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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징 Aug 25. 2023

자기고백

작가. 나의 일을 하는 나에 대한 자기고백 


230817



글을 쓴다는 것은 심리상담과도 같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으로 서두를 연다. 이 말이 ‘글을 쓰고 나면 후련해진다.’ 혹은 ‘글을 쓰고 나면 고민에서 빠져나와 나만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와 같이 어느 책에선가 본 것 같은 멋진 이야기를 의미하는 거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다. 부끄럽단 이야기다. 머릿속에 떠오른 날것의 문장을 그대로 적어본다면, 조지게 부끄럽고 더럽게 쪽팔린다. 


남들에겐 하지도 못했던 고민과 고백을 어쨌든 털어놓기로 하고 돈까지 내가며 상담에 왔으니 모조리 쏟아내고 나오는 것처럼, 나도 일단 뭔가 쓰면 어디에 올리거나 보내버리기로 했으니 일단은 모조리 쓴다. 그리고 잔잔한 현타와 거센 창피함을 맞이한다. 난 상담받고 나오면 그러던데. 보통 안...그런가? 어쨌든, 그래도 현타를 걷어내고 나면 회피하던 문제를 직면했다는 일종의 안도라고 할 만한 것도 찾아오고, 새로운 다짐이랄까 뭐 그런 것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일단 쓰기로 했다. 


‘일’에 관해 쓰기로 해놓고 서두에 다채롭게 상관없는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나의 가장 큰 고민이 이놈의 일에 관한 문제이고, 가장 어디에 털어버리고 싶은 이야기도 바로 이 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에 관해 쓰고 나면 창피함과 현타가 몰려온다. 자기 일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감정이 창피함이라니 이 또한 창피할 일이다. 


창피한 이유가 뭔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직 안정되지 못했고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실은, ‘직업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무척 힘들다. 직업이 남들 눈엔 쓸데없이 거창해 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것이 창피함을 부추기는 데에 한몫한다. “웹 소설 작가입니다.” 아놔. 저 ‘작가’라는 단어가 주는 웅장함이 나는 싫다. 정작 나는 아직 작가로 자립했다기도 뭐한, 돈을 번다기에도 뭐한 작은 수익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소위 ‘못 나가는’ 작가이기 때문에. (‘망한’이라는 단어를 쓰려다가 너무 우울해져 그만두었다)


웹 소설 시장이 억대 수익을 낸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화려한 뉴스가 휘몰아치는 와중에 돈을 호주머니 단위로 버는 작가라니.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게 아니냐고 나 자신을 다독이기엔, 나는 벌써 세 작품이나 출간한 작가라는 것이 또한 문제다. 첫 번째 작품은 처음이라서, 두 번째 작품은 주어진 시간이 너무 없어서라는 변명으로 초라한 성적표를 외면했는데, 얼마 전 출간한 세 번째 작품에선 더는 댈 핑계가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직업에 관해, 그리고 앞으로의 내 삶에 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해보기로 했다. 직업이라면 어느 정도 밥벌이는 되어야 할 것인데, 내게는 이것을 직업으로 유지할 역량이 있긴 한 것인가? 그래서 자리를 잡을 수 있기는 한가? 자리 잡으려면 나는 어떤 노력을 더 해야 하나? 하는, 일단 나 자신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웹 소설 작가가 갖춰야 하는 역량이라. 과연 그게 뭘까? 당장 떠오르는 것이라면 ‘글을 잘 쓰는 능력’, ‘일정량을 매일 꾸준하게 쓰는 끈기와 성실함’,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자아낼 수 있는 상상력’, ‘날것의 반응과 매일의 평가에 쉽게 좌절하지 않는 강인함’ 정도가 있겠다. 


글을 잘 쓰는 능력. 이건 나 자신이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다른 사람의 눈을 빌어 평가해보기로 했는데, 그 결과 나는 어느 정도 ‘갖고 있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나저나 나는 글을 잘 쓴다는 말을 글로 써서 하려니 이 또한 여간 창피하고 움츠러드는 일이 아니다) 실패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면 가장 먼저 손 봐야 할 것은 글쓰기 능력이라 생각하고 수강한 글쓰기 강의만 다섯 개 정도 되는데, 그때마다 내 글에 대해 들은 평가는 ‘하산하시오’였다. 내가 너무 기초 강의만 들었던 건가 의심이 들기도 하는데, 어쨌든 다섯이나 말했다면 어느 정도는 쓰긴 한다는 이야기일 테니, 이 역량은 일단 있는 걸로 치고. 


두 번째 역량. 성실함. 이건 없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끈기? 없어. 사실 지금도 그냥 냅다 쓰는 걸 관두고 드러누워 버리고 싶은 걸 정말이지 간신히 참고 있는데, 이 와중에 목을 열여섯 번 정도 돌렸다. 그나마 웹 소설 작가는 하루에 최소한 5천자 씩은 매일 써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서 하루 습관을 어떻게든 뜯어고치려고 발악을 하는 중이다.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맞추고 운동을 하고 뽀모도로를 하고 등등. 


그 결과 간신히 5천 자씩은 쓰고 있다. 백스페이스바 포함. 실질적으로 채워나가는 글은 3천 자 정도 되려나. 사실, 이렇게 꾸준히 쓰지 못하는 것이 내가 나를 ‘웹 소설 작가’라고 설명하기 창피해하는 가장 큰 이유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나의 불성실했던 하루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상상력. 나는 INFP이다. 매일 수십 가지의 다른 망상을 해댄다. 개중엔 이야기로 풀어내겠답시고 꽤 구체적으로 이어나가다가 마침내 적어놓기까지 한 망상도 꽤 된다. 그럼, 이건 있음. 


쉽게 좌절하지 않는 강인함. 없다. 당장 내가 나를 작가라고 명명하기도 부끄러워하는데 멘탈이 강할 리가 없다. 생각보다 많이 달리지 않는 후기, 오르지 않는 조회 수를 보며 쉽게 절망하고, 무너진다. 첫 번째 글을 출간한 뒤엔 아예 몇 달을 우울로 앓아누워 한 글자도 쓰지 못하기도 했었다. 성실함은 어떻게 쥐어짜서라도 키워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놈의 멘탈은 어떻게 키우는지 모르겠다. 


네 가지의 역량 중 가지고 있는 것이 절반. 이것만 가지고 내가 이 일을 계속 해나가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것도 내가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하고, 사실은 현실을 전혀 못 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도 생기고. 나머지 역량을 더 키워보려고 아등바등 노력은 하고 있지만, 이래 가지곤 언제쯤 자리를 잡을는지. 불안함만 가중된다. 



여기까지 자기 고백을 하고 나니 또 부끄러워서 당장 이 모든 걸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앞선다. 꾸역꾸역 참아가며 채워나가고 있는데, 사실 자기검열 센서가 몇 번이고 발동해서 벌써 몇 번을 썼다 지웠다 하며 이마를 쳐댔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 현타를 견디지 못해서 심리상담도 다니다 말았던 것 같은데. 


그러나 창피함을 무릅쓰고 내가 나의 일에 관해 이야기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어쨌든 결국 나는 이 ‘작가’라는 웅장한 단어로 나를 자신 있게 설명하고 싶기 때문이고, 그걸 위해 어떻게든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일이 꽤 재미있는 소재여서 할 수 있는 말이 꽤 많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글쓰기와 마감의 고통에 관해 쓴 글이야 많지만, 웹 소설 작가는 아직 사람들에게 생소한 직업인지 심지어는 글쓰기 강의 선생님들마저도 신기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나는 야설을 쓴다고? 이런 얘기 어디서 듣기 쉽지 않다고? 


원래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가 남의 흑역사다. 쪽팔린 일은 숨기는 것보다 아예 입 밖으로 배설해버리고 깔깔 웃는 것이 잊는 데엔 더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일단은 창피해 죽겠지만 내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글쓰기는 심리상담 같다고 그럴싸하게 꺼내놓은 말처럼, 이렇게 떠들다 보면 나 스스로 나를 돌아보고 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뭔가의 방도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좀 있다. 이 시작의 끝이 ‘이런 글을 썼던 때도 있었는데, 참 그립군요.’하고 인자하게 웃으며 내 이름이 적힌 베스트셀러 책으로 부채질하는 모습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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