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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를 만났다

아는 사람만 아는 직거래의 맛

by 손수제비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썩 즐기지 않는다. 시간이 들고 비용이 발생하며, 물건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에는 짜증과 자책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잘 구매하지 않는다. 먹을 것을 제외한다면.


의도하지 않게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게 되었다. 집에 아무것도 없다 보니 사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나에 1천 원 하는 물건이 많은 다이소에서 몇 만 원 치를 사서 끙끙대며 오피스텔로 갔다. 이후로도 시간만 나면 틈틈이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고 구매하는 일이 잦아졌다.


밥값이 비싸서 두 끼를 사 먹기가 부담스럽다. 한 그릇에 1만 원 정도 하니, 게을러서 아침은 패스한다고 해도 점심/저녁을 사 먹으면 하루 밥값만 2만 원이다. 그래서 1주일 내내 집에서 라면만 먹었더니 물리기 시작했다. 햇반을 사서 김치나 김과 함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집에 전자레인지가 없구나.


당근마켓 어플을 실행시켰다. 전자레인지라고 검색하니 20가지가 넘는 중고거래가 촤라락 나온다. 가격과 물건상태를 대충 보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업로드한 상대에게 톡을 보냈다.


"구매하고 싶은데요. 근데 진짜로 배송까지 해주시나요?" (직접 배송까지 해준다고 적혀있었다)


"해줍니다. 그런데 제가 밤에는 운전을 안 해서요."


밤 10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이라 혹시나 물어봤지만, 늦은 시간에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제가 가도 되는데. 어디쯤에 계세요?"


밤에 차를 빼서 갔다 오는 것이 귀찮기는 했지만 전자레인지를 빨리 구비해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그쪽으로 가려고 했다. 가격도 좀 깎아줄지도 모르고.


"내일 아침에 갖다 드리겠습니다. 8시 반에."


이른 아침에 오신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면 나는 사무실에 앉아있을 터였다.


"8시 전에 출근합니다."


보통 이 정도 되면 거래가 파투 나거나 시간 약속을 다시 잡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톡이 왔다.


"출발하면서 연락할게요."


밤에 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말에 나이가 조금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는데, 잠시 후 어머니 뻘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차를 끌고 오셨다. 내가 들어도 무거운 전자레인지를 끙끙 들어서 차에 싣고 늦은 밤에 왔을 생각을 하니 무안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어두운 밤이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전자레인지를 앞에 두고 몇 번이나 확인을 해보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웃으며 말했다.


"멀쩡하겠죠 뭐."


계좌이체를 하기 위해 계좌번호를 물으니 "당근페이가 편한데.."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젊은 사람도 모바일 결제를 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당근페이라니..! 계산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은행과 계좌를 확인한 뒤 입금을 해드렸다.


그러고 보니 그분의 매너온도는 무려 '99도'였다. 재거래 희망률 99%, 응답률 또한 100% 였다. 현재 판매 중인 상품은 무려 200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배송을 해주는 A급 서비스까지.


"감사합니다. 잘 사용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라는 따뜻한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아직 버튼을 눌러보지도 않았지만, 편의점에서 막 사온 삼각김밥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것처럼 내 마음도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몇 가지 필요한 물건이 더 있어 수시로 당근을 살펴보는 중이다. 다음번에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물건들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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