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년 1월 얼룩소에 쓴 글입니다.
# 변호인에 대한 개인적인 정서
변호인은 형사소송에서 검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피고인을 보호해주는 임무를 수행하는 포지션이다. 이웃간 소소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인 민사소송과는 다르게 형사소송은 살인, 강간과 같은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는 굵직한 사안을 다룬다. 소를 제기한 검사와 변호인, 피고인, 판사가 모여 치열한 변론의 과정을 거쳐 판결이 나게 된다. 그런데 눈을 찌푸리게 하는 사고에 대한 결과를 보면서 눈을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죽였는데 겨우 징역 5년이라고?
형의 집행과 판결은 법을 기준으로 한다. 법을 만든 인간은 불완전하고 판사와 검사, 변호인 역시 피고와 동일한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완전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 가능할까. 판결을 내리고 변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100%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단편적인 생각이지만 어쩌면 AI 판사와 같은 말들이 와닿는 것은 사람의 불완전성으로 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형사소송은 개인과 개인의 소송이 아니라 국가(검사)와 개인(피고인) 의 소송이다. 흡사 어른과 아이의 싸움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피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변호인을 선임하게 되는데, 개인적인 사유로 피고인이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 경우 피고인의 보호를 위해 국가가 선정해주는 변호인을 국선변호인이라고 한다.
실제로 중죄를 범했든, 그렇지 않든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형사피고인이 될 경우 누구든지 변호인을 선임해서 자신의 권리를 보호할 자격이 주어진다. 내가 이해를 잘 못하는 것인지 생각이 삐딱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사형처분을 내려도 이상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을 죽인 사람' 도 자신의 권리를 보호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건과 변호인의 급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이 직접 선임하는) 사선변호인의 경우 수임료가 수백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정도 금액이면 일반인들이 변호인을 선임하기는 많이 부담스러운 금액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검사)를 상대로 민간인이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법정에서 사용되는 용어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돈이 없다고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는다면 피고인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주로 이런 경우, 즉 피고인이 여력이 안될 때 국가가 국선변호인을 붙여 주는 경우가 많은데,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국선변호인의 경우 수임료가 일반 변호인에 비해 턱 없이 낮으며 (건당 30만원 정도라고 한다) 많은 일들을 알바(?) 느낌으로 해치우기 때문에,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소송에 임하는 변호인의 자세나 집중도가 사선변호인에 비해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00만~200만원의 벌금형의 거의 확실시 되는 형사 재판을 앞둔 부자들이 사선변호인이 아닌 국선변호인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백 만원의 수임료를 아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철저한 확인이 어려워서 인지 국선변호인이 돈 많은 사람들을 변호해 주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국민의 (피고인도 일단 국민이니깐)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변호인의 선임이 필요하지만,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에도 금전적인 형편에 따른 차별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씁쓸함을 느낀다.
# 보이지 않는 것들
이 책은 국선변호인 정혜진씨가 수임한 사건들을 소개한 것이다. 범죄자는 기본적으로 잘못에 대한 합당한 벌을 받아 마땅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처벌의 정도가 매우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처벌 이외에 것들, 즉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부분들을 읽고 느낀 점들을 몇 가지 소개해 본다.
(1) 범죄자의 가족과 자녀들
사람을 죽인 범죄자는 사형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범죄자의 자녀들이 있는 경우 그 자녀들은 어떻게 될까. 대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 '범죄자의 자녀' 라는 사회의 낙인을 받고 살아갈 것이다. 그들의 부 또는 모가 잘못을 했더라도, 자녀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하지만 권리를 보장 받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시행한 '수용자 자녀 인권 상황 실태조사' 에 의하면 1년에 평균 5만 명이 넘는 자녀들이 부모의 수감을 마주한다고 한다. 하루 평균 137명이 수감된다는 말이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 이나 아동복지법에 수용자 자녀 지원에 대한 규정이 없어 수용자의 자녀들에 대한 현실적인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아이들의 권리 보장과 더불어 범죄 대물림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2) 중독의 경우
불량스러운 친구의 강요에 의해 피고인이 부탄가스를 흡입한 사례가 있었다. 담배와는 달리 부탄가스는 흡입하는 행위 자체가 처벌의 대상이 된다. 순간의 느낌을 잊지 못해 40대 중반에 이미 동일 사례의 전과 14범이 된 피고인은 부탄가스의 중독에서 결코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었다.
뇌가 중독되면 신경전문물질인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된다. 이로 인해 뉴런이 흥분하게 되는데, 유입된 중독물질의 효과가 사라지면 과도하게 분비된 도파민이 갑작스럽게 감소한다. 중독자들이 바로 이 순간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중독된 피의자가 스스로의 의지로 벗어나는 것은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중독은 정신질환의 일종인데, 병원이 아닌 재판장에서 치료가 아닌 형을 집행 받는 것이 반복되는 현실이다. '바보같이 왜 그런 것을 건드려. 나와 내 자녀는 절대 그런 어리석은 짓을 범하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중독은 약물 뿐 아니라 게임중독의 경우와 같이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중독이 된다면 일상생활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지기도 한다.
(3)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
심신장애, 정신질환자들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법원의 판결에 의해 교도소가 아닌 정신병원에 가는 경우가 있다. 이 때 가는 곳이 국립법무병원이다. 교도소가 아닌 병원에 수감되지만 동일하게 전과자 취급을 받는다. 언뜻 보면 감옥이 아닌 병원에 있다면 편하게 시간만 때우다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여러 문제가 있다. 과거 국립법무병원은 2016년까지 제대로 된 병원 인증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시설 과밀수용으로 인해 의료인이 환자들을 치료하는 환경이 매우 열악한 현실이다. 발달장애인들도 이들과 동일한 시설에 구금되는데, 제대로 된 치료가 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사회에서도 보호자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이들이 열악한 국립법무병원에서 인권의 보장을 제대로 받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4) 피고인이 농아자이거나 의사소통에 제한이 있는 경우
잘못을 한 피고인이 귀머거리인 사건이 있었다. 어려운 형편이라 국선변호인이 이 사건을 맡게 되었는데, 문제는 피고인이 듣지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평소 일반인이 말하는 수준의 5배 이상으로 '소리를 질러야' 겨우 알아듣는 수준인데, 법정에서 이러한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변호인은 피고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대변해주는 것인데, 농아자를 대변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저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무기력함을 느꼈다고 한다.
위 사건의 경우 빠릿빠릿하고 착한 딸이 재판에 함께 참석하여 실제적인 변호인의 역할을 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딸이 없다면, 딸이 있더라도 연차 따위 쓰지 못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이들이 제대로 된 인권을 보장 받을 수 있기는 힘들어 보인다.
(5) 지게차 사건
월 200만원 받는 지게차 운전수가 접촉사고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타이어식지게차는 법적으로 '자동차' 에 포함되지 않지만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적용을 받는 '차' 에는 해당된다고 한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인에 대한 책임이 무제한으로 보상되는 종합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다면 '형사처벌' 을 받는다. 문제는 지게차는 의무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기때문에 보험사가 지게차 운전수에게 종합보험을 판매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지게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언제든지 형사처벌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인 셈이다. 지게차 업주들은 종합보험이 아닌 '영업배상책임보험' 에 가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형사처벌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 것은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알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은 이미 늦었다고 볼 수 있다.
# 국가는 신뢰할만한가
시위를 하던 아주머니가 약식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시위에 대해 사전 신고를 했지만, 빽빽하게 배치된 경찰과 차량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신고된 인도를 이탈하게 된 경우이다. 약식 명령으로 300만원을 선고 받았는데, 1심에서 7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아주머니는 외벌이로 혼자 힘들게 자녀를 키웠는데, 취업이 안되는 현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보면서 자녀가 사는 세상이 변하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노동환경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고,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소가 된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은 6만 8천명이었다. 변호인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 아주머니가 어느 동네에 사는 몇 년생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다.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시위 이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경찰 정보과에는 '체증판독프로그램' 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인적사항이 불명확한 행위자의 인적사항을 '조사' 하는 스페셜리스트들이 존재한다. 경찰은 SNS를 통해 아주머니로 '추정' 되는 2장의 사진을 발견하고 아주머니를 상대로 심문을 하게 되었다.
[판독경위] : 페이스북 검색 중 집회 참석자가 참석 당일 본인의 사진을 등재한 것을 발견하고 채증 자료와 대조하여 동일한 복장의 대상자를 발견하여 판독.
본인이 맞냐는 경찰의 질문에 아주머니가 묵비권으로 일관 대응하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원에 감정을 의뢰하게 된다.
판독경위에 나와 있는 '페이스북 검색 중' 이라는 담백한 문장은 생각보다 꽤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얼마나 많은 사진과 정보가 조회되었는지 개인이 알 수 있을까.
판결문
… 그러나 이 사건 촬영 행위는 여러 개의 카메라를 이용해 근거리에서 집회참가자들의 얼굴을 촬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심리적 위축을 가하는 부당한 방법으로 집회를 종료시키기 위한 목적이 상당 부분 가미되어 있었다고 보인다. (p271)
정책을 잘못 입안하여 시위를 하게 만들고, 불법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무차별적으로 시위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SNS 사진들과 수 없이 대조하며 단순시위참가자가 기소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겪은 아주머니는 대한민국의 법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 법조인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일까
재판은 한 사람의 운명을 판가름 짓는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피고인은 천국과 지옥을 맛본다. 불완전한 사람이 내리는 판결로 남은 인생의 방향이 통째로 결정되는 시간 속에서 피고인은 과연 어떠한 느낌을 받을까.
법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시중에는 나같은 사람들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이 있다. 뮨유석 판사 아저씨의 책이나 이번에 읽은 국선변호사의 책, 예전에 읽었던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와 같은 책이다. 공부를 한다기 보다는 재밌게 한 권씩 읽다 보면 딱딱하고 재미 없는 법이 조금은 더 친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의 법이 답답하고 뜯어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낄 때가 많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법의 판결을 보며 갑갑함을 느낀다. 하지만 예전처럼 맹목적인 비난을 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느낌은 법정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누구보다 재미 없고 딱딱한 일을 하지만,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와 다르게 그들은 사실 누구보다 인간을 애정하고 있으며,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고민과 고찰, 분석을 하지 않고는 판결에 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완전하지 않은 이야기. 차별과 서러움이 있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이 더 필요한 이야기를 함께 읽어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