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여자 친구가 코로나 검사를 한다는 통보를 받고 곧바로 검사를 받았다.
첫 검사에서 미결 통보를 받았다.
양성과 음성의 경계 사이에 있어서 확정할 수 없다고 했다.
아니길 빌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정밀 검사를 받았다.
다음날 오전 8시에 양성 판정을 받았다.
2003년 초 아들이 초등학교 다니던 때, 중증 급성 호흡 증후군인 사스-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감염자도 많이 발생했고 사망자도 많아서(2002년 11월에서 2003년 7월까지 유행하여 8,096명의 감염자가 발생하고 774명이 사망) 당황했었다. 보건당국의 지침에 따라 5일 동안 안방에 격리하고 화장실을 따로 쓰게 하고 먹을 것도 문틈으로 전달했다. 그 당시에 아이가 겪었을 심리적인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냥 그 정도로 넘어갔다.
검사를 받기 직전 아들이 당시의 트라우마와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했다는 섭섭함이 감정적 반응으로 드러났고 큰 딸은 지금 막 인턴에 합격하고 출근을 앞두고 있는 긴장상태라서 감정적으로 격돌하게 되었다. 가장으로서 나는 이런 일이 있을수록 감정을 통제하고 객관적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들이 검사를 받으면서 서로 감정적으로 절제하는 분위기로 들어갔고 가족들 모두 상황을 빠르게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작년 7월경 보디빌딩을 하는 아들은 코로나로 헬스장 출입이 통제되자 시골집에 홈트레이닝 장비를 마련하고 유튜브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혼자 생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두 달만에 철수했다. 이때 나에게 안방을 홈트레이닝 공간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나는 워낙 거실에서 생활해오던 터라 별 다른 생각 없이 허락했다. 그런데 막상 설치하고 보니, 잘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건넌방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물론 화장실도 따로 사용했다.
아들은 확진 판정을 받고 생활치료센터로 이동했다. 매일 두 번씩 산소포화도와 체온 등을 측정한 결과를 전화로 확인했다. 처음에는 열이 있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으나, 별다른 증상 없이 10일의 시간이 지나갔다. 퇴소할 때는 가져갔던 옷과 신발을 모두 소각했다고 한다. 입고 나올 옷은 다른 경로로 보냈다. 자가격리 해제를 3일이나 남겨둔 시점에서 아들이 먼저 퇴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너무나 다행스러운 마음에 약간은 울컥했다. 퇴소한 아들에게 남은 가족들이 격리되어 쌓아 두었던 음식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을 부탁했다. 그리고 밖으로 이동이 자유스러우니 필요한 물건들을 부탁하기도 했다.
자가 격리되어있는 동안 혹시 모를 코로나 바이러스의 잠복에 대한 우려로 2주 동안 스트레스를 받았다. 3월 31일 검사를 받고 4월 1일 음성 판정을 받고 나니 후련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갑상선 암 수술을 받은 아내가 기관지염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상대적으로 취약하기에 많이 걱정을 했었는데 그 걱정을 덜게 되니 세상을 새로 사는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아들이 홈트레이닝 공간을 만들고 건넌방과 화장실을 따로 사용하고 운동식 식사를 했기에 나머지 가족들이 모두 음성 판정을 받게 되었다.
나는 자가격리 기간을 통해 일상의 삶과 가족 그리고 집에 대해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가족 간의 사랑도 조금 아주 조금 깊고 넓어졌다.
각자가 가진 감성과 관심사에 대해 재발견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수준도 높아졌다.
지나온 삶과 현재의 삶,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전반적으로 성찰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부족한 점들을 더 살펴보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런 말이 적당할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한편,
무사히 건강을 회복한 아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아들 역시 반전의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확진되기 전 전담 트레이너로 2주간 생활하던 헬스장에서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만 해도
씩씩거리고 있는 아들을 토닥이며 이럴수록 냉정하게 헬스장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설득하고 좋게 헤어지라고 권유했다.
곧이어 아들을 눈여겨보던 선배가 광화문 근처에서 개업한 헬스장에서 PT를 포함한 트레이너 활동을 어떤 조건도 없이 그냥 사용하도록 제안이 들어왔다. 안 좋은 일과 좋은 일의 경계가 어디인지 가끔은 가늠하지 않고 사는 것이 더욱 현명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된 첫 출발점인
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