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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Sep 07. 2016

열아홉과 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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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열아홉 또는 십구다.

  열아홉은 모든 숫자가 그렇듯 열아홉 개를 가리키는 것 외에는 그 자체로는 별다른 뜻이 없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만 십구 세 이상부터 허용되는 성인콘텐츠를 가리키며 ‘십구금’이라고 불리는 등, 우스꽝스럽게 쓰이는 숫자이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서도 열아홉은 숫자외의 의미가 있다.



  나의 열아홉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대감으로 가득 찬 존재다.

  지금보다 열 살에서 다섯 살 정도 더 어린 내게 열아홉은 ‘동경’이었다. 학교를 가는 것이 너무나 싫었던 그 때, 매일 밤 빨리 열아홉이 되기를 바랐다. 한해가 지나면 그때마다 열아홉까지 남은 나이를 헤아렸다. 그러면 아직도 몇 년은 족히 남았다는 사실이 매번 나를 우울하게 만들곤 했다. 심지어 특별하게 우울했던 열여섯 살에는 열아홉까지 삼년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로 하루하루를 버텼던 기억도 있다. 그때가 되면 나는 지금보다 강한 마음을 가진 행복한 사람일 거라는 상상도 자주 했다. 열아홉 이미 지난 지금 떠올리려고 해도 잘 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안 하는 날이 없었다.



  그러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열아홉은 이제 ‘희망’이었다. 책임감에 불타는 담임선생님 덕분에 강제였던 야간자율학습과 길어진 수업시간은 한없이 지루하기만 했다. 더불어 생활환경이 전부 바뀌었기에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게다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의 나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 용기가 특출 나게 없는 사람이었다. 남이 말을 걸어주길 바라며 뒷자리에 얌전히 앉아있는 ‘소심한 고등학생’의 전형. 노력 아닌 노력과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며, 나는 매일 거기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열아홉의 어쩌면 행복할지도 모를 나날들을 꿈꾸며.



  그러다 마침내 맞이한 열아홉은 내 생각만큼 행복하지도 희망차지도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환상을 충족시키는 현실은 흔하지 않다. 불확실한 대학입시와 아무리 노력해도 떨어지는 성적으로 열아홉에 대한 나의 기억은 대다수가 불안에 관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열아홉이 끔찍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극구 부정할 것이다. 그 당시 열아홉의 세상만은 꿈처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마지막 십대’라는 단어, 그리고 막막한 심정은 나를 답 없는 내부에서, 외부의 세상으로 고개를 돌리게 했다. 그때야 비로소 고등학교 내내, ‘바쁘니까’ 혹은 ‘공부해야 하니까’ 같은 이유를 들며 신경 쓰지 않았던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내가 보는 것 마디마디에는 지금은 어렴풋이 느껴지는 십대, 또 열아홉의 감성이 그대로 묻어났다. 세상을 그렇게 자세히 살펴본 것은 또 처음이었다.



 갓 봄을 맞은 나무는 작고 여린 나뭇잎부터 차례차례 피어낸다.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이 차디찬 것에서 서늘한 것으로 변하면 공기는 숨을 쉬기 부드러운 온도가 된다. 여름에서 봄은 경계가 없다. 듬성듬성한 나뭇잎이 제 자리를 찾기 시작하면 돌연 찾아온다. 어느덧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나뭇잎을 나무가 한 품 가득 안으면 걷기만 해도 땀이 나는 날이 된다. 오전의 햇빛은 아직 설익은 느낌이 나지만 열두시의 햇빛은 충만하다. 천천히 져가는 네 시에서 여섯 시의 햇살은 여름만의 전유물로, 그때에만 나타나 사람을 따뜻하게 스치는 매력이 있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다섯 시의 바람이 점차 서늘해지는 때가 다시 돌아온다. 그러면 여름은 슬그머니 온 것처럼 또 홀연히 떠난다. 또 다시 마음부터 서늘하게 훑는 가을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있었기에, 툭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불안했던 그때에도 한없이 슬프지만은 않았다. 울적한 기분이 가득해도 뚜벅뚜벅 걸어서 집에 다다르면 기분은 한껏 나아졌기 때문이었다. 늘 조금이라도, 작은 것이라도 하나만 더 기억에 담으려고 바보처럼 주위를 둘러보면 걸었다. 눈에 닿는 모든 것들이 곧 사라질 것 마냥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지금의 나는 스무 살, 그리고 곧 스물한 살이 된다. 내 인생에 열아홉이 올 날은 이제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열아홉의 환상도 동경도 모두 꿈에 불과한 일이었지만, 그러면 어떠랴. 열아홉은 ‘추억’으로서 여전히 내 안에 건재하다. 그간 안겨주었던 온갖 것을 품에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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