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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Jul 29. 2022

2022년 6월 11일 나무에게

(지난 6월 11일 작성 후 서랍에 넣어둔 글을 발행합니다)



1년 전 오늘, 우리에게 찾아온 첫 아이, '나무'가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따뜻한 봄이 있는 곳으로 떠나갔다.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다. 한동안은 가만히 앉아있어도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정말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가능했다. 세상엔, 누구의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그런 슬픔도 있었다.


지인의 위로 속에 담긴 따뜻한 마음을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잘 알고 있지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거리에서 임산부나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마주쳤을 때 움츠러드는 순간, 새로운 생명이 찾아온 소식을 전하는 친구 앞에서 축하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사실은 온 마음으로 축하할 수 없는 나 자신에 실망한 순간들도 있었다.


내 그릇이 그 정도인걸,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슬픔들이 빚어낸 순간들을 직면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라도 나를 보듬어줘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점점 더 실망하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해 연말, 또 한 번의 두 줄과 마주했다.


처음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보고 나는, 참 잔인한 생각이지만 '혹시 잘못되려거든 그냥 지금, 자연스럽게 잘못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8주 진료에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던 나무가 11주 진료에서 잘못된 걸 알았을 때의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희망고문을 당하느니 병원에 가서 확인하기 전에 빨리 끝내 달라는 바람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상 임신을 확인하는 첫 진료를 보러 가기 전까지 두 줄은 이어졌고 우리는 집 근처인 수원의 산부인과가 아닌 동탄에 있는 산부인과로 향했다. 수원의 그 병원엔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공존해서일까. 나무의 유산 때 "이 주수엔 이런 일 잘 안 생기는데..."라고 혼잣말로 읊조리던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자꾸 생각나서일까. 그 병원엔 가고 싶지 않았다. 유치하지만.. 그냥, 내 마음이 그랬다.


첫 진료를 보러 갔다 와서도 불안한 마음에 일주일에 한 번씩 다른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봤다. 특히 나무가 세상을 떠난 9주에서 11주 사이에는 출혈도 있어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 12주에 초음파를 보고 아이가 잘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태명도 짓지 않았다. 이름을 너무 빨리 붙였다가 잘못되면 마음이 더 아플까 봐. 나무 때 그랬듯이.


16주, 성별을 확인하고, 20주부터 점점 배가 나오고 태동이 시작됐는데도 가족과 회사 상사 외에는 임신 사실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다. 잘못되었을 때 그 사실을 알리는 것도 그 사실 자체만큼이나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았기에, 소식을 전하기 전에 늘 망설여져 조금만 기다려보자며 늘상 미뤘다. 사실 아직도 이렇게 글로 남기기가 무섭다. 글로 남기는 순간 이 작은 아가가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질 것 같아서.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뱃속 '호두'는 벌써 30주 아가가 되었고, 엄마 뱃속에서 가끔은 툭툭 가끔은 빵빵 가끔은 꿀렁꿀렁거리면서 즐겁게 놀고 있다. 엄마를 닮아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지 초음파를 보러 가면 얼굴을 좀 가리긴 해도, 90~00년대 유행가만 틀어주면 즐겁다고 댄스파티를 벌이는 레트로 보이다. 첫 임신 때 태동을 못 느껴봐서 그런지, 이 1kg 남짓한 아이가 뱃속에서 헤엄치며 움직이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가 않다. 얼굴도 제대로 못 본 상태인데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바깥세상으로 나오면 얼마나 더 귀여울까.


지난주엔 호두 신발로 사둔 호랑이 신발을 들고 강릉에 다녀왔다. 강문해변 백사장에서 남편이 '우리 가족'이라며 크기가 서로 다른 조개껍질을 주워 내게 건넸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시시때때로 고개를 들지만, 지금은 그저 호두가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서 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무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지? 엄마는 아직도 가끔 호두를 무심코 나무라고 불러. 나무는 여행 중인데... 나무야, 호두가 건강하게 나올 수 있게 하늘에서 지켜줘. 고맙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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