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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20. 2024

새로운 음식을 발견하는 맛! 음식을 재발견하는 맛!


여섯 가지 반찬이 단출하게 입장했다. 각각의 생김새나 내용이 화려하지 않지만, 머금고 있는 맛과 내용은 알차 보인다. 먼저 양념을 씻어낸 묵은지에 손이 간다. 식감이 무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단단한 저항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이의 중용을 지키고 있어서 좋다. 잠시 살짝 눈을 감고 이 시큼하고 약간의 단맛까지 배어있는 배추 안으로 내 몸을 밀어 넣는다.. 일단 식감이 좋다. 오랜 시간 숙성된 시큼한 맛.
장의 미생물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이 맛의 끝에서는 담백한 감칠맛이 나를 맞아준다. 매력적이어서 계속 젓가락이 간다. 내용도 알차다. 배추도 있고 우거지도 있고 무도 있다. 무의 식감 역시 좋다. 무에는 소화를 촉진시키는 효소와 요소를 녹이는 효소, 과산화수소를 물과 산소로 분해하는 효소들이 있다. 먹으면 속이 편안해지는 무의 식감을 잘 살리고 있어서 안면몰수하고 김치 접시를 계속 채워달라고 부탁드렸다. 김치만으로도 가게의. 내공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반찬만으로 이 집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마침 오늘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는데, 18시간이 지나갔다.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의 여백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세발낙지를 살짝 데쳐서 양념에 묻혀 나왔다. 바알 간 색감이 마치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아 살짝 걱정이 되었다. 한 입 먹어보니, 매운맛은 밑바닥에 살짝 걸쳐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낙지의 맛을 살려주는 바알 간 양념에 매료된다. 문득 무안에서 들통에 들어있던 수십 마리의 낙지를 서로 한마디 말도 없이 생으로 먹던 추억이 밀려온다. 에너지 소모 없이 먹는 낙지의 또 다른 맛을 발견한다.


비주얼이 화려한 아구수육이 등장했다. 아구살과 껍질은 탱글탱글하고 식감은 부드럽고 쫄깃했다. 아구지리는 많이 먹어보았으나, 아구 수육은 자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신선한 재료를 다루는 기술을 선택하기보다는 양념으로 버무린 아귀찜을 사람들이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구 수육과 채소 무침과의 구도가 완벽하게 이분할 되어 있어서 그 자태가 화려하다. 곁들여서 먹으라는 매뉴얼로도 읽힌다. 콩나물과 파와 적당량의 미나리 무침은 은은한 맛을 선사한다. 아구 수육의 본래의 맛을 옆에서 잘 보필하고 있다. 수육을 제대로 먹기 위해 와사비장에 고추냉이를 하나 더 추가했다. 지난번 마쓰야마에서 된통 고추냉이에 당했지만, 그 기억은 주문하는 동안 망각되었다. 고추냉이는 날카롭지 않다. 시간차를 두고 진한 맛이 콧속으로 밀려들어와 아구살과 잘 어울린다. 채소무침의 식감과 수육의 식감이 입안에서 융합되는 동안 고추냉이가 주변을 안개처럼 감싸고 있다. 술을 부르는 맛이다.

오늘 음식 하나를 재발견했다. 그 주인공은 레몬. 함께 하신 교수님께서 장만하신 레몬즙. 레몬은 아주 매력적인 음식이다. 살균작용과 소화를 촉진시키는 역할 외에도 항산화 작용을 하는데, 무엇보다 상큼한 식감이 뛰어난 음식이다. 접할 기회가 많지 않고 잘 챙겨 먹지 않는 게 문제다. 그 레몬즙을 술에 양껏 타놓으셨다. 식감이 안 좋을 수 없다. 향긋한 레몬이 첨가된 술은 알코올기운을 날려버렸다. 완전 대박이다! 레몬을 마시는 건지 술을 마시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내일 잠에서 깨어났을 때 대미지가 없으리라는 상상을 하며 마셨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대미지가 줄어들었음을 느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어 진다. 음식을 재발견할 기회를 주셔서. 레몬의 위력에 대해 놀라면서 앞으로 레몬과 친해질 결심을 하게 되었다.


술을 부르는 음식과 술을 마시는 동안,  함께 쌓아왔던 이야기 탑들을 재점검하는 시간이 장성처럼 펼쳐진다. 그 깊고 넓은 안에서 웃음과 탄성이 끊이지 않는다.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뇌신경가소성을 높이기 위한 일중 하나가 이와 같은 소소한 교류의 순간이다. 소소한 교류의 순간에 등장하는 수많은 스토리들과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대화가 술과 버무려져서 지금 이 순간,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들었다. 뭐라 해야 될까? 농축된 시간을 쓰고 있는 느낌이다. 그냥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꼭꼭 밟고 다지면서 시간을 쓰는 느낌이다. 지나간 시간은 지나간 시간대로 소중하고, 지금 이 시간은 지금 이 시간대로 소중하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대로 소중하다.


그 소중한 시간을 감사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아늑하고 편안한 음식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장내 미생물들에게 좋은 먹이를 제공하는 음식은 다음날 속이 편안함에서 알 수 있다. 사람의 몸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 중 아픈 분들에게서 발견되는 두 가지 사실이 떠오른다. 비타민 D가 절대 부족하고,  다른 한편 장래미생물의 종이 다양하지 않다는 결과들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면서 골라 먹어야 될 필요를 실천하고 있던 터다. 오늘의 식단은 대부분 장내 미생물의 먹잇감이 되는 음식들이다.


결핍과 충족사이에서 발견하는 행복나무를 오늘도 한 그루 심었다.

발견과 재발견의 나무도 한 그루 추가한다.

마침내 나를 감싸 안아줄 숲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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