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내용을 규정한다.

by 최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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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들이 떠난 빈 강의장에 들어오면 아직 열기가 남아있다. 그들이 떠난 빈 공간에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지적 고민이 남아 다투고 있는 것 같다. 아름답고 근사한 상상이다.

불을 끄고 어두워진 강의장을 나올 때면, 강의장 저 끝에 혼자 남아있는 여성이 흐느끼고 있다. '왜 아직 남아계시냐'라고 물어보니, '다리가 없어서 집에 가지 못한다'라고 슬프게 말한다.

그녀는 노트북 모니터에 반사된 푸른빛을 머금은 얼굴로 날 쳐다보더니, 이내 두 손으로 빠르게 '다다다닥' 나에게 달려와서, 내 발 밑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는다.

나는 "어차피 내일도 교육이니 여기에 계셔도 된다"라고 말씀드린다. 앉은 자세로 학습에 몰입하다보면 눈과 귀를 제외한 다리와 같은 신체는 퇴화되었을지 모른다.

교육 안내를 위한 부착물을 살펴보았다.
노트북 로그인 정보와 와이파이 패스워드는 반드시 전달해야 할 내용이다. 그러나, 부착된 위치가 삐뚤거나 한쪽으로 치우쳐있었다.

고객은 대부분 부착물의 위치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안다. 아는 순간 완벽함은 무너진다.
무너진 완벽함은 결국 고객에게 전달된다.

모든 부착물을 제거했다. 폰트를 통일해서 다시 디자인하고, 다시 정중앙에 붙이도록 할 것이다.

형식은 내용을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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