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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Sep 07. 2016

공항철도는 추억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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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1호선의 종착역인 계양역은 2010년 12월의 막바지에야 비로소 서울역과 청라국제도시를 잇는 인천국제공항철도, 통칭 공항철도와 환승 통로를 갖추었다. 그 전까지 계양구와 그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서울에 가려면 부평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해서 또 한참을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부평역은 지하에는 그 일대에 가장 큰 지하상가를, 그리고 지상에는 마찬가지로 부평의 쇼핑과 놀 거리의 중심지를 맡은 문화의 거리를 끼고 있어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일대가 논밭인 계양역은 상대적으로 훨씬 한적했고, 역 자체도 넓기에 플랫폼도 쾌적했다. 또한 인천 1호선에서 공항철도로 한번만 갈아타도 홍대입구역이나 서울역과 같은 서울의 중심지로 훨씬 빠르게 갈 수 있었다. 인천 계양구와 그 인근 주민들에게는 단비 같은 이야기였다. 나의 2011년 봄은 그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이모, 할머니, 엄마, 그리고 주위 친구들 등등, 누구와 이야기를 해도 공항철도에 관한 소식은 빠지지 않았다. 



  하도 주위에서 ‘좋다. 좋다’ 들어서 일까. 고등학교 1학년 때 소풍 차 대학로에 가던 날, 나는 공항철도를 탈 생각에 은근히 들떠 있었다. 신기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공항철도는 내가 그동안 주로 타던 인천 1호선과는 디자인부터 달랐다. 서서가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열차 사이사이와 좌석 한 가운데에 세로로 된 긴 봉이 설치되어 있었다. 좌석 끄트머리는 플라스틱으로 광고판으로 막혀 있어서 서서가는 사람은 편하게 등을 기댈 수 있었고 앉아가는 사람은 머리를 기댈 수 있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들이지만 당시에는 충격이 컸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을 시작으로 남양주로 이사를 간 작년 겨울까지, 공항철도는 내 추억의 한 부분으로 자라났다. 시험만 끝나면 친구와 함께 홍대에 놀러갔던 일, 방학이 되면 대학로에 아빠 가게로 언니와 함께 일하러 갔던 일 등, 그동안 공항 철도 하면 떠오르는 기억도 가지각색으로 쌓였다. 공항철도를 탄 어느 날의 나는 너무 즐거워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주구장창 친구와 떠들기도 했고, 또 어떤 때에는 너무 피곤해서 고개를 꾸벅꾸벅 흔들며 졸기도 했다. 낮에는 햇볕을 고스란히 받는 창문 밖의 산과 강이 너무 예뻐서 넋을 놓고 쳐다보았고, 밤이면 차창밖에 까만 야경에 반짝이는 불빛들 몇 개만 총총 박힌 것을 보고 우주를 여행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현재 나는 안산에 있는 기숙사에 살면서 본가는 남양주에 두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공항철도를 탈일도 좀처럼 없다. 사실 어쩌다 공항철도를 탈일이 생겨도 이제 더 이상 옛날의 두근거림은 없다. 그간 너무 익숙해진 탓도, 전철을 타고 우주여행을 꿈꾸기에 이제 내가 너무 커버린 탓도 있으리라. 결국 지금으로서는 모두 추억에 불과한 일일 뿐이다. 하지만 모든 추억들은 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듯, 공항철도에 대한 추억도 그렇다. 

  요즘은 정말, 해야 할 일들에 수없이 치여서 모두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면 공항철도는 은근슬쩍 또다시 내 앞에 와 선다. 그러면 상상 속 나는 혼자서 혹은 친구와 함께 느긋한 걸음걸이로 공항철도에 올라탄다. 시간은 주로 오전과 오후의 중간지점, 열차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적하고 창 너머 강은 빛을 받아 반짝반짝 부서진다. 돈도 시간도 많고, 걱정은 별로 없다. 마음은 한적함으로 충만하다. 물론, 진짜로 어디로 가는 것도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추억에 기반을 둔 상상일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한결 나아진다. 시간이 지나 안 좋은 기억은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만 남을수록 추억은 더욱 빛이 난다. 모아진 추억들이, 나를 지탱해주는 단단한 뿌리로 자라나는 과정이다.



  요즘처럼 기운 없는 날에는 또 다시 은근한 기대를 갖고 마음속 개찰구에 한번 서본다. 추억을 실은 공항열차가 내 앞에 정차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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