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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Aug 04. 2022

무측천의 꿈과 샤오카오의 추억

산시(山西)·허난(河南) 지역연구 7일차 (2)

조금은 화려한 점심


백마사 관람을 마치니 배가 고파왔다. 백마사 근처에는 뭐가 없어서 일단 다음 코스인 수당낙양성 유적지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중국 요리를 너무 먹다 보니 좀 물려서 오늘 점심은 오랜만에 이탈리안을 먹어보기로 했다. 뤄양의 이탈리안은 맛있을까 조금은 걱정하면서. 지도로 검색해보니 수당낙양성 유적지 근처에 마침 라자냐와 간단한 디저트류를 파는 식당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나이미즈디(乃蜜之地), 영어 이름은 Promise Land란다. 일단 가보자.


식당은 톈신 문화산업원(天心文化产业园)이라는 구역 안에 있었다. 찾아보니 이 구역은 본래 뤄양의 중공업 공장들이 모여있던 구역이라고 한다. 산업군 변화로 버려진 폐공장을 리모델링해 카페나 갤러리 같은 특색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낸 곳이었다. 베이징이나 타이베이에도 유사한 공간들이 있는데, 뤄양에도 있을 줄은 몰랐다. 뤄양 구도심에 있는 나름대로 '핫 플레이스'다.



삭막한 공장의 분위기를 풍기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꽤 고급진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다. 일단 미리 봐 뒀던 라자냐를 시키고 케이크도 하나 시켰다. 맛은 음.. 기대를 버리면 된다. 뤄양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이탈리안이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눈감아줄 수 있는 맛이다. 케이크도 딱 그 정도 수준. 그래도 땡볕이 내리쬐는 뤄양에서 시원하게 쉴 곳을 제공해줬다는 점에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무측천의 꿈, 수당낙양성유적지


점심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향한 곳은 무측천이 즉위한 곳이라고 하는 수당낙양성유적지. 무측천 시대의 황궁인 밍탕(明堂)과 중국 고대에 지어진 120m에 달하는 가장 높은 건축물인 톈탕(天堂)이 있는 곳이다. 수당낙양성 자체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수나라 때 처음 조성되었지만,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당나라, 특히 무측천이 뤄양 천도 후 통치할 때라고 한다. 입장권은 120 위안, 맞은편에는 잉톈먼(应天门) 유적지가 보인다.



이 유적지에서는 앞서 말한 밍탕과 톈탕을 모두 관람해볼 수 있다. 밍탕은 수당낙양성 황궁인 자미성(紫微城)의 정전(正殿), 톈탕은 무측천의 예불당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두 건물 모두 무측천이 뤄양에서 황제가 되었을 때 화려한 꿈을 안고 높게 높게 지었던, 당시로는 매우 높은 높이를 자랑할 정도의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전란으로 거의 손실된 것을 복원한 상황이라 당시의 높이까지는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밍탕의 경우, 지어졌던 당시에는 톈탕보다 훨씬 높은 건물이었으나 현재는 모두 소실되어 톈탕보다 낮은 높이가 되어 있었다.


본래 밍탕, 톈탕의 조감도 및 현재의 밍탕(왼쪽)과 톈탕(오른쪽)


나는 먼저 밍탕으로 들어갔는데, 인테리어가 아주 눈이 부셨다. 복원하면서 무측천 시기의 화려함을 함께 복원한 듯했다. 또 아주 우연히도 그곳에 도착한 시간에 마침 공연이 있어 볼 수 있었는데, 이 번쩍번쩍하게 만들어진 곳을 무대로 활용하고 있었다. 무측천의 즉위와 일생에 대한 공연인 것으로 보였다. 밍탕에는 이런 공연 외에도 몇 개의 전시실이 있어 이곳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에는 톈탕. 톈탕은 당시 불상을 모시고 예불을 드리던 종교적인 장소라 그런지 밍탕과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하지만 번쩍번쩍한 황금빛은 여전했다. 재미있는 건 여기도 무측천과 관련된 공연이 있었는데, 이번엔 관람객 중 일부를 참여시켜서 공연을 했다. 천장에는 탱화 외에도 봉황의 그림을 볼 수가 있는데, 즉위하기 전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전해지는 무측천의 이야기에서 기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전시실 중 어떤 곳에서는 무측천의 즉위식을 재현한 모형이 있었는데, 여기 열 맞춰 서있는 사람 중 흑인도 있고 중동에서 온 것 같이 터번을 쓴 사람도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장안십이시진(长安十二时辰)> 같은 당나라 때를 다룬 중국 드라마를 보면 당시 수도였던 장안에는 흑인이나 페르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는 점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당시 당나라가 다양한 지역의 문화가 섞인 국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여황제. 후궁으로 들어와 황후, 황태후를 거쳐 마침내 스스로 황제의 자리까지 이른 인물. 비록 그녀의 죽음으로 무주는 끝이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하지 않은 사람. 그녀가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것이 역사의 흐름이었든 본인의 야망이었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이고, 그런 그녀가 황제가 된 뒤 수도까지 옮기고 밍탕, 톈탕 같이 높은 건물을 열심히 지은 것도 어찌 보면 그녀의 이런 특이한 행보를 일정 부분 정당화하기 위한 방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황제로서의 지반 강화, 또 새로운 나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어떤 부담감? 어느 쪽이든 이 수당낙양성 유적지에는 무측천이 당시 가졌던 꿈이 보인다.


그리고 어딜 가나 빼놓을 수 없는.. 저 작은 틈으로 들어가 있는 지폐들..


더위를 피해, 쇼핑몰로!


톈탕, 밍탕에서 무측천의 꿈을 본 뒤, 나는 더위도 피하고 간단한 음료도 좀 사 먹으러 쇼핑몰을 찾아가기로 했다. 마침 근처에 왕푸징 백화점이 있어 찾아갔는데, 가는 길에 내가 너무 좋아해 마지않는 허브 젤리 밀크티를 파는 곳을 발견해 마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잠깐, 이 허브 젤리 밀크티(仙草冻奶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자면.. 때는 바야흐로 2012년 내가 베이징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내가 지냈던 유학생 기숙사 1층에는 밀크티를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푸딩 밀크티라는, 한국에는 당시 없었던 메뉴를 발견하게 된다. (사실 그 당시 한국엔 지금처럼 밀크티를 파는 곳 자체가 많지 않았다)


쌉싸름한 밀크티의 맛에 달달한 푸딩이 합쳐진 푸딩 밀크티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칼로리. 이것만 마시다간 교환학생 끝날 때 체중계에 올라갈 용기가 사라질 것 같았던 나는 다른 메뉴를 하나 개척해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허브 젤리 밀크티다.


허브 젤리는 중국어로 셴차오똥(仙草冻)이라고 하는데, 앞에 붙어있는 셴차오라는 말이 허브/약초를 뜻한다. 먹으면 신선이 되는 풀! 사실 약초 같은 것을 젤리 형태로 굳혀 만든 것인데, 이걸 밀크티와 함께 먹으면 그렇게 조화로울 수가 없다. 젤리 자체에서는 약간의 약초향 외에 별다른 맛이 나진 않지만, 밀크티와는 묘하게 잘 어울리고, 무엇보다 많이 달지 않아 좋다. 중국에서는 밀크티의 건강한 토핑으로 여겨지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이걸 토핑으로 해둔 밀크티 집을 본 적이 없다. 가끔 대만이나 대륙에 출장을 가면 아쉬운 대로 한 잔씩 사 먹곤 한다.


어쨌든 마침 뤄양에서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허브 젤리 밀크티를 만났으니, 안 사 먹을 수 없지! 게다가 더위를 식혀주는 녹두 등 잡곡이 함께 들어있는 밀크티여서 뭔가 식사 대용으로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찾은 왕푸징 백화점에는 뤄양에서 도저히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뭔가를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스타벅스였다. 너무 뤄양을 얕봤나..?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찾은 재미 중 하나는 시티 머그 구경인데, 뤄양의 시티 머그에는 연꽃과 용문석굴이 그려져 있었다. 문득 백마사에서 봤던 그 연꽃들이 생각났다.




혼 샤오카오(烧烤)도 괜찮아요


쇼핑몰 나들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생각해보니 오늘이 뤄양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자 길었던 7박 8일 지역연구의 마지막 밤이었다. 조금 센치해지기도 했고 이 저녁을 이렇게 그냥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 즉흥적으로 꼬치구이, 그러니까 샤오카오(烧烤)를 먹으러 가기로 결정했다. 버스를 타고 숙소를 가던 도중 숙소 근처 평이 좋은 샤오카오집을 하나 발견해서 그 길로 들어간 것이다. 혼자 꼬치구이를 먹으러 가다니, 생각해보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어쩐지 그날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감자, 콩팥(小腰), 양고기, 돼지고기 꼬치 등을 시키면서 덩펑에서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샤오빙(烧饼)을 발견해 같이 시키게 되었다. 사실 덩펑에서 먹은 것처럼 화덕에서 구워 나온 샤오빙의 비주얼을 상상했는데, 막상 점원이 가지고 온 샤오빙은 좀 다르게 생겼다. 내가 아는 그 샤오빙에 양꼬치 양념으로 쓰는 향신료를 뿌려 구워 나온 것인데,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이날 이 집에서 먹은 꼬치 중 샤오빙이 제일 많이 생각나고 먹고 싶다. 그 뒤로 어디에서 시켜도 이 맛이 나는 샤오빙을 먹질 못했다.


그리고 꼬치구이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또 맥주. 뤄양에서 나는 처음으로 라오샨 맥주(崂山啤酒)를 먹어보았다. 칭다오 맥주에서 만들었다는 라오샨 맥주는 그때 당시에는 한국에서 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편의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맥주가 되었다. 일반적인 다른 맥주보다는 깔끔하고 가벼운 편이었던 것 같다.


혼자 핸드폰으로 중국 드라마를 보면서 샤오카오를 먹고 있으려니, 주위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점원도, 식당 안의 다른 손님들도 어째 나를 열심히 관찰하는 느낌이다. 젊은 여자 혼자 들어와 술 한 병에 샤오카오를 먹고 있으니, 뭔가 사연이 있는지 쳐다볼 만도 하다. 하지만 혼자 먹는 샤오카오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 그날의 술 한 병은 7박 8일의 '혼자만의 지역연구'가 무사히 마무리되고 있음을 자축하는 의미가 더 컸으니. 내일이면 상하이로 돌아간다. 여러모로 뿌듯한 저녁이다.




[산시·허난 7일차 일정 (뤄양)]


[중문 일기 in 위챗 모멘트(朋友圈)]

(譯) 뤄양에서 보내는 3번째 날! 오전에는 백마사, 오후에는 톈탕, 밍탕을 보는 일정이었다. 오전에 보슬비가 내려 공기가 무척 맑았고, 사원 안도 무척 조용했기에 돌아다니기 좋았다. 게다가 중국의 첫 절이자 불교연구센터로서, 백마사에는 인도, 미얀마, 태국 불교 구역이 있었던 점이 무척 특별했다. 오후 수당낙양성에서의 볼거리도 매우 많았다. 무측천과 관련된 공연도 있었다! 밤에는 왕푸징 쇼핑몰을 구경한 뒤 샤오카오를 먹으러 왔다. 샤오카오 정말 맛있었다. 뤄양에도 회족 지역이 있어서 그런 걸까? 오늘도 완벽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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