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시된 신차들이 점차 커지면서 차급을 나누는 기준마저 무너지고 있다. 소형 중형 대형 등 익숙하게 차량 체급을 비교해오던 소비자는 헷갈린다. 소형과 중형 사이의 준중형, 중형과 대형 사이의 준대형 등 체급을 특정할 수 없는 용어들이 마케팅 수단으로 잇따라 등장해서다.
이달 출시된 르노삼성의 XM3가 대표적이다. 쿠페형 '소형 SUV'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소형이라는 XM3 전장은 4570mm에 이른다. 르노삼성은 XM3를 B세그먼트(소형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로 소개하는데, 동일하게 B세그먼트 소형 SUV에 해당하는 현대차 코나의 전장은 4165mm에 불과하다. 차량 길이가 40cm 이상 차이나지만 동급 소형 SUV로 분류되는 셈이다.
길이로만 따지면 XM3는 소형차보다 준중형, 중형에 더 가깝다.
현대차 준중형 SUV인 투싼의 전장은 4480mm로 XM3보다 짧고, 르노삼성의 중형 SUV QM6는 전장이 4675mm이기에 XM3와의 차이가 10cm 수준에 그친다.
실내공간의 기준이 되는 축간거리를 따지면 두 차의 크기는 역전된다. XM3의 축간거리는 2720mm이지만 QM6는 그보다 짧은 2705mm에 불과하다. 때문에 XM3는 개발 당시 QM6와 동일한 C세그먼트(준중형차) 차량으로 소개되기도했다.
차량 길이 40cm는 차급이 두 번 바뀔 차이다. 일례로 한국GM의 소형 SUV 쉐보레 트랙스의 전장은 4255mm이며 중형 SUV인 쉐보레 이쿼녹스의 전장은 4650mm로, 39.5cm 차이가 난다. 한국GM은 올해 출시한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전장 4410mm)를 준중형 SUV로 소개한다. 40cm는 같은 회사 라인업에서 준중형을 건너뛴 소형과 중형의 차이인 것이다.
차급을 세분화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는 탓에 이러한 혼란이 발생한다. 더군다나 제조사들이 차 크기 경쟁적으로 키우면서 차급 구분이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들이 차량을 실제보다 더 높은 등급으로 인식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한 등급 낮춰 타사 경쟁차량 대비 높은 상품성을 갖췄다고 소개하는 방식이다.
국내 자동차관리법에서는 차량을 △경차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 4종류로 분류한다. 준중형과 준대형 구분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마케팅 용어인 셈이다.
이 가운데 소형차는 전장·전폭·전고가모두4700·1700·2000mm 이내여야 하며 배기량은 1600cc 미만이어야 한다. 전장·전폭·전고 기준을 하나라도 초과하면 중형차 또는 대형차로 분류된다. 중형차와 대형차를 가르는 기준은 배기량 2000cc다.
XM3를 비롯해 트레일블레이저, 셀토스, 티볼리, 코나 등 소형 SUV는 전장과 전고 길이, 배기량 등의 소형차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만, 전폭 기준에서는 모두 벗어난다. 소형차 기준은 1700mm를 넘는 것은 물론, 대부분 전폭이 1800mm에 달하다보니 이제는 국내 기준이 의미를 잃었다.
최근들어 그 대안으로 부상한 차급 기준이 유럽식 세그먼트다. 크기에 따라 가장 작은 A세그먼트부터 가장 큰 F세그먼로 분류된다. 모닝, 스파크 같은 경차가 A세그먼트, 지금은 단종된 엑센트가 소형 B세그먼트에 해당한다. 준중형으로도 불리는 C세그먼트에는 아반떼와 K3, 벨로스터, SM3 등이 포함되며 중형 D세그먼트에는 SM5, 말리부, SM6, K5, 쏘나타 등이 속한다.
다만 차량들의 덩치가 지속해 커지면서 이러한 세그먼트 구분도 무용지물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의 아반떼는 1995년 1세대 모델의 전장이 4450mm였지만 지금은 4620mm로 커졌다. 쏘나타 역시 첫 출시 때 4578mm였던 길이가 현재는 4900mm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반떼는 C세그먼트이고 쏘나타는 D세그먼트에 속한다.
최근들어 세단과 SUV의 경계에 있는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이 등장하는가 하면 엔진과 미션이 없어 디자인이 자유로운 전기차의 상용화도 시작됐다. 이에 따라 기존 세그먼트 구분은 더욱 퇴색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