장사의 시즌

by 황사공



니니네 스위트의 시작이 된 미니 반달캔디는 지름 0.7mm(손톱보다 작은) 반원 모양의 사탕이다.

사탕을 스파우트 파우치에 45g씩 담아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건 9월이었다.
처음엔 지인들에게 거의 강매를 했던 것 같다. 다행히(?) 착한 내 지인들은 알아서 소문도 내주고 니니네 파우치캔디도 척척 구매해 주었다.


상품은 단 한 종류 45g 파우치 캔디.

맛과 색이 섞인 레인보우와 자일리톨 100%가 들어간 퓨어화이트 딱 두 종류였다.


그런데 고객들은 역시 냉정했다.


“상품이 이것밖에 없어요?”
“막대사탕은 없나요?”
“핼러윈에 쓰고 싶은데 가격이 조금 비싸요. 여러 명에게 뿌릴 수 있게, 더 착한 가격의 상품은 없을까요?”


지인과 지인의 지인 위주였던 첫 고객들의 피드백을 읽다 보니, 전부 이해가 가는 말들이라 더 난처했다. 특히 아이들에게 ‘사탕’은 막대에 꽂혀 있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에, 막대사탕에 대한 요구는 끊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막대사탕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막대사탕을 만들 수 있다는 다양한 틀을 사 보았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크기였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사탕용 몰드들은 자일리톨로 만들기에는 너무도 컸다.

자일리톨은 원재료 자체가 워낙 달기 때문에 크게 만들면 한 번에 다 먹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자일리톨 가격이 만만치 않다 보니, 크기가 커지는 순간 가격도 함께 올라갔다.

어떤 엄마가 호두만 한 자일리톨 막대사탕을 하나에 3천 원씩 주고 사 먹이겠느냔 말이다.


거기에 중량도 문제였다. 자일리톨의 하루 섭취 권장량은 10g 미만으로 아주 소량인데, 시중에 있는 막대사탕 틀로 만들면 한 개만으로도 일일 섭취량을 훌쩍 넘어갔다.

예민하고 깐깐한 요즘 엄마들에게 그런 건 통할 리가 없었다.


모양도 문제였다. 나는 정형적인 사탕 모양, 그러니까 동그란 구형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막대를 꽂아야 하는 막대사탕 몰드들은 하나같이 납작한 형태뿐이었다.

마음에 드는 게 이렇게 없다니!

작은 사탕을 찾아 헤매다 결국 반달캔디를 만들어낸 나에게는, 막대사탕도 원하는 대로 끝내 만들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정말 별의별 검색어를 다 동원해 끝까지 찾아 헤맸고, 마침내 마음에 쏙 드는 동그란 모양의 작은 크기, 막대 사탕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모양의 틀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런데 이제는 막대가 문제였다. 크기도 두께도 제각각인 사탕막대 중 어떤 걸 사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두께가 맘에 들면 너무 길었고, 길이가 마음에 들면 또 너무 두꺼웠다.

온라인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 중 마음에 드는 게 또 없어서 플라스틱 공장에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위한 사탕 막대는 만들어 주지 않았다. 아니 만들어 줄 수는 있으나 최소 수량이 어마무시했다. 얼마나 팔릴지도 모를 막대사탕의 막대기를 수백만 개 만들어 쌓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갓 태어난 작은 사탕가게 사장이 아직 만들어보지도 않은 막대사탕에 쓸 막대를 찾겠다며 플라스틱 공장에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 전화를 받은 공장 직원들은 꽤 많이 당황했을 것 같다. 그저 가까운 플라스틱 공장에 다 전화를 했으니 말이다.

지금이었다면 GPT랑 상의해 결론을 뚝딱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는 것도 없고, 검색조차 서툴렀던 그때의 나는 그저 막무가내로 돌진할 수밖에 없었다.


몇 군데의 공장에 전화를 돌리고선 '아 이게 아니구나.'를 깨달았다. 공장마다 만드는 제품이 별도로 있었고, 생산하는 제품이 아닌 걸 의뢰해서 만들려면 기계부터 다시 들여야 한다고 했다. 츄파춥스 정도 되는 대기업이라면 기계를 만들고 또 사용될 막대를 만드는 게 가능하겠지만 나같이 조그만 수제사탕가게에서 진행시킬만한 일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초콜릿, 사탕 관련 부자재들을 판매하는 방산시장으로 모험을 떠나보기로 결심했다.





방산시장은 초보 사장에게는 아주 무섭고 차가운 곳이었다. 시장에 오긴 했는데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시장을 채운 사람들은 모두 분주해 보였고, 딱 봐도 뜨내기로 보이는 외지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운 좋게 초콜릿 몰드를 판매하는 사장님과 인사를 하게 되면서 내가 고민했던 막대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하늘은 역시 내편인가 보다.

무작정 공장으로 전화를 돌리던 무지한자의 패기로 눈이 마주친 한 사장님께 말을 걸었고, 부자재 전문가인 방산시장의 터줏대감 사장님은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으쓱해 보이셨다.

그렇게 나는 그토록 원하던 10cm 길이의 플라스틱과 종이 막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사탕에 꽂기엔 애매해 보이는 10cm를 고집한 건, 막대사탕을 먹으면 온 손에 사탕과 침이 범벅되는 아이를 키워봤기 때문일 것이다. 막대기가 조금만 길어도 아이의 손에 침이 묻지 않을 텐데. 시중에 있는 막대사탕들은 구강기의 침풍년 어린아이들이 먹기에는 길이가 너무도 짧았다.


그때의 나는 사탕을 만드는 게 아니라, 엄마들의 기준에 맞는 육아템을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불편함이 내가 만드는 제품에 고스란히 스며든 것이다.


훗날 니니네의 막대사탕이 론칭되고, 그 사소한 길이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엄마의 불편함을 해결해 낸 것이 누군가에겐 잠깐의 휴식이 되었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그 상투적인 표현이 실제로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그날, 나는 확신했다.
니니네 스위트는 단순한 사탕가게가 아니라 엄마에게 잠시의 쉼을 건네는 달콤한 육아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막대기가 조금 긴 자일리톨 사탕 하나에는 충치 걱정도, 끈적한 손을 닦아낼 번거로움도 없었다.
아이가 사탕에 집중한 그 짧은 순간,
엄마는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한 문장에 담아냈다.


작지만 달콤한 변화


그렇게 니니네 스위트의 대표 슬로건이 막대사탕과 함께 탄생했다.





막대사탕을 만드는 것은 자일리톨을 녹여 만든 알사탕에 막대를 꽂아 굳히면 된다. 사실 원리만 보면 아주 단순하다. 하지만 막대사탕을 ‘제대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아마 그래서 수제사탕 업체들 사이에서도 이런 작고 동그란 구형 캔디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걸지도 모른다.


지금의 막대사탕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손재주 좋은 남편의 아이디어 덕분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따로 해본 적은 없지만, 니니네의 베스트 상품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 남편이라는 건 분명하다.

늘 쓸데없는 짓 좀 그만하라 구박하던 남편이었지만 그래도 이건 고마웠다. 고맙다, 우리 집 R&D.





막대사탕이 오픈된 건 10월 초·중반, 그러니까 핼러윈 행사가 2주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판매 예고를 올리자마자 막대사탕 주문 문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핼러윈 느낌을 살려야 더 잘 팔릴 것 같아, 막대사탕을 유령 모양 캔디 페이퍼에 하나씩 꽂아 500원에 판매하기로 했다. 500원짜리 유령 막대사탕은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 나갔다.


물론 그때의 나는 대량 생산을 할 기술도, 노하우도 없었다. 많이 만들어낼 수 없었고, 그래서 연일 매진이 이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사탕을 하나하나 만들어 비닐을 씌워 종이에 꽂고, 스티커를 붙여 마무리하는 과정을 떠올리면 도저히 남는 장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초보 사장이었던 나에게 그 시간은, 벅차오르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낮에는 교육을 듣고 밤에는 사탕을 만드는 피곤한 나날이었지만, 내가 만든 상품에 반응이 이렇게 돌아온다는 건 정말 감격스러운 경험이었다.


핼러윈을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렇게 반응이 있다는 것이 적잖이 놀랬다.

캠핑장과 영어유치원, 영어학원에서는 핼로윈이 아주 비중 있는 행사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세상은 넓었고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함께 여 즐기고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장사를 하려면 그 기회를 날려버리면 안 된다는 것도 말이다.


고 깨달았다.
사장은 시즌보다 늘 한 발 앞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상품을 구상하고 준비해 세상에 내놓고 알리는 일은, 적어도 D-Day 2주 전에는 끝나 있어야
비로소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선택지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시즌을 놓치지 않는 일.
그것이 장사에서 얼마나 결정적인지, 운이 좋은 초보사장은 초반부터 배울 수 있었다.






핼러윈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주문은 잦아들었다. 택배도 포장도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채 뛰어들었던 덕분에, 내게 필요한 것들의 목록이 오히려 또렷해졌다.


11월, 온라인 시장의 비수기가 시작됐다. 나는 그 조용한 계절을 니니네를 제대로 만드는 시간으로 정했고, 그때부터 제대로 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조용한 11월은, 내게 가장 바쁜 달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