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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Feb 05. 2023

갑자기 ‘인생의 끝’에 몰렸다

그것도 제삼자에 의해

브런치에 내 개인적인 일상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어디에도 말 못 했던 유산 이야기는 예외로 하고), 그냥, 그런 날이 있잖아. 일과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 갑자기 뭔가를 써 내려가고 싶은 날. 오늘이 그런 날인 걸로 하자.


요즘 날이 참 추워. 그리고 참 건조해. 내일모레면 만 6개월인 우리 아가에게 겨울이란 참 가혹한 계절인 것 같아. 가습기를 두 대나 샀는데도 매일이 습도와의 전쟁. 두터운 어른 겨울옷을 뭉터기로 빨아 널어야 겨우 적정 습도가 돼. 참 어려워.


사실 요즘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말이 한 마디 있어. 아마 그 말 때문에 요즘 좀 다운되어 있는 것 같긴 한데.




호두가 4개월쯤 되었을 때, 그러니까 머리카락이 뭉터기로 빠지기 시작해 내가 멘붕에 빠졌을 무렵, 지인의 결혼식에 가게 되었어. 아기를 낳고 120여 일 동안, 병원 통원을 제외하곤 거의 처음으로 하는 사적인 외출이었어.


나 원래 다른 사람 결혼식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참 좋아하거든. 그날은 더 좋고 흐뭇하더라. 결혼식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그 시간에 아기랑 있지 않고 서울 모처에 혼자 나와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와 사람 대 사람으로 '어른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어. 집에 있으면 '맘마 응아 오구오구 으에으에'가 일상 발화의 80% 이상이었거든.


그날 결혼식엔 화동이 있었어. 한창 귀여울 나이의 아이들이 예쁘게 차려입고 서있는데 기특하더라.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데, 뒤에서 이런 말이 들리지 뭐야?


"언니, 언니는 결혼하고 아이 낳고 싶어요? 전 그렇게 제 인생 끝내고 싶지 않아요."


왜 있잖아.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주인공이 충격받으면 이명 같은 게 삐이- 하고 울리고 주변의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는 거. 나 그때 그랬어. 마음속에 걸린 고무줄이 팅- 하고 끊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라. 그리고 남은 하루 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이따금 그 말이 생각나는 거야. 아, 나는 인생의 끝에 있구나.


오랜만의 외출에 행복했던 하루가, 그 한 마디로 날아가는 기분이었달까.




우리 아가, 호두는 지난 8월 세상에 나왔어. 품에 안으면 부서질 것처럼 작고 하찮았던 신생아는 어느덧 8kg이 넘는 엉아가 되었지. 그런데 참 이상하지? 호두가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동안 나는 점점 초췌해지는 것 같아. 목, 어깨, 허리, 무릎, 골반, 손목. 관절이 있는 곳은 다 아프네. 집안 곳곳엔 각종 안마기와 세라밴드, 파라핀 기계. 아마 임신과 출산이 내 몸 가장 약한 곳부터 파괴하는 모양이야. 원래도 목과 허리가 안 좋았거든.


브런치? 맞아. 나 만삭 때 한 달 정도 휴직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보려고 노력했었는데, 호두 낳고 한동안 신생아 케어하느라 거의 황폐화되었지. 그러다가 호두가 딱 70일이 되던 날, 그러니까 이전보다 좀 더 낮잠도 밤잠도 잘 자기 시작한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하루 24시간 중에, 아기 엄마로서의 나 말고 '그냥 나'로 사는 시간이 너무 없는 거 아냐?'


물론 70일 젖먹이의 엄마로서 할 생각은 아니긴 한데, 뭐 좀 살만해져서 그런 생각했다고 치자고. 여튼 그래서 집안 구석에서 먼지 쌓인 노트북을 꺼내 오랜만에 브런치에 로그인을 했지. 상하이에서 보냈던 1년의 기록은 쓰는 데 시간과 품이 많이 드니 잠시 접어두고, 비교적 품이 덜 드는 영화·드라마 리뷰를 쓰며 조금씩 활성화해보려고 했어.


요즘 다시 여행기가 쓰고 싶어져서 연재를 하고 있긴 한데, 쓰다 보니 행복했던 시간을 복기하는 것도 꽤 큰 용기와 심력이 필요하구나, 싶네. 그때의 내가 너무 빛나니까. 중국 방방곡곡을 헤집고 다닌 기록을 들춰보다 보면, 아기의 토가 묻은 목 늘어난 맨투맨을 입고 꺼진 TV를 바라보며 '산토끼 옹달샘 아기염소 솜사탕'을 무한반복으로 부르고 있는 이 라디오가 그때 그 빛나던 사람이 맞나,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해.




이런 불순한 생각을 해서 그런가, 머릿속에서 자꾸 그날 일이 떠올라.


아기를 먹이면서 눈맞춤을 하다가도, 인생의 끝이라는 말이 떠오르고. 아기를 재우려고 토닥토닥하면서도 머릿속은 '끝'이라는 음절이 떠다녀. 나 원래 이런 거 진짜 잘 까먹거든. 오죽하면 대학 때 친구가 내 행복의 비결이 '망각'이라고 했을 정도겠어. 근데 왜 안 잊히는지 모르겠어. 이 글을 쓰면 떨칠 수 있을까?


이 일이 머릿속에 맴돈 지 좀 됐어. 당일엔 어이도 없고 화도 조금 나서 (물론 당사자에게 쏘아붙일 용기는 없었지만) 꼭 글로 써야지, 했다가도, 뭘 또 그런 걸 글로 써서 스트레스를 배설하나 싶어 그만두었다가도, 이제 시일이 좀 지나 마음의 정리가 되었으니 정제된 글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써볼까 했다가 또 일상의 바쁨에 미뤄둔 것이 한 달이 넘었네.


당연하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건 물론 선택의 문제야. 아기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아기는 죄가 없지. 그러니까 부모는 최선을 다해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이기 때문에 더 무겁게 다가오고 힘들게 느껴지는 건 분명 있는 것 같아.


특히 아기를 낳은 당사자는 출산 자체가 몸에 무리를 많이 줘서 골병도 나고, 병든 몸이 마음까지 병들게 하는 느낌이라 하루하루 쉬운 날이 없으니까. 나만 해도 그래. 엄마로서의 삶과 '책임'이 쉽지 않으니 아기 낮잠 잘 때나 육퇴 후 짬 내서 이곳에 열심히 글을 쓰며 '나'를 찾으려는 것 아니겠어?


하지만 선택에 대해 열심히 노력해서 책임을 지려 하고, 그렇게 이 세상에 살아갈 한 아이를 키워내는 과정이 제삼자의 입에 의해 '인생의 끝'으로 표현되는 것은 그리 기분이 좋지 않네. '내 인생의 끝을 왜 당신이 결정하지!?'라는 느낌.


사실 별 말 아닌데, 그치? 내가 백여 일 전 아기를 낳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냥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네 말도 옳다-' 하고 황희정승식으로 끝낼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면 아기를 낳고 아직 호르몬이 미세하게 비정상이어서 그 말이 더 기분 나빴는지도 몰라. 그래도 얘, 네가 선택하지 않았다고 그것을 끝이라 표현하지 말아 줘. 너도 누군가의 인생의 끝에서 시작되었단다.


호두 178일 되는 날 밤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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