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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통해 내가 배운 것

아내의 무한 가사노동을 보며 더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by 손수제비

"주말에 건강검진 간다."


지난주에 아내가 말했다. 세 번에 걸쳐 같은 말을 반복한 것은 아이들 아침을 굶기지 말라는 요청이자 지시였다. 예전 같았으면 시리얼이나 빵 같은 간단한 음식을 준비했겠지만 오랜만에 아이들 밥을 직접 차리기로 했다.


40 평생 라면 외에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었지만 약 1년의 휴직 기간 동안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보았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아이들 아침메뉴로 선택한 것은 주먹밥이었다. 주먹밥은 많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고 비교적 난도가 낮은 축에 속한다. 무엇보다 실패의 가능성이 적다.


달걀을 스크램블 한 뒤 뜨거운 물에 데친 스팸을 구웠다. 양푼이 볼에 밥과 참기름, 마요네즈를 넣어 섞은 다음 아이들과 함께 주먹밥을 만들었다. 평소 엄마가 만들어준 밥을 먹기만 하다가 같이 해보자고 하니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열심히 만들었다.


함께 밥을 만드는 사진을 아내에게 보냈다. 아내는 잘하고 있다며 흐뭇해했다. 녀석들은 제 손맛이 깃든 밥을 곧잘 먹었다. 메뉴 선택과 식사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아내의 일갈은 남편의 점수가 '매우 우수'가 아닌 '노력 요함'임을 상기시켰다.


"설거지 거리가 이게 뭐고!"



살림 고수의 일상


집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친구나 지인의 집에 가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은 아주 깨끗하고 쾌적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도 1년 365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서.


가사노동에 집중하는 아내와는 달리 회사 업무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나는 아내의 하루 일과를 잘 알지 못한다.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일을 쳐내기에도 급급하기 때문이다. 사실 '관심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IE003410065_STD.jpg ▲티가 나지 않고 월급도 주지 않지만, 누군가는 끝이없는 가사노동을 해야 한다. ⓒ 픽사베이




새벽부터 일어나서 늦게까지 직장에서 일을 하는 대신 아이들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밀대로 바닥을 닦는 아내의 일은 큰 호사라고 생각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말리는 것은 건조기가 하니 조금만 부지런하면 시간이 남아돌 것 같았다. 그래서 용감하게도 이런 잔소리를 할 수 있었다.


"시간 날 때 자기계발을 하든 공부를 하든 뭐라도 좀 해라!"


가사노동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깨닫게 된 건 유아휴직을 하며 직접 아이들을 케어하면서였다. 물론 이때도 내가 100% 집안살림을 도맡아 한 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내가 집에 없던 시간 동안 최소한의 집안일을 하며 아이들을 돌본 것' 정도가 되겠다.


세 끼 식사를 매번 준비한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이들 등하교 준비 또한 알아서 되는 게 아니었다. 대략 2년 전부터 아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다시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집의 컨디션은 일을 하지 않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아내가 새삼 대단하다 느낄 때는 아이들이 아플 때다. 최근 딸아이가 A형 독감으로 열이 40도까지 오르며 밤잠을 설쳤다. 그러든 말든 뒤통수가 베개에 닿자마자 곯아떨어지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밤새 딸아이의 열을 재고 이마의 물수건을 갈아주며해열제를 먹였다. 만약 내가 혼자 아이들을 케어하는 상황이었다면 잘 해낼 수 있었을까?


1월 27일이 임시공휴일이 되면서 설연휴가 길어졌다. 모처럼의 연휴에 경기도에 있는 형이 본가가 있는 부산에 내려왔다. 6학년 쌍둥이 자매와 6살 아들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조합의 5인 가족의 방문에 부모님의 얼굴이 환했다. 사촌 언니들이 온다며 딸아이는 일주일 전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랜만에 보는 형과 형수, 조카들과 회포를 풀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아내의 '일상'은 지속되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4인 분량이 아닌 9인 분량의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 연휴 내내 야외 일정이 이어졌지만 매일 청소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오랜 염원이었던 독립에 성공한 황보름 작가는 책 <단순 생활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살림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시간이 드는 일이었다. 일시적인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이었다


공감한다. 만약 내가 작가라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하나 추가했을 것 같다.


'살림은 노동이라기보다는 삶 그 자체였다.'



최소한의 공감을 위한 노력


계획에 없던 9인분 식사를 아무 일 없다는 듯 뚝딱 해치우는 아내를 보며 문득 어머니를 생각한다. 40년이 넘도록 식탁을 책임진 어머니의 가사노동 총량을 수치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눈에 띄지 않고 보수도 없는 일을 평생 해 온 마음은 어떤 색일까.


연휴 첫날 본가에서 우리 가족과 형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했다. 아내가 그랬듯 엄마 역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두 아들의 가족, 부모님 2인을 포함한) 11인분의 밥을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 냈다. 엄마는 차린 게 없다고 말을 하지만, 각종 튀김과 나물, 잡채, 조기구이에 탕국까지 내 눈에는 '먹을 거 천지'였다. 이제 막 6살인 막내 조카도, 입이 짧은 딸아이도 밥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급식세대인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급식을 경험하지만, 나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어머니가 두 아들의 도시락을 싸던 그 시절은 지금처럼 인스턴트 음식이나 밀키트가 많지 않았고 전자레인지도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우리 집 냉장고에는 본가에서 공수해 온 음식이 많은데,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머니가 식구들 밥을 차리며 힘들어하거나 귀찮아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IE003410066_STD.jpg ▲올해 어머니가 해주신 밥. 수많은 엄마표 최애음식 중에서도 탕국은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 ⓒ손수제비



요즘은 좀 덜하지만 명절이 지나면 빠지지 않고 꼭 나오는 기사가 이혼에 관한 것이다. 차례상을 차리는 문제부터 시댁과 친정 중 어느 곳을 먼저 방문하느냐에 이르기까지 이유도 다양하다. 추석과 설날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쉬고 즐기는 것이 아닌, 고통과 노동의 연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본이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어 사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생각한다. 연애할 때의 설렘 따위는 결혼과 동시에 빛의 속도로 '순삭'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잉꼬부부는 무슨, 치고받고 싸우지만 않으면 다행이라는 것도.


평소 아내의 가사노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돕지도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라도 하고자 한다. 이번 연휴에도 장을 보거나 집청소를 하는 것을 도왔다. 돈이 아깝다며 외식을 자제하던 예전과는 달리, 연휴의 마지막 날은 쿨하게 마트에서 밥을 사 먹었다.


아마 앞으로도 아내에게 '매우 우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지금처럼 계속 노력할 것이다. 나로 가득한 삶에 반려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돋아날 때, 아내의 일상이 지금보다는 더 가벼워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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