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나라#4 - 밥 내음

by 새로나무

어릴 적 밥 짓는 냄새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왔다. 어릴적 어머님께서 연탄아궁이에 밥을 지으셨을 때를 떠올려본다. 무쇠솥과 구수한 누룽지 냄새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연탄가스와 씨름하셨던 어머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그러다가 보온밥솥이 등장한다. 취사와 보온이라는 단순한 기능이 장착된 전기밥솥에서 솔솔 흘러나오는 밥 냄새도 구수했다. 지금은 전기 압력솥으로 지어낸 밥을 먹는다. 매 끼니마다의 구체적인 밥 냄새를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희미한 밥 내음의 기억 속에 시간은 흘러갔다.


자가격리가 시작되고부터 집안의 모든 사물이 관찰대상이 되었다. 밥솥과 나와의 물리적인 거리가 매우 가까워지면서 밥 짓는 냄새를 제대로 맡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현미와 백미, 보리쌀 정도를 섞어서 지어먹었다. 격리 기간 중 가장 큰 관심사는 이 밥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을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었다. 특히 콩의 역할에 주목했다. 워낙 두부를 좋아해서 콩이 좋은 식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콩의 종류가 대단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격리기간 중 제대로 된 우리들만의 축제를 시작했다. 정월대보름을 전후로 시장에서 구매했던 콩 보따리를 찾고, 이어서 렌틸콩과 병아리콩은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여기에 항산화에 도움이 되는 귀리와 수수를 섞어서 밥을 짓는다. 밥 짓는 냄새가 이렇게 아름다운 구수함을 만들어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뜸이 들어가며 온 집안에 밥 내음이 은은하게 퍼진다. 온몸을 감싸는 밥 내음은 향기롭기도 하지만, 곧 내 입과 내 몸을 즐겁게 해 줄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입안에서 터지는 질감이 뭐라 말할 수 없이 맛있어서 김만으로도 한 끼를 거뜬히 먹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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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대지가 생성되고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이 있었으리라. 그리고 맨 처음 탄생한 식물의 새싹이 생명의 방울을 지구 위에서 만들어낸 이래 수많은 식물의 생명력들이 대지위에서 명멸해왔으리라. 누군가는 한 알의 밀알을 비유하고 누군가는 쌀 한 톨에 비유하기도 하고 그렇게 농경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어마어마한 세월을 거쳐 수많은 사람들이 곡식과 더불어 명멸했다. 우리도 그 과정에 서있다. 그 곡식의 냄새에는 이런 원초적인 질감들이 숨어있는 듯하다.


밥 안에서 평화로운 안식을 얻고 밥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밥은 우리가 얼마든지 새롭게 디자인하고 우리 몸에 먹기 좋은 것들로 재구성할 수 있음을 격리기간 중에 깨달았다. 나의 생명의 근원이 살아 숨 쉬는 밥 냄새 속에서 아득하게 2주간의 시간이 흐르고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그 밥 냄새는 내가 살아있는 이유를 일깨우고 있다. 또한 그 밥 냄새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에 대한 감사함을 또한 떠올린다. 이 아름다운 생명공동체가 가능하도록 그리고 깨닫도록 밥 내음은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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