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만 앞섰을 때 생기는 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핼러윈을 겪으며 다소 오만해진 초보 사장은, 이번 크리스마스만큼은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엇을 팔면 좋을지, 어떤 물건이 연말의 분위기와 잘 어울릴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헤어 액세서리를 만들어볼까?'
'키링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 수 있는 오너먼트도 만들어야겠다.'
의욕만 가득 찬 초보 사장은 그렇게 또 무작정 동대문 재료상가로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이번 여정에는 헤어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던 지인과 함께였다. 방산시장에서 초보 티를 잔뜩 내며 아무것도 못 했던 기억이 떠올라, 이번만큼은 무시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전문가를 초빙한 소심한 초보 사장이었다.
처음 방문한 동대문 시장은 정말 별천지였다. 층마다 취급하는 물건이 달랐고, 내가 찾고 있던 액세서리 재료들은 4층에 모여 있었다. 반짝이는 금속, 색색의 리본, 이름도 모르는 부자재들이 빼곡히 쌓여 있는 풍경은,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숨어있던 어떤 종류의 본능이 깨어난 것만 같았다. 사실 난 작고 예쁘고 반짝이는 것, 그리고 손으로 만드는 작은 활동들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만들기와 거리가 먼 삶을 살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던 내 안의 소녀감성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동대문 재료상가에서 내 눈앞에 펼쳐진 것들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재료 같았다.
반짝이는 금속과 알록달록한 재료들은 저마다 자기 몫의 역할을 품고 있는 듯했고, 그 앞에 선 나의 머릿속에는 예쁜 물건으로 재탄생된 어떤 모습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게 정말 팔릴까?
아니, 팔기 이전에 내가 제대로 만들 수는 있을까?
재료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걱정의 크기도 함께 커져만 갔다. 걱정이 앞서다 보니, 선뜻 어떤 것도 고를 수가 없었다.
두 바퀴쯤 시장을 돌고 나니 반복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소품들이 생겼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이런 것들이구나 싶었다. 내 마음에 꽂힌 예쁜 부자재들을 여러 가게에서 하나 둘 골라 담았다.
빨강, 초록, 금빛, 그리고 조금의 용기까지 꾹꾹 눌러 담아 장바구니를 채웠다.
이 반짝이는 재료들이 멋진 물건으로 재탄생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줄줄이 떠올랐다.
만들고, 다시 만들고, 포장하고, 사진을 찍고, 설명을 쓰고, 업로드를 해야 했다.
사탕을 만드는 일까지 병행해야 하니, 시간을 접어 부지런히 살아야 할 모양새였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발걸음은 가벼웠다. 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의 날개가 달렸던 걸까? 도전만 하면 다 잘 풀릴 거라는 착각의 늪 속에 빠져 있었던 시간이었다.
ㅡ
아이들이 잠들고 난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나는 재료들을 꺼내볼 수 있었다.
장난꾸러기 여섯 살, 세 살 아이들의 눈에 띄는 순간, 그 반짝이던 것들이 무사할 리 없을 것 같아서 낮 동안은 꼭꼭 숨겨두었다.
동대문에서 야심 차게 사 온 재료들을 하나씩 식탁 위에 펼쳐놓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장에서는 분명 반짝이는 가능성처럼 보였던 것들이, 집에서는 그냥 하찮은 부품처럼 보였다.
'이걸… 어쩌지? 내가 진짜 할 수 있을까?'
시장의 조명이 사라진 우리 집 식탁 위의 소품들은 어쩐지 낮의 것과는 달랐다.
반짝임은 줄어들고, 색은 조금씩 흐려졌다. 같은 물건인데도, 갑자기 볼품없어 보였다.
재료는 그대로였는데 왜 이렇게 달리 보이는 걸까?
시장의 분주하고 달뜬 분위기가 사라진 나의 공간에는 시장이 주는 자신감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가 보다. 한낮의 자신감은 온 데 간 데 없고 걱정스러운 마음만 한껏 차올랐다.
마음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이미 내가 저지른 일 어떻게든 수습해야 하니까 말이다.
한숨을 쉬며 식탁에 앉아 재료들을 다시 바라보다가, 그중 가장 만만해 보이는 것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내일로 미루고 싶지 않아서였다.
완성될 모습은 머릿속에서도 아직 흐릿했지만, 지금은 그저 시작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조용한 집 안에서 작은 소리들이 또렷하게 들렸다. 아이들이 잠든 뒤의 밤은 유난히 고요해서, 손끝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더 크게 느껴졌다. 어설픈 초보의 손놀림은 자꾸만 미끄러졌고, 내 손으로 만들어 내기엔 너무 작고 섬세한 부자재들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거듭되는 실패에 그냥 내려놓을까 망설임도 자꾸만 들었다. 왜 시작했을까 후회도 곱씹었다.
그렇게 오링을 풀었다가 다시 끼우고, 방향을 바꿔보고, 색을 바꾸고 글루를 붙였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벽시계를 확인하고 나서야,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걸 알았다.
식탁 위에는 아직 완성이라 부르기엔 어딘가 모자란 것들이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끝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이었다. 사탕가게도 아직 서툰데, 액세서리까지 만드는 사장이 되다니.
지금의 초라한 풍경과 머릿속의 거창한 상상 사이의 간극이 우스워 웃음이 나왔다. 나를 향한 웃음이었지만, 그 순간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졌다. 부담을 내려놓는다는 건, 이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ㅡ
그렇게 분주한 며칠 밤을 보내고서 나의 크리스마스 특별 소품 컬렉션이 완성됐다.
이 소품들을 만든 건 11월 말에 열리는 플리마켓에 나가기 위해서였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시즌은 항상 앞서가는 거라고 했으니 분명히 팔릴 거라 확신했었다.
같은 제품을 10-20개씩 만들어 들고서는 완판을 꿈꾸며 야심 차게 첫 플리마켓에 나갔다.
플리마켓에 들고나가는 물건은 무조건 다 팔고 빈 수레로 돌아오는 거라 생각했었다.
왜 그런 가당찮은 생각을 했을까? 현실은 차갑고 냉정하기만 했는데 말이다.
잠을 줄여가며, 발품을 팔아가며 만든 소품들은 정말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자일리톨로 만든 사탕은 오며 가며 사람들이 신기한 듯 집어 들고 가기는 했지만, 예쁘긴 해도 딱히 쓸모는 없어 보이는 크리스마스 소품들에는 좀처럼 시선이 머물지 않았다.
아직 11월이라 그런 거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말을 건네봤지만, 속상한 마음까지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꺼내 놓았던 것들을 다시 수레에 담아 돌아오는 길, 팔지 못한 물건들의 무게만큼이나 마음도 무거워 지기만 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예쁜 소품일 뿐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며칠 밤의 시간과 조급함이 엉겨 붙은 희망의 물건들이었다.
팔리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내가 믿었던 방식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게 더 아팠다.
잘 만들면 팔릴 거라고, 예쁘면 사람들이 알아봐 줄 거라는 초보 사장의 오만한 믿음이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집에 돌아와 수레에서 물건들을 꺼내며 나는 또 다른 변명을 꺼내 들었다.
'오프라인이라서 그래. 온라인에서는 다를 거야.'
그리고 그 변명을 믿기 위해, 나는 또 한 번 밤을 새웠다.
크리스마스 소품들을 하나씩 사진으로 남기고, 문장을 붙이고, 가격을 매기고, 사이트에 등록했다.
크리스마스 까지는 아직 한 달이나 남아있었다. 이벤트를 하고 홍보를 하면 분명히 다 팔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에게 되뇌며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ㅡ
크리스마스 버전 자일리톨 캔디도 준비를 시작했다.
선물로 바로 나눠줄 수 있도록, 이름을 넣은 라벨을 옵션으로 마련했다.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작은 캔디 하나가, 그날의 기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가격대별로 구성을 달리해, 이천 원부터 오천 원까지의 크리스마스 캔디를 만들었다.
부담 없이 건넬 수 있는 것부터, 조금은 마음을 담은 선물까지. 고르는 사람의 상황을 떠올리며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크리스마스 캔디는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아이의 이름은 모두 달랐고, 그만큼 라벨을 만들고 붙이는 작업은 계속 반복됐다. 번거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지만, 그날의 나는 그 모든 수고가 싫지 않았다.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서부터 주문이 들어온다는 것, 시장에 나와있는 넘쳐나는 물건들 중에서 내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뿐이었다.
'크리스마스 캔디를 보다 보면, 예쁜 소품도 하나쯤은 같이 사 가겠지?'
그 생각은 완전히 나의 오판이었다.
캔디는 캔디였고, 소품은 소품이었다.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사고, 필요한 만큼만 사 갔다. 물건이 문제인지 가격이 문제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너무 앞서갔던 건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내 열정을 담아 만든 첫 번째 자체제작 아이템은, 한 번도 선택받지 못한 채 사이트에서 조용히 사라져야 했다.
내 눈에는 너무 예쁜 키홀더였다. 그래서 소중한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주었다.
하지만 판매가 아니라 선물이 되어 떠나보내는 마음에는, 작은 씁쓸함이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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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부족했던 건 의욕이 아니라, 기준이었던 것 같다.
나는 '예쁘다'는 감탄을 기대했지만, 시장은 '필요하다'는 이유를 요구했다. 누군가의 지갑이 열리는 순간에는 언제나 필요와 이유가 있어야 했다.
누구에게, 어떤 날에,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 물건인지 같은 맥락 말이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물건은 아무리 정성스럽게 만들어도 쉽게 선택받지 못한다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되었다.
내 열정으로 제품을 완성시킬 수는 있어도, 구매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팔리지 않는 물건은 시장에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도.
돌아보니 나는 만드는 사람의 시선으로만 물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들 때의 설렘,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 그런 감정들이 곧바로 구매로 이어질 거라 착각했다.
하지만 사는 사람의 마음은 다르다.
사는 사람은 내 밤샘을 모르고, 내 정성도 모른다. 오직 눈앞의 제품 하나로 판단한다.
나 역시 물건을 살 때 물건 자체의 필요와 판매가가 주는 합리성을 따진 뒤 구매하지 않는가? 만든 이의 진정성 따위는 생각헤본 적도 없으면서 내 진정성을 고객들이 알아주리라 믿었던 내가 바보 같다 생각했다.
의욕은 나를 움직이게 하지만, 시장은 의욕으로 설득되지 않는다. 소비자에게는 구매의 이유가 있어야 했다.
팔리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완벽한 물건부터가 아니라, 사야 하는 이유부터 만들어 내야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앞으로 내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