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강원도 여행을 다녀와서

by 손수제비

여행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소득의 대부분을 여행을 위해 기꺼이 쓰지만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물론 그들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누구나 소중한 것을 위해 돈을 쓰는 법이니까. 저마다 사는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니까.


환경, 가치관 같은 진부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내가 여행을 즐기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런치플레이션으로 매일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가장에게 사실 여행은 사치다.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4인 가족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왕복 교통비와 식대만 10만 원은 거뜬히 넘는다. 입장료나 체험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매번 새로운 장소를 찾는 것도 일이다. 안타깝게도 '운전하는 아빠의 수고로움' 따위는 비용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여행은 불편하다.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지새울 때 챙길 것이 많아진다. 매 끼니를 사 먹을 수도 없으니 적당한 먹을거리도 준비해야 한다. 안락한 집이 아닌 낯설고 생소한 곳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잠을 푹 자지 못한다. 즐거운 여행보다는 피곤한 여행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아이들의 마음 밭에 짜증의 씨앗이 싹트는 순간, 즐거워야 할 여행은 힘들고 험난한 퀘스트가 된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짜증을 잠재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남은 시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여행에 집중하지 못한다. 결국 여행 중에 내가 가장 자주 하는 행동은 '(아이들에게) 짜증 내기, (아내를) 원망하기'가 된다.


눈 내리는 태백을 향해


1월 초가 9살 둘째의 생일이었다. 때마침 아이들 방학이기도 했다. 아내가 눈이 보고 싶다고 했다. 부산에는 눈이 오지 않으니 강원도 여행을 가잔다. 차를 끌고 경북 영주로 가서 하루를 머무른 뒤,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강원도로 향하는 코스였다.


감히(!) 따지지는 못했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기차를 타는 관광이라고는 하지만 부산에서 영주까지만 해도 3시간에 가까운 거리다. 이튿날 영주역에서 태백으로 가는 열차는 무려 '오전 8시 출발'이었다. 늦어도 7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토요일 아침인데 7시 기상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목적지는 강원도 태백에 있는 '철암'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과거 탄광 산업의 중심지로, 특유의 향수와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시골의 한적함과 여유로움을 나는 좋아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강원도까지 와서 다이소와 인형 뽑기를 찾는 녀석들에게 보이는 것이라곤 산과 나무뿐인 탄광촌이 과연 흥미로울까? 부산과는 격이 다른 강추위를 잘 버틸 수 있을까? 영주역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오후 5시가 넘어야 탈 수 있다는데 지겹다고 징징대지는 않을까?


유일한 희망은 눈이었다. 아름다운 겨울왕국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비록 핸드폰과 인형 뽑기가 없어도 까짓 거 몇 시간 정도는 신나게 뛰어놀 수 있지 않을까. 제미나이(구글 AI)도 아이들과의 여행을 우려하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철암 여행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새하얀 눈과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될 거라고.


여행 당일 하늘은 더없이 화창했다. 우리 가족을 맞이하는 것은 소복소복 쌓인 눈이 아닌 끝없이 펼쳐진 산과 나무였다.



IE003574727_STD.jpg 기차를 타고 바라본 풍경.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여유롭고 좋았다. ⓒ손수제비


기차 이동에 포커싱 된 여행이었기에 효율적인 이동이 불가능했다. 내가 가고 싶던 영주 부석사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강원도 태백까지 와서 '탄광촌'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건 조금 미련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편도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열차 여행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가만히 기차에 앉아 보내는 시간은 나름 운치 있었다. 아이들도 멍 때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어 보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모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철암역 근처에 택시가 많아 이동이 편리할 것이라는 제미나이의 말과는 달리, 철암역 인근에는 택시가 하나도 없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지나가는 택시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멀리 부산에서 와서 탄광촌과 고생대자연사박물관만 들렀다 간다는 우리 가족을 보며 택시 기사는 혀를 내둘렀다. 태백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데.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한 두 곳만 다녀갈 수 있냐고. 강원도 산골까지 온 게 아깝지도 않냐고.


우리 가족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듯 기사 아저씨는 말을 이어갔다. 강원도에 지역 관광을 전문으로 하는 택시 기사님이 10명 있는데, 본인도 그중 한 명이란다. 당신은 오늘 일이 있어서 집으로 가야 하지만, 남은 9명의 기사님은 운행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고. 몇만 원만 투자하면 강원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을 거라고. 아저씨의 말에 진심과 열정이 더해질수록,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늦은 오후 영주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야 했기에 강원도 택시투어는 못 했지만, 우리 식구를 향한 기사 아저씨의 말에서 강원도의 정이 느껴졌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김소연 시인의 책이 떠올랐다.


복잡한 네트워크 안에서 맺어진,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관계 맺기가 아니라 그냥 지나칠 사람에게서 그냥 지나칠 정도의 따뜻함을 살포시 얹어보는 수수한 마주침. 통성명 없이도, 전화번호를 교환하지 않은 채로도, 누군가와 마주하는 일. 목소리는 조금 퉁명스러워도 표정에는 구수함이 묻어 있다거나, 이마에 흐른 땀을 옷소매로 훔쳐내면서 인심을 쓰며 씨익 웃는다거나. 그렇게 실재하는 사람을 마주치는 일. 돌아서는 뒷모습에도 대고 기약 없이 또 보자고 괜히 한마디를 얹어보는 일. 나와 유관할 리 없는 이에게서 얻는 수수하고 별것 없는 다정함. 내가 요즘 가장 간절하게 되찾고 싶은 감각이다.
<그 좋았던 시간에, 달, 2020, 김소연>


사람들은 왜 떠날까.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나. 그들은 여행을 위한 지출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안락한 휴식이나 자기 계발,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기꺼이 포기한다.


저마다 여행에 대한 생각과 인식은 다를 것이다. 나처럼 여행을 그저 가성비가 안 좋은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여행하며 불편함을 느끼지만, 누군가는 여행을 통해 성장하기도 한다. 일상의 고단함을 내려놓고자 잠시 떠난 곳에서 치열한 일상을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어쩌면 여행이라는 것은 삶에 필수 요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과 함께한 강원도 여행을 통해 여행에 대한 시선이 조금 열린 것 같기도 하다. 돈과 시간, 육체적 고단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그 무언가를, 언젠가 나도 발견할 수 있을까.


IE003574728_STD.jpg 강물이 산을 뚫고 지나가며 만든 문이라는 구문소. 무척 멋있었다. ⓒ손수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