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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듣고싶었던 말.

by 손수제비

※ 22년 2월 얼룩소에 쓴 글입니다.




1.


작년 말 크리스마스 직전 아버지께서 큰 수술 이후 아직까지 퇴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수술 이후 차도가 없고 더 악화되어, 대학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의사 말로는 마음에 여유를 갖고 기다리라고 하는걸 보니, 더 많은 기간이 소요될 것 같다. 집에 아픈사람이 있다는 건 참 씁쓸한 일이다. 마음 한 구석에 뭔가 무겁고 보이지 않는 짐들이 가득하다.


어머니는 작년 말부터 계속 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다. 평소에 몸도 안좋은데, 아버지 수술이후로 더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사흘전, 병원 안 간병인 누군가가 코로나 확진으로, 병원이 발칵 뒤집어졌고, 부모님도 동시에 확진이되었다. 아버지께서는 1인실에 있었는데, 기존에 입원한 상태라 해당 대학병원에서 케어가 가능하나, 어머니에게는 "집에 가라" 는 통보가 떨어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케어가 없으면 정말 힘들기때문에 어머니는 타이레놀만으로 버텼는데, 몸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어머니는 확진 진료를 위한 '입원' 을 요청했지만, 대학병원에서는 병실부족을 이유로, 불가하다고만 했다.


보건소. 담당병원(어머니는 60세 이상으로 집중관리 대상이다). 시 담당자 등 전화를 100통은 넘게 한 것 같다. 전담병원 의사 말로는 어머니의 증상이 약을 받아서 될 것이 아니고, 바로 입원을 해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병상이 부족하고, 현재 대기하고 있는 환자가 수백명이 넘어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 이라는 로보트처럼 반복적인 말만 들었다. 아프면 119에 전화하고 입원을 해야하는데,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었고, 이러다 사람이 죽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무기력함에 멍한 상태로 몇 시간을 있었을까. 어떻게 어떻게 해서 보건소로부터 대학병원에 입원이 가능하다고 연락을 받았다. 정신이 다시 들었다. 아, 어머니가 생수하고 새우깡하고 떡볶이 사오라했지. (아버지가 이와중에 떡볶이를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했다). 후딱 사들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2.


3월 중순쯤 새로운 집으로 이사 예정이다. 마눌님께서 인테리어를 하고싶다고 하셔서, 현재 도배/장판 등 공사 진행 중으로, 아내와 딸/아들은 처가댁에 있다. 큰방에 3명이 나란히 누우니, 방이 보기좋게 꽉 찼다. "니는 알아서 (나가서) 자라". 그래서 나는 본가에 혼자 있다.


본가/처가가 걸어서 3분거리라 나름 괜찮다. 퇴근 이후 오랫만에 개인정비도 가능하고. 근데 우풍이 심해서 너무 미친듯이 춥다. 보일라를 틀어도 싸한 냉기가 가시질않는다. 이렇게 추운 집에서 70평생을 사셨구나. 아파트에서 산지 10년도 되지 않았는데, 본가에 며칠 있어보니 너무나 춥고 불편했다. 내 부모님은 이런 곳에서 살고 계시는데, 우리만 아파트에서 공사하고, 좋게 사는게 썩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3.


난 2남중 차남이다. 형은 나보다 4살이 많은데, 장남이라 그런지 어릴 때부터 매우 빠릿빠릿했고, 부모님 걱정 시키는 일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가고, 결혼해서 경기도로 가서 독립하기 까지 부모님께 걱정 한 번 끼치치 않았다. 지금도 그렇고.


그에 비해 난 막내티가 좀 많이 난다. 어리바리 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어릴 때 어머니가 항상 한번 더 챙겼던 것 같다. 소소한 사고(!) 도 한 번씩 쳤다. 어느정도 나이를 먹었을 때도, 부모님과 형이 보기에는 나는 항상 막내였고, 뭔가 불안불안해 보이는 뭔가가 있었나 보다. 그냥 그런게 좀 느껴졌다.


아버지 입원 이후 나는 매주 병원에 간다. 대학병원으로 옮기신 뒤로는 면회도 안된다. 어머니가 병원 밖으로 나오지 못하기때문에, 필요한 물품들을 매주 갖다 주는식으로 방문하고 있다. 매일 아프지는 않은지, 특이사항은 없는지, 먹고싶은건 없는지, 아버지 염증수치나 혈압이나 체온은 정상인지, 병실은 춥지는 않은지. 엄마 목소리를 직접 듣고 확인하려고 노력한다. 카톡보다는 전화를 한다. 목소리만 들어도 어떤 상태인지 보이기 때문이다.


형은 멀리 있다보니 아무래도, 내가 부모님을 케어하는 형태로 하고 있다. 그래봤자, 필요한 것 갖다주는 것 정도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지만.


며칠전 부모님 확진 후, 어머니 몸이 안좋은데 입원이 안된다고 해서, 하루종일 전화기를 잡고 씨름한 뒤 극적으로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2인실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형에게 내가 농담으로 한 마디했다.


"이제 막내티를 좀 벗고, 가족구성원 4명중에서 1인분은 하는 것 같다" 고.


그 때 형이 이런말을 했다.


"너는 진작부터 우리 가족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픈 부모님에 대한 걱정과, 어머니가 입원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 까 했던 불안함들. 그와중에 터져만 가는 업무사고들. 아버지가 병원 밖으로 다시 나올 수는 있을까 하고 들었던 막연한 두려움들 때문이었을까. 형의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 겁나 힘든데, 힘들다고 말할 겨를 도 없이 미친 듯이 살고 있는데. 내가 나도 모르게 우리 가족에게 큰 기둥이 되고 있었구나.


4.


어리숙한 막내였지만, 부모님과 형 가운데서 우리 가족이 어떻게든 온전할 수 있도록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것. 내가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 난 어쩌면 그동안 이 말을 듣고 싶었던게 아닐까.



며칠 전 기사에 이런 글이 있었다. 서울시 교육청이 학교폭력 예방 차원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학생들이 부모님께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 1순위는 "정말 잘했어" 라고. 부모님께 듣고싶은 말 2위는 "항상 사랑한다" 였는데, 이러한 배경은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우리의 자녀들이 지쳐 있고, 심적으로 불안한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듣고 싶은 말. 소중한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 각자 이런 말들이 있을 것 같다. 즐거운 주말이 다 가기 전에, 우울한 월요일이 오기 전에,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표현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작은 말 몇 마디로,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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