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월 얼룩소에 쓴 글입니다.
쇳밥일지 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 용접공의 힘들었던 시절과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담고있다. [따라올테면 따라와 봐] 의 느낌을 주는 용접을 하고 있는 표지 디자인을 보며 밝은 분위기를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나의 기준으로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감성을 분류해 보자면 95%의 우울함과 4%의 희망, 그리고 1%의 설레임(로맨스)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책속에는 몇 가지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가난, 고졸, 비정규직, 하청, 월 2백만원, 최저임금, 2교대, 산재, 근로계약서 (미작성), 사기를 당함과 같은 것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대학을 가기 보다는 고졸 신분으로 적은 돈이라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누구라도 다른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당장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열악한 근로환경과 급여의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이었을 테니까.
계속 되는 사기 사건으로 빚은 끊기지 않고 근로계약서 따위는 쓰지 않는, 제대로 씻을 공간도 없는 공장에 취업하고, 다시 나와 구직 활동을 하며 다른 곳으로 취업을 하는 반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 구석에서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친모의 학대와 아버지의 죽음, 생활이라기 보다는 '생존' 에 가까운 삶의 형태를 꾸역꾸역 유지해 나간다.
특별히 안타까웠던 부분 2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 장면은 8천만원의 사기 사건을 맞닥뜨린 당시 퇴사 직전 월급이 120만원 이었던 때. 고용의 불안정성과 낮은 급여, 그 와중에 큰 사기사건이 터지면서 정상적인 멘탈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했던 것 같다. 이후 삶을 마감하고자 마창대교로 걸어가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마창대교를 수십 번 지나가 본 입장에서 말하면, 해당 다리는 꽤 길고 높다. 진짜 죽을 생각으로 걸어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산 롯데백화점 인근 어시장에서 외상으로 음식을 얻어먹으며 울던 모습을 보며, 뼛속까지 암울한 정서를 엿볼 수 있었다. 아마 나였으면 수 십 차례 이상 자살의 충동을 느끼고도 남았을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언뜻 죽음의 그림자가 한 번씩 비춰지지만, 결국에는 다시 고된 노동의 일상을 살아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암울한 장면은 팍팍하고 힘든 삶 속에서 로맨스라고 할 수 있는 블링블링한 상황이 두 번 나오는데, 두 차례 모두 연인으로 발전이 되지 않은 것이다. 암울한 현실을 사랑의 힘으로 버틸 수도 있겠지만, 가난과 힘든 현실, 보이지 않는 미래, 스스로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그는 끝내 사랑이 아닌 '거리두기' 를 선택한다.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지 모르지만, 사랑을 포함한 모든 것에는 때가 있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가질 수 없게 된다. 뜨거운 마음과는 달리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청춘의 모습이 무척 씁쓸했다.
전반적으로 암울한 정서를 보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맛깔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거래처 방문을 하며 대구와 경북지역, 부산 및 경남을 두루 다녔는데, 마산은 길이 단순하고 넓지 않아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지명이 꽤나 익숙했다. 팔용동, 합성동, 댓거리, 어시장, 마창대교와 회원, 합포동까지.
중간에 잠시 5개월간 머물렀다는 양산 역시 지금도 자주 가는 익숙한 곳이다. 금오대교를 지나는 순간 펼쳐지는 물금 신도시와 끝자락에 있는 물금역, 주인공이 잠시 머무른 석산리까지. 동네가 나올 때마다 그 곳들의 풍경이 그려지며 색다른 반가움을 보너스로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덮기 전까지 한가지의 의문을 갖고 읽어나갔다.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삐뚤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긍정적인 사람이라서? 올곧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서? 그것도 맞겠지만 사람이 도저히 살 수가 없는 환경인데,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던 것이었을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는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유명세를 타고, 언론사와 미팅을 하며 방송 출연을 하는 등 본격적으로 글 쓰는 사람으로 인생의 2라운드를 보내던 중에 청강대학교 졸업축사를 맡게 된다. 책의 말미에 나와 있는 축사 내용을 보며 힘든 시간을 버틴 그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일을 좋아했고, 좋아서 하는 일을 할 때에는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으며, 부정적인 생각(냉소)을 몰아내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을 갖고 매일을 뜨겁게 살아가는 그만의 노하우를 보며 일부 내용을 옮겨 본다.
.. 혼자 티브이도 컴퓨터도 없는 타지에서 돈 벌며 겨울을 나는 동안, 스스로 계속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다가 결론에 도달했죠. 나는 용접을 좋아한다는 것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타인의 평가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 물론 이게 말처럼 쉽지 않을 거예요. 특히 타인의 선호로 돈을 벌어야 하는 창작 계통에서는요.
.. 제 글 기술은 먹고살 수 있을 정도엔 언제나 못 미쳤어요. 이렇게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현실, 재능, 노력, 좌절 따위 단어가 쌓여선 꿈의 천장을 내려앉혔죠. 결국 글로 돈 벌기를 포기했지만 일기랑 소설은 꾸준히 썼어요. 글쓰기를 끝끝내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제가 그나마 잘하는 일이 이거 하나였거든요.
.. 타인의 평가는 본질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이를테면 간식 같은 거예요. 먹으면 맛있을 수도, 속이 더부룩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안 먹어도 그만이란 거죠. 오히려 남들 평가에 너무 신경쓰면 '자의식 비만' 이 와요.
.. 저는 여러분이 자신의 세계를 부끄러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오히려 더욱이 선명하게 그 세계를 완성해나가길 바랍니다. 다만, 내 세계를 더욱 또렷하게 하기 위해선, 공부와는 약간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저 꾸준히 우직하게 정진해나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예전부터 관심 가던 분야 혹은 옳다고 생각하던 분야, 재밌다고 느꼈던 분야를 찾아 꾸준히 넓게 파고드는 게 중요해요. 까고 말해서 '덕질' 하자는 거죠.
..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일만큼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는 기술도 중요하거든요.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선 무엇보다 냉소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냉소는 인간의 가장 나쁜 감정입니다. 분노나 증오마저 마음먹기 따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지만 냉소는 그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 뿐이에요.
.. 냉소하지 않는 방법도 똑같습니다. 남이 떠먹여주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먹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사고로 움직이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생각이 정답인지 오답인지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핵심 목적은 사고의 근육을 기르는 거니까요. (262~273)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생존 그 자체였던 현실 속에서, 끝까지 글쓰기를 내려놓지 않음으로써 결국 '용접+글쓰기' 라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며 인생의 2라운드가 시작된다. 그의 새로운 삶은 다양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보여진다.
책을 읽으며 많은 자극을 받는 동시에 도전도 되었다. 힘든 현실을 살아가면서 새로운 것을 한 번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별히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년의 때를 살아가는 분들이라면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