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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징 Aug 21. 2023

30대가 되었음을 비로소 인정하기

좋은 에세이를 읽고 배가 아파서 쓰는 글

30대가 되었다.      


사실 된 지 꽤 되었는데 이걸 자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여기서도 나의 느림이 빛을 발한 것 같다.      


20대엔 어쩌다 보니 항상 내가 가장 어린 위치에 있었다. ‘어리니까 괜찮아’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그래서 그 어림에 의존했다. 지나고 보니 나는 이제는 어리지도 않거니와, 심지어는 가장 나이가 많은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도 어림에 의존하는 나쁜 습관은 버리질 못해서, 여전히 나의 어리숙함을 내세울 때가 많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거다. 나는 이제 정말로 더는 어리지 않다는 걸.      


그걸 깨달았을 때 든 첫 생각은 억울함이다. 난 아직 성장하지 못했는데 날 두고 나이가 먼저 숫자를 채워버렸다. 난 여전히 느리고, 나 하나 간수하지 못하고, 심지어 자리를 잡지도 못했는데 세상은 이제 나에게 안정을 원한다. 나는 사실 20대…. 어쩌면 10대엔 끝냈어야 할 자아 성찰과 정체성 찾기를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책을 읽었다. 에세이. 무척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공감이 많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공감이 안 되는, 그야말로 책과 대화를 나누며 독서하는 경험을 했다. 어쩜 이렇게 나와 고민의 결이 같은지. 그런데도 어쩜 이렇게 성숙한 결론을 내렸는지. 하지만 이건 나랑 취향이 안 맞는데. 따위의 생각을 했다.      


30대와 꼭 맞는, 30대의 이야기 같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문득 이 작가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또래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몇 살이지? 검색해보니 나와 동갑이다. 좌절감을 느꼈다. 이 나이대엔 사실 저렇게 단단해져 있어야 하는 걸까? 물론, 작가에게 ‘당신은 단단한 사람이네요’하고 말한다면 코웃음을 칠 지도 모르겠다. 단단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에세이였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가가 몇 있다. 생각하는 결, 말하는 태도, 쓰는 글, 성숙한 생각까지 모든 게 정말 쏙 빼닮고 싶을 정도로 좋으면서도, 이상하게 반발심이 생겨 좋아한다는 걸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름을 죽 늘어놓으려고 했는데, 막상 그러자니 민망한 기분이 들어서 뒤로 숨겨본다. 조금 전 그들의 공통점을 깨달았는데, 모두 내 또래라는 점이다.      


아마 그들에게 들었던 반발심은 나는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 뭐 그런 거였나보다. 자각하고 나니 부끄럽다. 질투는 참 부끄러운 감정이다.


그들의 명성이 나날이 커지고 세상이 그들을 점점 더 많이 알아주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아주 부끄러운 마음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보고 들으며, 세상이 이 나이에 원하는 건 아마 저런 모양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숙하고, 하지만 여전히 어리숙한 자신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차근차근 더 배우려 들고,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가려 하는. 그리고 그 이야기를 차분한 어조로 써 내려가는 사람들.      


이것이 세상이 원하는 30대인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원하는 30대의 모습인 것 같다. 그 모습을 정말로 갖추게 된 그들이 무척 부럽다. 부럽다는 감정에서 멈추면 안 될 텐데.      


나는 빠릿빠릿하지 못한 사람이다. 아주 느리다. 느리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도 무척 오래 걸렸다. 나의 속도에 대해 깨닫고 나니 나의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때 그렇게 바보 같이 흔들렸구나. 그래서 그때 바보 같이 끌려다녔구나. 그래서 그때 그렇게 방황했구나. 하는 것들이다.      


우습게도 느리다는 깨달음 덕분에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모든 게 엉망이었던 20대가, 사실은 세상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넘어진 채 그대로 쓸려가고 있었던 거란 걸 이제야 깨닫는다. 온몸을 쓸고 지나간 아스팔트 자국과 생채기를 이제야 본다.      


느림을 자각하고 그것으로 내게 너그러워졌으니 이제 다음 스텝을 밟을 차례다. 멈춰있으면 안 된다. 가뜩이나 느리니까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내가 꿈꾸던 30대의 모습을 벌써 갖춰나간 이들이 대단하고, 부럽고, 야속하기까지 하지만, 늦더라도 그들이 삶을 걸어온 것처럼 나도 한 발 한 발 걸어가면 언젠가는 비슷한 모양새가 되지 않을까 하고. 억지로라도 나를 달래본다. 사실은 여태 뭘 한 거냐며 나를 마구 구박하고 싶지만, 그 못된 마음은 뒤로 하고.      


내 주변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무척 많다. 20대 초반부터, 심지어는 고등학생까지. (‘친구’라 칭하는 건 그저 누군가를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가깝고 오래 사귀며 대화를 많이 나누는 사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두서없이 만나다 보니 친구의 범위가 무척 넓어졌다) 나보다도 훨씬 어려서 이미 내가 지나온 산을 열심히 넘어오고 있는 그들을 보며 최근 정말 대단하다거나,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쟤들은 어떻게 저리 똑 부러지지? 나는 그때 내가 뭘 하는지도 몰랐는데.      


이미 안정된 30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른인 척 애써 허세를 떨며 내 본심을 가리고 있긴 한데, 여러모로 부끄럽다. 10대 20대 시절의 나는 30대가 되면 전부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30대가 되어보니 주변에 진짜 그런 어른들이 많던데. 날 보면 또 역시 나이만 가지고 사람 판단은 하는 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일단 그 어린 친구들에게 나는 ‘야, 30대 별거 없다. 날 봐라.’의 좋은 지침이 되어주곤 있다. 끝나가는 20대를 불안하게 여기던 친구들도 날 보며 ‘아. 그냥 똑같네.’ 하며 불안을 웃어넘길 수 있다고 하니 그건 제법 괜찮다. 철딱서니 없는 것을 내 나름의 무기로 삼아가며, 그들이 내 본질을 눈치채버리기 전에 얼른 성장해야 한다. 갑자기 마음이 급하다.      


40대가 되기 전엔 내가 상상하던 30대의 모습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져 있길 바란다. 이미 그 모습을 갖추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 내 또래의 대단한 사람들이 많은 건 다행이다. 그들이 내 지향점이 되어줄 거다. 


그래도 사실... 왜 저 사람들만 저렇게 대단하냐고 악을 쓰고 싶은, 배 아픈 마음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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