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다 만 양배추에서 노란 꽃이 자란다.

by 하다

먹다 만 양배추에서 조금 한 몽우리가 자라기 시작했다.

매주 참석하는 테라피 교육 교수님께서 조언하시길, 채소는 냉장고보다 실온에 보관하고 가능한 한 빨리 먹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에 있던 채소를 몽땅 꺼내 주방 옆 베란다로 옮겼다. 다행히 올해는 작년에 비해 덥지 않아 실온에 놔두어도 금세 상하지 않는다. 냉장고 속에 있을 때 보다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인 채소는 제법 빨리 사라진다. 냉장고 하단 채소 싱싱 칸에 놨다면 그 존재를 까먹고 조금씩 바싹 말라가고 있었겠지? 채소가 내 눈에 계속 띄다 보니 혹시 상할까 걱정이되 빨리 먹게 된다.


꺼내 놓은 채소 중 다 먹지 못한 건 양배추뿐이었다. 뿌리 부분에 붙어 있는 이파리가 아직 남아 새로 산 채소와 같이 놓아두었다. 다른 채소는 매일 아침 주스로 갈아져 금세 사라지는데 양배추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양배추 끝부분이 몽글몽글 커지는가 싶더니 끝부분에 노란색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에이 설마 양배추가 자라는 거야?

테라피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채소는 실온에 있어야 태양에너지를 품고 또 그것을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하셨다. 물론 채소를 주구장창 밖에다 내놓을 수는 없다. 실온에 둔 채소가 시들지 않으려면 가급적 빨리 먹어야 한다. 빨리 먹게 되는 만큼 채소 상태도 싱싱하니 당연히 몸에도 좋겠지. 채소가게도 사람들이 잘 보는 갑판대에 채소를 잔뜩 놓는 이유도 같은 게 아닐까? 싱싱한 채소를 내놔야 구매자들도 빨리 사갈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양파, 감자나 고구마에서 뿌리가 나고 싹이 트는 걸 본 적 있다. 어릴 적 방학 탐구 생활 활동을 하면서 고구마를 물에 담가 두었던 기억이 있다. 감자는 싹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혹시나 싹이 났나 요리를 하기 전에 요리조리 살펴본다. 양파나 고구마도 물이 담긴 컵에 담가 두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양배추는 샐러드를 먹을 때나 찜을 쪄 상추처럼 싸 먹는 채소일 뿐이었다. 그런데 양배추에서 싹이 나더니 이젠 노란 몽우리가 한 개도 아닌 여기저기서 눈에 띄기 시작한다.


노란 꽃을 보이기 시작할 때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릴까 잠깐 고민도 했다. 그것도 잠깐 뿐이었다. 이것도 생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양배추 안에 품고 있던 에너지가 노란 꽃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양배추 안 노란 에너지가 우리 집에 충만하게 쌓일 것 같은 기분이다. 아직 뿌리가 나지 않아 초록색 작은 접시에 물을 담아 양배추를 담가 두었다. 양배추가 채소에서 화초로 변신한 샘이다. 그럼 녀석을 친구랑 친해지라고 해야지. 나는 접시에 담긴 양배추를 초록 잎이 자라고 있는 다른 화초들 옆에 옮겨두었다.


노란 몽우리에서 여기저기 꽃이 핀다. 블로그 이곳저곳을 찾아보니 양배추꽃을 피우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그래도 나처럼 버려질 뻔한 양배추에서 노란 꽃이 난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많겠지?


내가 알지 못하는 아주 많은 자연의 비밀이 숨 쉬는 모든 공간에 숨겨져 있을 것 같다.