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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여, 시집을 펼쳐라!

마음 건강을 위해 시 읽는 삶을 추천합니다

by 손수제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해신의 책 <당신으로 충분하다>는 30대 여성 4명과 저자의 6주간 심리상담 과정을 담고 있다. 상담사로서 저자의 역할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참석자들의 말을 경청하며 공감하는 것. 참석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있는지,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것.


실제로 마음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 정신적인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나아지는 것을 본다. 하지만 내 속에 뭐가 있는지, 내가 지금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알고 있더라도 누군가에게 말을 하기 힘들거나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면, 이를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


안 힘든 사람이 있을까. 갓난아기도, 학생도, 청장년층도,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정이라는 게 있다. 40대 가장으로서 말하자면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사람들은 부모이지 않을까. 자녀들을 돌보고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돈을 벌어야 하고, 아이들을 훈육하며, 그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바르게 키워내는 것. 고작 이 한 문장을 지키기 위해서 부모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지옥 같은 자본주의 경쟁시스템에서 경쟁하며 살아남아야 하고, 아이들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한다.


그래서 모든 부모는 아프다. 아니, 아파도 아프지 못한다. 가정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있는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자신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 돈을 벌고 자녀를 양육하고 노후를 준비하며 예상치 못한 수많은 상황에 대비하면서 '내 마음' 따위를 돌볼 시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IE003546231_STD.jpg 모든 부모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삶을 산다 ⓒ손수제비


누군가와 안부를 주고받는 것을 좋아한다. 팍팍하고 바쁜 가운데 한가롭게 안부를 묻는 것이 일상적이지 않아 슬프지만, 그럼에도 가뭄에 콩 나듯, 아무런 목적 없이 순수하게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는 한다. 누군가의 안부 인사에 답하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잠깐 멈춰 서서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답을 할 수 있으니까.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는지. 신경 쓰이거나 걱정되는 일은 없는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군가와 안부를 나누기에는 삶은 너무 바쁘다.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래서 일상의 안부를 묻는 질문에 일상적이지 않은 답변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내 마음을 스스로 돌아볼 수는 없을까. 내 마음의 안부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 들여다보는 현실이 비참하고 슬픈 것은 나뿐인가.


방법이 있다. 실제로 해보니 효과도 있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힘들지 모른다. 그래도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니, 속는 셈 치고 한번 도전해 보기를 바란다.


부모들이여, 시집을 펼쳐라!


IE003546233_STD.jpg 최근에 읽은 안희연 시인의 시집. ⓒ 문학동네


최근 시간을 내어 시집을 읽는다. 시인은 누구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들은 광대한 지구를 단 몇 줄의 문장으로 표현한다. 시인의 마음과 시선이라는 렌즈를 통해 비치는 세상이 작은 시집 한 권에 무수히 많이 들어있다.


분주하고 팍팍한 내 삶도 시인의 시선에서 보면 새로운 삶이 되기도 한다. 정제되고 압축된, 생명옷을 입은 시인의 언어를 통해 탄생한 시를 읽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말랑말랑해진다. 마치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처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힘을 빼야 한다. 바쁘거나 힘이 들어간 상황에서는 나의 마음이 어떠한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분주함을 내려놓은 상태, 근심 걱정 고통으로 가득 찬 상태가 아닌 아닌 말랑말랑한 마음의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시를 읽을 필요가 있다. 시를 쓰거나 시를 읽는 것은 이 '말랑말랑한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는 먹을 것을 제공해 즉각적으로 배고픔을 달래줄 수 없고 생활의 편의를 제공하는 데에도 쓸모없지만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줄 수 있다. 당신 지금 아프군요. 당신은 성실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어요. 이곳은 모든 것을 얼리는 냉동창고이니 이곳에서 잠들면 안 돼요. 당신 입술이 파래지고 있어요.
-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난다, 2023, 안희연)


시가 어려운 그대에게


문제가 있다. 시는 마음의 건강에 유익하지만, 시를 읽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시는 문학의 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난해함'이라는 무시무시한 가시를 숨기고 있다. 성인이 되어 시집을 구매하거나 시를 읽는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내가 호기롭게(?) 시집을 구매하고 느꼈던 당혹스럽고 난처했던 그 감정을.


"아니, 도대체 이게 뭔 소리야!"


갓난아기는 엄마의 젖을 먹는다. 젖과 이유식의 과정을 건너뛰고 아이에게 최고급 스테이크를 먹일 수는 없다. 어렵기로 따지자면 시의 레벨은 최고난도에 속한다. 섣불리 덤벼들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방법은 있다. 만약 시집을 사고 싶다면 충분히 경험한 다음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도서관이나 서점에는 많은 시집이 있다. 누구나 아는 유명한 시집도 좋고 낯선 시집도 좋다. 시인마다 정서나 문체가 제각각이기에, 나에게 익숙하고 내가 읽기 편한 것으로 고르면 된다. 시집은 보통 두껍지 않고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기에, 몇 편이라도 먼저 읽은 다음 나에게 잘 맞는 시집을 구매해야 실패(?)할 확률이 줄어든다.


시가 부담스럽다면, 시의 세계로 안내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책들을 읽는 게 도움이 된다. 나민애 교수의 <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나민애의 다시 만난 국어> (페이지2북스, 2024), 정재찬 교수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휴머니스트, 2020) 같은 책은 부담 없이 읽기 좋고 자연스럽게 좋은 시를 접할 수 있는 책들이다.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졌던 시를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해설을 통해 음미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에 대해 친근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그들에게 시의 깊은 맛을 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레시피가 필요했습니다. 가요와 가곡, 그림과 사진, 영화와 광고 등 다양한 재료와 스토리에 시를 버무린 일종의 퓨전 음식이라 할까. 그것을 어떤 날은 살짝 추억에 담갔다가 또 어느 날은 역사와 철학에 곁들여 음미해 보도록 하는 거였습니다.
- <시를 잊은 그대에게> 휴머니스트, 2020, 정재찬


시인들의 산문을 읽는 것도 좋다. '몸과 마음의 완벽한 일원론적 합체를 이룬 변종이라는, 그래서 마음에 관해서는 초능력에 가까운 신기를 보인다'는 김소연 시인은 책 <마음사전>(마음산책, 2008)을 통해 우리 마음과 관련된 단어들을 '국어사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기록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태도 자체가 다른 시인의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내면의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삶은 여전히 바쁘고 팍팍하다. 갈수록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우리 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건강해야 내가 속한 가정, 직장, 공동체가 건강할 수 있으니까. 힘이 들고 낯설 수 있지만, 건강한 마음을 갖기 위해 시집 한 편 읽는 것은 어떨까. 마침 책 읽기 좋은 가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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