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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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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제비 Jun 30. 2024

감사 17일 차 : 교만

우리 교회는 크지 않다. 시골의 미자립 교회처럼 10명 조차 안 되는 사이즈는 아니지만, 서울에 있는 초대형 교회처럼 화려하지도 않다. 고령화사회에 걸맞게 고령 성도가 많으며, 다음 세대인 아이들과 학생, 청년들의 분포는 낮다. 유치부(7세 이하) 부서의 소멸 이야기도 들린다. 결혼과 출생이 없기 때문이다. 저출생의 그늘은 교회 안에서도 존재한다.


40년 간 교회를 다니면서 많은 일이 있었다. 우리의 대장 예수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죄로 가득 찬 인간이기에 그 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기도와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명령을 실행하는 것과 현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사고 치는 목사, 비행을 일삼는 청소년, 합심해서 목사를 쫓아내는(?) 장로들, 시기 질투와 남 걱정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들. 모두 교회에서 내가 본 사람들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교회는 남을 훈계하고 가르치기보다는 조용히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그런 집단이었다. 


생각보다 찌질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조금만 노력하면 '상위권'에 들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성격을 많이 읽고 기도를 열심히 하며, 다른 사람을 돌보고 교회 봉사를 하면 내가 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헌금도 팍팍 내고 모든 일에 열심으로 임하면 10에 10은 어느 순간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꽤나 오랫동안 교회가 별 볼 일 없게 느껴졌다. 공동체가 잘 되는 것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저들의 볼품없어 보이는 삶이 아무런 덕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저 내 앞가림만 잘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만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사람들과의 관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청년들은 세속적이고, 노인들은 무기력하며, 장년층은 위태로워 보였다. 저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본인의 삶을 제대로 살 수는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최근 5주간 선교사님들의 말씀을 들었다. 선교에 대한 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민족과 열방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 듣는 시간이었다. 전체 강의가 종료된 후 부서별로 대표를 선정해 소감문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초등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일반부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예상과는 달리 저들의 소감문은 꽤나 수준이 높았다. 발표자들은 하나같이 선교에 대해 아주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늦은 오후에 진행된 강의였기 때문에 나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제대로 듣지도 않았지만, 저들은 매 강의마다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음이 느껴졌다. 당장 해외로 나가서 선교활동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지금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열정이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느껴졌다. 


사실 찌질한 사람은 나였다. 아무런 근거 없이 '저들보다는 내가 (영적으로) 더 낫다'라고 판단했는데, 단 몇 분짜리 소감문을 듣는 것만으로 확실히 느껴졌다. 오랫동안 형식적으로 교회를 방문한 '선데이 크리스천'인 나와는 달리, 저들의 믿음은 확실한 실체가 있다는 것을. 내가 다른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스스로의 영혼을 갉아먹는 동안, 저들은 하나님과 이웃들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음을.


회사가 힘들고 바쁘다는 핑계로 예배에 소홀했고 마음이 공허했던 게 사실이다. 내 마음이 차갑게 식으니 다른 사람들이 좋게 보일리 없었다. 담담하면서도 힘 있는 저들의 발표를 들으며 식었던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보다 까마득하게 어린 동생들이지만, 저들의 믿음은 결코 얕고 연약해 보이지 않았다. 저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지금도 확장되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들이 아무리 예수의 제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핍박하고 죽여도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처럼.


교회를 더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부족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임을 알게 되어서 부끄럽고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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