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월 얼룩소에 쓴 글입니다.
대형서점에서 책을 고르거나 죽치고 앉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자주 갈 여건이 안되다 보니 추천도서를 주로 보는 편이다. 도서관 내부에 사서들이 있는 데스크 전면에 '사서 추천도서'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는 것을 보며 사서인 친구가 생각이 났다. "야, 사서인데 너도 책 좀 추천해줘." 라고 하며 일하고 있는 친구를 굳이 귀찮게 했다. 친구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책을 추천해 주었고, 구매해서 보유하고 있으니 직접 빌려주겠다고 했다.
지금처럼 도서관을 가지 않던 예전에는 친구들끼리 책을 많이 빌려보고는 했는데, 꽤 오랜만에 다른 사람의 책을 빌려 읽은 것 같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마찬가지이지만) 친구에게 빌린 책은 뭔가 더 깨끗하게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래도 좀 더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같은 책' 을 읽는다는 점에서 이 녀석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혼자만의 착각인지도)
이 책은 장애를 가진 아이 엄마의 일상과 내면의 생각들을 기록한 것이다. 대학원 재학 중에 아이를 갖게 되었고, 예정보다 3개월 일찍 세상으로 나온 아이는 편마비 증세(편측 -한쪽- 의 상 하지 또는 얼굴부분의 근력 저하가 나타난 상태)를 갖게 되었고, 아이가 네 살 때 원인불명의 뇌손상으로 사지마비 진단을 받고 시력을 잃는다. 올해 열 살이 된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죽이려 했다가, 아이와 함께 죽을까 시도를 했다가, 이혼을 생각하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깊은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책을 추천하고 빌려준 사서 친구는 작고 이쁘고 착하며 똑똑하고 생각이 깊은 녀석이다. 길게 표현했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와는 안 어울릴 것 같은' 친구이다. 단점을 찾기 힘든 녀석인데 굳이 꼽자면 본인보다 남편의 요리가 더 훌륭한 정도. 친구의 아이는 첫째와 동갑내기 친구이다. 책에 나오는 아이처럼 3~4달 먼저 세상에 나왔고, 장애를 갖고 있다. 친구는 이 책을 보면서 많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고 한다. 추천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경험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 이 책을 읽게 해준 친구가 무척 고맙다.
위로조차 하기 힘든 순간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를 위로해주거나, 반대로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 듣기도 한다. 이런 온기를 머금은 말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하지만 섣불리 위로조차 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가까운 동생이 어머니를 잃었을 때, 장례식장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교회사람들 수 십 명이 가서 한 명씩 인사를 할 때 그냥 안아주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덤덤한 표정 앞에서 눈물을 참는 것은 동생이 아닌 내 몫이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통의 할당량' 이 있는 것 같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신의 기준이지 받아들이는 인간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의 무게를 알지 못한다. 그런 것에 관심을 갖기 에는 당장 내 삶이 너무 빡빡하다. 누군가는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매일을 살아간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나은지 확신할 수 없지만 꾸역꾸역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갈까.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어떻게 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일까.
이 책을 읽기 전 잠시 고민이 된 부분이 있었다. 친구는 이 책에 대해 나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공감과 몰입을 하며 읽었을 것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 부모의 마음을 나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지만) 간접적으로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이들의 일상을 경험하고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분명히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것과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의 폭이 매우 협소하겠지만, 자신만의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본다.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아주 큰 울림을 준다.
생각보다 담백했던 글들
예전에 발달장애인 관련 글을 쓰며 읽은 기사 중 현실의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비관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많다는 내용이 기억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삶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자살 시도를 2차례 하였다. 20층 집에서 아이를 떨어뜨리려 했지만, 경비아저씨와 무척 살갑게 지냈던 덕분에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전에 경비실에서 바로 집으로 올라올 것이라 생각하고 포기하게 된다. 한 번은 자유로에서 트럭과의 충돌로 동반자살을 실행하려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아이의 얼굴을 보며 결국 실패하게 된다.
이 책은 드라마틱한 서사보다는 일상의 순간들과 감정들을 보여준다.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얇은 두께에 그림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읽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독자들을 충분히 우울하게 만들기 쉬운 소재일 수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을 보며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되지 않고 책을 읽어나갔다. 읽는 시간 이외에 중간중간 책 읽기를 멈추고 생각을 하는 시간들이 제법 되었다. '저자는 어떤 마음으로 이런 말들을 했을까' 하면서.
그녀가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며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자유시간' 은 하루에 20분 정도 있다고 한다. 아이의 장애와 자녀를 케어하는 것이 삶 전체였지만, 굳이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던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일상을 조금씩 공유하기 시작한다. 좀처럼 개인시간을 내기 힘들었지만, 자격증을 따고 수영을 배우며 대회에 나가기까지 하는 모습은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기적 같은 하루' 를 보내고 있는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나는 앞으로도 이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할 것이다.
이 책은 누군가의 독서 후기를 참조하기 보다는 직접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평소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이 두껍지 않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다. 이왕이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곳에서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책 속에서 시선이 머물렀던 곳들을 공유해 본다.
삶은 살아낸다는 것은 몇 개의 시간을 동시에 살아가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몸으로 겪어내는 시간이 있고, 비로소 머리로 뒤늦게 이해하는 시간이 있으며, 가슴으로 느끼는 시간은 또 따로인 것 같았다. 그리니 누군가와 함께한다고 해서 함께하는 게 아니고, 혼자 있다고 해서 혼자인 게 아닌. 오늘의 몸을 살면서 1년 전 일을 이해하고, 10년 전 일을 이제야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p49
우리의 모습이 남들에게 특별하게 비춰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장애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인지 모른다. 모두가 우리에게 힘을 내라고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그저 각자의 삶을 각자 살아가며 서로 도울 수 있는 것은 돕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모두의 최선이라는 것도 그 댓글 덕분에 생각해보게 됐다. - 아이와 식사하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린 뒤 '뭔 애는 안주고 어른들만 먹나' 라는 댓글을 본 뒤. -p67
이 영화를 보면서 죽음이 선택일 수 있다면 살아 있는 것 또한 선택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 있었으나 살기로 결정하고 사는 거라고. - '미 비포 유' 라는 영화를 보며 느낀 것들. -p76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7개월 반 동안의 치료, 열한 번의 머리 수술을 견디고 집으로 온 아이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누리고 즐길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 오른손을 거의 쓰지 못했는데도 아이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면 자기도 사랑한다고 대답하기 위해 왼손으로 오른손을 야무지게 붙들고 동시에 머리 위에 착 올려 하트를 만들어내는 아이였다. -p85
삶이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는 사실에 그토록 절망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오늘도 가슴을 올렸다 내리며 숨을 쉬었고, 목이 마르면 입술의 주름이 진해졌다. 아이는 살아 있었다. -p88
(스트레스를 받는) 느낌이 온다 싶으면, 일단 냉장고에서 바리스타 하나 꺼내 한 모금 쭉 빨고, 바로 이어서 또 한 모금 쭉 빨아당기면 터지기 직전처럼 부풀어 오르던 바람이 또 조금 빠져나갔다. 그렇게 내 위벽이 차갑고 달콤하게 적셔질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면, 아이가 밉지 않았다. -p117
많은 경우 A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빠른 방법은, A를 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거나 A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B를 시작하는 것이다. 잠시 조명이 꺼지고 완전히 다른 배경으로 바뀌는 뮤지컬 공연에서처럼, 나는 그렇게 내 하루를 자꾸만 환기하며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P123
아이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아이를 관찰하고 들여다보며 몸을 재빨리 움직여대던 지난 시간들이 모두 나의 모성애일 거라 확신했지만, 실은 그러고 있는 나 자신을 사랑했던 지독한 자기애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떠올랐다. '이렇게 장애가 있는 아이를 이토록 잘 키워낸 어머니'를 내 인생의 콘셉트로 잡고 그것을 향해 달려왔던 건 아닐까. 아이를 통해 나의 인격과 나의 사랑을, 나의 그릇과 나의 인생을 증명해내려던 것이 아니라고 완전히 부정할 수가 없어서, 그리고 아마 그게 맞을 것 같아서, 슬프고 비참했다. -p131
이 아이가 비록 몸이 불편한 아이지만 나는 이 아이를 너무 사랑한다거나, 이 아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들이 불편했다. 나는 엄마가 되지 않았어야 했다고 생각했고, 그보다 내가 더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세상에 없을 거라 확신했다. 도망치고 싶었고 취소하고 싶었다. -p163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