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은 쓰레기"라고 말하던 내가 조중동 기자가 됐다

'이재명 재판 지연' 기사를 쓰던 날

by jingzhen

2023년 봄 대학친구 J와 성북천을 걷고 있었다. J는 법학적성시험 LEET를 준비 중이었고, 나는 학교 기자준비반에서 공부 중이었다.

그때 내가 J에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에 가장 가고 싶어. 근데 사람들은 조중동에 들어가야 '메이저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더라. 내가 한겨레나 경향에 간 게 '능력이 없어서'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게 싫어."


그때 J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 나는 한겨레나 경향 기자들이 능력이 없어서 거기 갔다고 생각 안 해. 대학생 때 운동권이셨던 우리 엄마아빠는 '조중동은 쓰레기'라고 생각하셔. 나도 그렇고. 비슷하게 김앤장도 쓰레기라고 생각해. 난 나중에 로스쿨을 졸업하고 내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김앤장엔 절대 안 갈 거야."


J의 말을 듣고 "그렇지, 조중동과 김앤장은 쓰레기지"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 난 조중동 중 한 곳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취업 준비 초기에는 조중동에 입사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채용 시험에서 각각 2번, 1번 떨어졌다.

백수로 산 지 1년이 넘어가니 일단 어디든 들어 가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중동에 입사 지원을 했고, 그중 한 곳에 붙었다. 입사 후에도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신입 기자 채용에 한 번씩 지원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조중동에 못 가면 능력 없는 사람 취급받을 걸 걱정하던 내가 한겨레와 경향에 갈 능력이 없어서 조중동에 왔다.


그 뒤로 J를 만나지 못했다. J에게 조중동 기자가 됐다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기자가 된 뒤에도 취업에 성공했다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 올해 초 용기를 내 J에게 먼저 '잘 지내?'라는 연락을 해놓고도 "응 잘 지내. 언니는 취업 잘했어?"라는 답장을 읽고 씹었다. "응. 나 지금 기자로 일하고 있어"라고 답했다가 "어느 회사에서 일해?"라는 질문을 받게 될 게 두려웠다.


대학생 때 한국비정규노동센터라는 인권단체에서 6개월 정도 청년활동가로 있었다. 취업하고 나면 센터를 찾아가 센터의 상임활동가들께 안부와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이들을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조중동에 들어간 이유를 이들에게 떨지 않고, 울지 않고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피하고 피하다 몇 달 전부터 센터에 회비를 내기 시작했다. 이번 주 월요일, 센터 활동가로부터 잘 지내냐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문자를 읽기를 피하고 답장하기를 미루다가 어제서야 답장을 보냈다.


2024년 12월 18일 부장이 사설 두 개를 내게 보냈다. 하나는 조선일보의 '이재명 대표의 안면몰수 재판 지연 작전'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중앙일보의 '탄핵 심리 재촉 이재명 대표, 본인 재판도 회피 말아야'였다. 두 사설을 참고해 '이재명이 재판을 고의로 미루고 있다'는 주제의 기사를 쓰라고 했다.

윤석열 씨가 계엄을 선포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재명 씨가 재판을 미뤘다는 칼럼을 이 시국에 또 다른 기사로 재생산해 퍼트려야 할 만큼 이재명 씨가 재판을 미룬 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기사를 쓸 생각을 하니 화가 났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아직 수습을 뗀 지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기자였고 부장에게 답장을 보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재명 재판 지연'이라는 키워드를 10대 일간지 누리집에서 다 검색해 봤다. 다른 언론사들도 이런 기사를 쓰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한겨레와 경향은 쓰지 않았고, 조중동과 '중도'를 표방하는 언론들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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