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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진하 Apr 17. 2023

08. 학창 시절 뉴욕, 왕따가 친구 만들기

빛나는 런던, 빠져든 사랑

작고 조용한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 온 나에게

미국은 그저 지구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당최 어디에 붙어 있는지,

지구본을 한참을 들여다봐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미국인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사업 차 온 가족이 3년이라는 시간을 미국에서 지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막연하게 상상해 왔던 미국이 이제는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눈부신 뉴욕의 혼란스러운 번화가는 내가 살던 작은 마을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현실은 치열했다.

알파벳도 모르던 나에게 뉴욕은 유난히 거대했고 도시의 숨결과 활기는 버거웠다.


나는 미국에서 적응하여 매일을 살아야 했다.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려야 했다.


그래서 여느 초등학생들과 달리 하루하루 쉼 없이 고군분투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처음에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순수한 호기심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그럴 때마다 외로움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싶었다.


내가 그들과 다르게 생겼지만,


똑같은 가수를 좋아하고, 같은 놀이를 할 줄 아는 그들의 새 친구라고 소개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조차 할 수 없는 벙어리였다.

나의 언어는 그들에게 그저 소리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여느 때와 같이 점심식사 후 지루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복도 끝 계단에 홀로 앉아서 책을 읽었다.


그런 나에게 같은 반 친구 앨리스가 다가왔다.

그녀의 도화지 같은 하얀 피부와 금발의 머리카락은

어릴 때 내가 제일 좋아했던 미미 인형과 참 닮았다. 


“여기서 뭐 해? 무슨 책 읽어? 책 이해는 되니?” 라며 앨리스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이해가 되니까 내가 30분째 여기 웅크려 앉아서 읽고 있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삼켰다.

대신, “응,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야.”라고 씁쓸한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부드럽게 대답했다.


“나 궁금한 게 있어. 제인 알지?

제인이 ‘봄의 왈츠’라는 드라마를 추천해 줘서 보기 시작했어.

어릴 적 친구였던 두 주인공이 비행기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장면이 있었거든.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여기 온 거지? 난 비행기를 아직 안 타봤는데.

비행기에서 누구를 만난다면 너무 신기할 것 같아. 넌 어땠어?”


이코노미 좌석에서 10시간 이상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비행을 떠올렸다.


아무리 잠을 자도, 기내는 깜깜한 밤과 같았다.

반복되는 비슷한 기내식만 먹었던 기억이 날 뿐이었다.


분명 시간은 흐르는데, 마치 비행기 내에서의 시간은 그대로 멈춘 것 같은 지루한 시간이었다.


 ‘역시 드라마는 믿을 게 못돼. 애한테 무슨 환상을 심어 준 거야.’라는 생각에 난 웃음이 터졌고,

그런 내 모습과 대조적으로 그녀의 짙은 초록눈은 고양이처럼 반짝였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봄의 왈츠’라는 드라마는 우리 우정의 첫 신호탄이 되었다.


난 앨리스에게 더 이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닌,

공통 주제로 함께 감정을 교류하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난 밤을 지새우며 영어공부를 했고,

밀려드는 숙제를 최선을 다해 해냈다.


그리고 ‘봄의 왈츠’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도록,

그녀와 함께 이야기할 다이얼로그 스크립트를 수없이 적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나에게 가장 특별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여기 런던에서 18년 만에 다시 재회했다.


‘비행기에서 우연히 친구를 재회한다’는 말도 안 될 것 같은 ‘봄의 왈츠’ 이야기가

그녀를 런던에서 재회하며 현실이 되었다.


나의 특별한 이야기 속 주인공 앨리스,

“안녕? 오랜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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