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볕이드는창가 Aug 05. 2022

중국에서 연착에 대처하는 자세

산시(山西)·허난(河南) 지역연구 마지막날

중국에서 연착에 대처하는 자세


뤄양에서의 마지막날이자 장장 7박 8일에 달했던 이번 지역연구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 다가왔다. 7박 8일, 길기도 길었고 정말 다양한 일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간 시간이었다. 어학당 종업식부터 상하이 공항에서의 3시간 연착, 타이위안, 핑야오, 정저우, 덩펑, 뤄양.. 마지막날은 7일간 열심히 달려온 스스로를 위해 휴식을 좀 주기로 했다. 특별한 일정을 짜지 않고 짐도 좀 정리할 겸 오전은 온전히 숙소에서 보냈다.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짐을 싸서 숙소 근처에 있는 maan cafe로 향했다. 공항에 가기 전에 배를 좀 채우고 갈 생각으로 파니니에 커피 한 잔을 시켰다. maan cafe는 내가 베이징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종종 가곤 했던 카페인데, 이곳의 특징은 주문을 하면 꼭 색깔이 있는 곰돌이 인형을 대기표나 벨 대신에 준다는 점이다. 메뉴가 준비되면 테이블 위에 놓인 곰인형의 색깔을 보고 점원이 그 자리로 메뉴를 가져다준다. 뤄양의 정책도 다르지 않은지 나는 주황색 곰을 받았다.



보던 중국 드라마를 보면서 파니니와 커피를 여유 있게 즐기고 택시를 타고 뤄양 북교공항으로 출발했다. 오후 4시 5분 비행기였으니 한 2시 30분까지 도착하면 될 것 같아서 공항까지 약 한 시간을 잡고 택시를 탔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택시가 하나도 막히질 않아 약 40분 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보딩패스를 교환하고 일찌감치 들어갔는데, 뤄양 공항, 정말 볼 거리가 하나도 없다. 그 흔한 프랜차이즈 편의점도 없고, 음식점도 몇 군데 없었다. 대기하는 장소가 정말 좁아서 구경할 것도 없었다. 정말 끝까지 실망시키지 않는 도시다. 


오후 4시 5분 비행기고 탑승시간은 3시 35분이라고 하여 시간에 맞춰 대기 장소에서 기다렸는데, 어째 탑승하라는 안내가 안 나온다. 아직 늦은 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꽤 침착하다. 다들 각자 할 일을 하며 탑승 안내가 나올 때를 기다린다. 나도 따라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보지만.. 갑자기 상하이를 떠날 때의 3시간 연착이 생각나 문득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한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탑승 안내는 나오질 않는다. 페이챵쥰(非常准) 어플로 내가 탈 비행기 상황을 보니 아직 뤄양 공항에 도착도 하질 않았다. 기상 상황이 안 좋은 건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언제 탈 수 있다는 정보도 전혀 공지가 되질 않고 있다. 일단 5시가 다 되어가니 공항에서 뭐라도 먹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된 메뉴가 허난후이미엔(河南烩面).



나는 토마토 계란 면을 시켰기 때문에 폭이 넓은 칼국수 같은 면에 토마토, 계란, 청경채가 들어간 면이 나왔다. 맛은? 아.. 이렇게 쉬운 요리가 이렇게 아무 맛이 안 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아마 물 조절에 실패했는지 굉장히 밍밍한 국물에 면이 담겨 나왔다. 그래, 기내식보단 나을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밥을 다 먹고 나니 6시. 본래라면 이쯤 상하이에 도착했어야 할 시간이다. 일단 드라마를 보며 평정심을 찾으려 해 보지만 잘 되질 않는다. 6시 45분, 어플로 본 내 비행기 상황은.. 8시에 탈 수 있다는 절망적인 소식. 그나마 이게 좀 정확한 소식인지 공항에서도 정식으로 비행기 연착 방송을 하기 시작한다. 장장 4시간의 연착이다. 상하이를 떠나올 때 3시간 연착이었는데, 이번엔 4시간. 정말 이 중원(中原) 지역은 너무도 중국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에서 비행기 연착은 생각보다 잦다. 사람들의 거듭되는 항의에 국제선은 그나마 많이 나아졌지만 중국 국내선은 여전히 연착이 많이 일어나고, 특히 중소도시를 가는 비행편의 경우 그 양상이 더 심한 편이다. 오죽하면 어플에서 해당 비행편의 '평균 출발 시간', '평균 도착 시간' 같은 것을 따로 통계 내어 알려줄까? 그래서 그런지 탑승객들도 한 시간 정도의 연착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여기곤 하는 것 같다. 


일단 중국에서 국내선 비행을 할 예정이고, 목적지나 출발지가 중소도시일 경우, 꼭 이어폰과 드라마/영화 등 볼 거리, 혹은 책을 챙기도록 하자. 정말 어떤 이유로 연착이 얼마나 될지 승객의 입장에서는 알 수도 없고, 친절한 공지도 받기 어렵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침착하자. 혹시 자정이 넘어서야 도착하게 되는 사태가 예상될 경우 그날 숙박하고자 했던 숙소에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자정 이후 들어갈 가능성이 있음을 미리 알리자. 항공사에는 나 말고 누군가 분명 항의를 해줄 것이다.



7박 8일, 혼자만의 지역연구를 마치며


타이위안, 핑야오, 정저우, 덩펑, 뤄양까지. 산시성과 허난성의 다양한 면모를 맛볼 수 있었던 7박 8일의 시간. 혼자 다녀본 첫 지역연구이자, 비행기, 택시, 고속철 외에 일반 기차 및 시외버스까지 다양한 교통수단을 고루 경험해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살아 돌아왔고, 사기 안 당했고, 중국인 취급받았다!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니 차를 대절하는 것보다 도착지까지 시간은 좀 더 걸리더라도 터미널이나 기차에서 다양한 계층의 현지인을 마주칠 일이 많아 훨씬 흥미로웠다. (물론 그만큼 더 많이 조심해야 했지만) 또 혼자 다니다 보니 여행길에서 마주친 사람과 대화할 일도 많아 친구도 사귀게 되었고.


이 지역연구의 테마는 중국의 '과거'였다. 다녔던 도시 자체의 역사도 그랬지만, 사람들의 생활상도 실제로 현대 중국보다는 과거의 중국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명청대부터 보존되어온 고성 안에 있는 객잔에 머무르며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던 핑야오, 도시 전체가 큰 박물관 같은 느낌이었던 뤄양이 그랬다. 


특히 뤄양은 현대적인 느낌이나 고층빌딩은 정말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그마저도 문화 보존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우리로 치면 경주, 일본으로 치면 교토 같은 곳이 아닌가 싶다. "고금의 흥망성쇠가 궁금하다면, 고개를 들어 낙양성을 보라(若问古今兴废事,请君只看洛阳城)"는 송나라 사마광의 시구처럼, 뤄양에는 화려했던 과거도 있었고, 낙후된 지금도 있었다. 도시 안을 거닐면서 종종 그 점이 꽤나 쓸쓸하기도 했다.


중원에 다녀오니 조금이나마 중국인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제 다시 상하이로 가자!

 



[산시·허난 8일차 일정 (뤄양)]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진작 상하이에 도착했어야 할 비행기가 4시간이나 연착되어 지난주 타이위안에 갈 때보다 연착이 더 심했다ㅠㅠ 그래도 마음을 추슬러야지. 덕분에 허난후이미엔을 먹어봤다! 타이위안, 핑야오, 정저우, 뤄양.. 여행 중 너희들이 내게 준 모든 것에 감사해~!



매거진의 이전글 무측천의 꿈과 샤오카오의 추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