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업 프로그램
사업을 하면서 대학에서 창업 강의를 하고 있는 후배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창업강좌를 진행하고 있는데 중간발표 참관을 요청받았다. 대학에 근무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학생들이 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는 상황 같이 만들고 같이 토론하는 것이다. 2008년부터 <Campus CEO>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기획했던 의도 이상으로 학생들은 처음 수업을 들을 때의 모습과 기말 발표할 때의 모습이 달랐고 멋진 모습을 보여줘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었다. 그 뒤로 내가 대학에서 일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학생들이 사회를 향해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뒷받침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과거 학생들이 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 속에는 나도 참여했었다. 무언가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저항하는 방식이었다면, 요즘은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대학생들의 에너지, 아이디어, 열정, 도전과 혁신을 나는 존중한다. 기존의 것을 혁신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그 정신을 존중한다. 그들의 에너지 속에 우리가 살게 될 미래의 밝은 모습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판만 깔아준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대학은 주인이 되겠다고 설치기보다는 학생들을 위한 장을 마련해주고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거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2. 연세 신촌 캠퍼스의 추억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는 낯설지 않은 곳이다. 1987년 4월 어느 날 야구시합을 했었던 운동장과 술 한잔 마셨던 잔디밭, 1988년 통일에 관해 전국의 학생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일 때 최루탄 연기 속에 밤을 새웠던 강의실, 1990년 아내와 <노래를 찾는 사람들> 공연을 보았고, 1995년 가수 김광석 님이 돌아가시고 한 달 뒤 추모공연이 열리던 백주년기념관, 1997년 사회인 야구클럽 첫 시합 장소에서 4타수 4안타(2루타 4개)를 날리면서 즐거워했던 추억이 지금 여기서 도 살아 숨 쉬는 것만 같다.
대학원생 19명이 다섯 팀을 만들었다. 발표하는 태도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 약간 투박했지만, 순수한 열정이 가득 담겨있어서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세 시간 동안 열심히 듣고 질의 또는 조언을 드리기 위해 화장실도 겨우 한 번 다녀왔을 정도였다. 발표자료는 대학원생들답게 다양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기초적인 수준에서 제시했는데 두 팀 정도는 완성도가 높았다.
@3. 애완동물 구독 서비스팀
첫 번째 팀은 애완동물 구독 서비스라는 아이템을 가지고 나왔다. 애완동물 시장에 대한 다양한 분석자료를 보니 그 시장규모가 대단할 뿐 아니라 성장성도 높다. 처음에는 애완동물을 단기간 같이 지내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오해했다. 막내딸이 애완동물 키우자고 10년 전부터 졸랐기 때문에... 그러면 잠깐 몇 달 동인이라도 키워볼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아니다. 아무리 애완동물이고 말을 하지 못하는 짐승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서. 애완동물 관련된 시장에서의 사업 아이템들은 차고 넘쳐, 레드오션 시장이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치고 나갈 포인트를 발견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애완동물 먹거리를 비롯한 다양한 것들을 취향 분석해서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차별화 포인트를 좀 더 부각하고, 데이터 분석 방법 및 데이터 축적과 활용에 대해 보완한다면 기말에는 더 멋진 발표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4. 패선 큐레이션 서비스팀
퍼스널 컬러를 제공하고 패션 큐레이션도 지원하는 오픈 SW를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색깔에 관한 취향과 패션에 관한 취향은 매우 다양하다. 고객들의 선호도와 취향을 어떻게 분석하고 축적시키고 맞춤형으로 서비스할 것인가가 관건인데 문제의 발견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 프로세스가 일목요연하다. 학부 학생들과는 접근방식이 달라 매우 흥미로웠다. 오프라인에 있는 제조 업체들의 생산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플랫폼으로 보였다. 나는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로 색깔이 다양한 옷을 선호한다. 특히 원색을 선호한다.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겨자색, 국방색, 노란색의 바지를 입고 집을 나서면 나서는 순간부터 상쾌하고 뭔가 대단한 힘을 얻은듯하다. 그래서 이 팀의 발표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색깔에 민감한 세대와 계층을 잘 파고든다면 재미있을 아이템이다. 제조와 유통을 담당하는 플레이어들과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만든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5. 배달료 혁신팀
세 번째 팀은 가장 첨예한 문제를 들고 나왔다. 배달시장이다. 과도한 배달료를 넘어서서 폭력적인 배달료를 플랫폼 기업들이 제시하고 소상공인과 고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음식을 주문한다. 비싼 배달료는 고객들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소상공인들에게도 엄청나게 부담된다. 배달노동자들끼리 동선이 많이 겹쳐 사회문제로 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엄청나게 자원이 중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평소 생각해서 그런지 더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시장에 대한 데이터 분석이 탁월하고 핵심 키워드를 뽑아내고, 공유 경제 모델을 도입하여 사회적인 기회비용을 최소화시키겠다는 가치 지향점을 분명히 한 것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 발표였다.
발표를 듣는 일은 그냥 듣는 행위가 아니라 발표에 참여하고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을 하고 마침내는 내가 학습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텍스트의 정보를 옮겨오는 일과는 완전히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배달 노동자들은 최적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게 하고, 고객들은 낮은 배달료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소상공인들은 현재보다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사회적 혁신이 필요한 지점에 지금 이 학생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존 플랫폼 기업들의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단계적으로 접근해볼 것을 주문했다.
@6. 피트니스 혁신팀
네 번째 아이템은 우리 아들과 관련 있는 아이템이다. 피트니스 업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트레이너의 전문성을 어떻게 인증할 수 있는가인데 이 팀은 자격증이 넘쳐나는 현실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체육관을 7개나 운영하는 대학원생이 직접 발표를 해서 현장감이 넘친다. 피트니스 관련 기업과 체육관은 많이 생기기도 하지만, 많이 소멸하기도 한다. 가격 경쟁도 치열하다.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표준화 방법에 관해 경력기술서 작성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검증된 자신의 역량을 기술할 수 있는 표준화된 형식이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7. 튜터링 대학팀
마지막 다섯 번째 팀은 내가 대학에서 지난 28년 동안 가져왔던 문제의식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 팀이어서 눈과 귀가 확 틔였다. 가능하다면 이 팀에 참여하고 싶을 정도였다. 대학생들이 혹은 대학원생들이 각자가 서로에 대해서 전공 영역이든 아니면 대학 생활 영역이든 서로 대학 생활을 잘할 수 있게 서로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서로 조언을 해주는 튜터링 플랫폼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전문성을 어떻게 인증할 수 있을 것인지와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로 진화시킬지가 관건이 된다.
세 시간 동안 이렇게 몰입해보긴 근래 드문 일이다. 엄청난 에너지를 받았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