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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Feb 01. 2023

BiangBiang면을 아시나요?

시안(西安) 지역연구 1일차 (1)

싸이월드의 추억 속 시안(西安)으로


작년이었나. 없어졌던 내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복구됐다. 게시판이나 방명록, 일촌평 등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지만 사진첩은 거의 다 복구된 듯했다. 사진마다 적어둔 코멘트는 왠지 중간중간 이빨이 빠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예전 사진을 보며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은 그것대로 좋았다. 그리고 그 안에 2010년 중국으로 갔던 학과 답사 사진이 있었다.


충칭 여정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는 이 학과 답사는 소식(苏轼, 소동파)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답사였다. 충칭에서 시작해 봉절, 양번, 자귀 등을 돌다가 시안에서 끝나는 일정이었는데, 마지막 도시였기에 시안에서 우리는 비교적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답사 일정 중 처음으로 자유시간도 주어졌다. 자유시간 때 친구들과 둘러봤던 이슬람 사원 청진대사(清真大寺)와 회족(回族, 이슬람을 믿는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 거리, 따뜻했던 양러우파오모(羊肉泡馍)는 아직까지 기억이 생생하다.


싸이월드에 올려놨던 사진들


2019년 7월 13일, 폭우로 기차 시간을 당겨 쩐쟝에서 상하이로 돌아온 뒤 하루 쉬고 다시 출발하여 향한 곳은 바로 이곳, 시안(西安)이다. 시안은 상하이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반 가야 한다. 이번 여정은 좀 길게 가기로 했기 때문에 6월에 이미 일찌감치 날짜를 정해두었다.


답사 당시 병마용이나 대안탑, 곡강지 같은 시안의 명소들을 이미 둘러본 터라 이번에 가서 막상 볼 게 없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에 둘러봤던 회족 거리와 청진대사가 너무 좋았기에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번에 가면 예전의 좋았던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도 있고 대학생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 4박 5일을 다녀오기로 했다.



오늘의 비행기는 9시 25분에 출발하는, 비교적 이른 시간의 비행기다. 국내선이어도 적어도 한 시간 반 전에는 공항에 도착하는 것이 좋아서 아침 일찍부터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시안은 중국의 4대 고도(古都) 중 한 곳으로, 주나라, 진, 한, 당나라 등 역대 10여 왕조가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다. 역대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자, 도읍이었던 시간이 가장 길었던 도시이자, 영향력이 가장 컸던 도시다.


<장안십이시진(长安十二时辰)>이라는 드라마 리뷰에서도 적었지만, '한족의 중국'이 가지는 매력을 어필하기에 가장 적절한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장안의 화제'라는 말로 귀에 익은 '장안'이 바로 이곳 시안의 옛 이름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2010년 당시 시안은 중국인이나 외국인에게 크게 인기 있는 도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갔을 땐 중국 정부의 선전 전략에 따라(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시안을 찾은 관광객이 꽤 많았다. 숙소 앞에 보이는 대안탑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저 빨간 옷의 무리를 보라!


관광객만 많아진 것은 아니고, 시안 시내도 예전보다 많이 정비되고 깨끗해진 느낌이었다. 삼성전자 같은 한국기업이 이곳에 진출해 있고, 우리가 묵은 숙소가 출장자가 많이 이용하는 곳이었다 보니, 숙소 앞에 뜬금없이 한국음식점이 있었다. 가서 먹진 않았지만 그냥 신기해서 사진 찍었다.



산시(陕西)라면 면식(面食)이지


숙소에서 짐을 풀고 다소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향한 곳은 숙소 근처에 있는 천하제일면(天下第一面)이라는 가게. 보통 이렇게 자화자찬이 심한 곳치고 맛있는 곳이 별로 없는데.. 감안하고 들어간다.



점심시간이 좀 지난 시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대안탑(大雁塔)이라는 유명한 관광명소 앞에 자리 잡은 가게인데 이렇게 사람이 없다고?! 여기서 또 약간 지뢰 밟은(踩雷) 느낌이 들죠.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배가 고프다.



이곳의 시그니쳐라는 천하제일면 플래터, 그리고 그 유명한 뱡뱡면(biangbiang面)을 시켰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안전빵 메뉴로 가지볶음도 하나 주문. 중국 가지 요리는 항상 옳아. 플래터(拼盘)는 말이 플래터지, 그냥 샘플러에 가까웠다. 여기서 먹어보고 맛있으면 그걸 시키라는 뜻일까..?


플래터에는 여섯 개의 서로 다른 면 요리가 담겨 있었다. 매콤새콤한 소스, 짭조름한 소스, 마장의 고소한 소스 등을 뿌려놓은 면 요리였다. 특이했던 건, 플래터에 담긴 여섯 개의 면 요리가 모두 다른 면을 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소스만 다른 것이 아니라 면의 종류가 달랐다. 길이나 두께, 만든 재료가 각기 다른 면들. 이탈리아에 다양한 파스타가 존재한다면, 산시에도 다양한 면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샘플러 같은 플래터로 면요리 맛을 보고 우리는 그 유명한 뱡뱡면을 먹기 시작했다. 뱡뱡면. 컴퓨터로는 칠 수 없는 글자라 웹에서는 biangbiang面이라고만 표기되는 그 요리(아래 한자 참고). 면을 치는 중에 뱡-뱡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뱡뱡면이라는 말도 있고, 시안 지역 일대의 옛 방언에서 따온 음절이라는 말도 있다. 2010년 답사 때 화산(华山)을 갔을 때 산 앞에서 이 면의 이름을 처음 접했는데 그땐 아쉽게 먹어보질 못했다. 이번 기회에 먹어보기로!


뱡뱡면의 저 특이한 글자는 여러 작은 한자를 조합해서 만든 글자다. 한 수재(秀才)가 만든 한자라는 말도 있고, 진시황이 만든 한자라는 말도 있는데 어떤 경우든 이 한자를 만든 목적은 '뱡뱡면'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썰이 주류다. 한자 각각의 구성요소들은 '면을 팔던 수레'의 모습을 묘사한다고 한다. 면을 팔던 상인의 모자, 가게에 걸려있던 마화, 수레가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 밀가루 포대의 모습, 그리고 그 앞에서 서성거리는 남녀의 모습을 표현한다고. 이렇게 글자 하나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니, 정말 한자의 세계는 심오하다.

BIANG !! (왼쪽이 번체, 오른쪽이 간체 버전)


뱡뱡면은 앞서 말한 것처럼 면을 칠 때 나는 소리를 따와 이름을 지었기에 '면을 만드는 방법'을 가지고 지은 이름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면은 허리띠처럼 두께는 두텁고 너비도 넓다. 산시의 8가지 특이한 것(陕西八大怪) 중 하나가 "면이 허리띠 같다(面条像裤带)"인데, 이 뱡뱡면을 일컫는다. 이렇게 특이한 면을 어떤 양념장과 부재료를 얹어 내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되는데, 끓고 있는 고추기름을 얹은 요우포몐(油泼面)이 그중 하나다.


나무위키에는 요우포몐이 뱡뱡면과 같다고 나오는데, 그건 틀렸다. 뱡뱡면이지만 어떻게 조리하냐에 따라 요우포몐이 아닐 수도 있고, 요우포몐으로 조리했지만 면을 뱡뱡면을 쓰지 않았다면 그건 뱡뱡면이 아니다. 쓰고 나니 말장난 같네.


여하튼 우리가 갔던 집에서는 짭조름한 양념장과 고추기름을 얹어서 만들었더라. 기대했지만 맛은 기대에 못 미쳤다. 면을 담을 때 면수를 덜 털어서 비볐을 때 묽었고, 그래서 뭔가 싱거운 맛만 났다. 산시(陕西,山西 모두)는 예전부터 쌀이 귀해 면식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면요리는 어딜 가든 다 맛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아무래도 현지인이 많이 가는 가게를 골라 갔어야 하는데, 관광객만 갈 것 같은 가게를 고른 것이 패인인 것 같다.


아쉬움을 안고, 시안에서의 지역연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약 4개월 뒤, 나는 시안에서 인생 면을 만나게 되는데..... 그건 11월 포스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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